[한겨레] 1년여새 판·검사 출신 11명 영입 재경부 간부등 6명 현직서 직행도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 ‘구멍 숭숭’ 삼성그룹이 권력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핵심 권력인 사법부와 행정부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삼성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재벌행은 이들의 인맥과 정보를 발판으로 한, 또다른 ‘권-경 유착’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공직자가 대기업으로 옮기는 과정을 더욱 투명하고 엄격하게 따지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고위 공직자 출신 줄줄이 삼성으로=삼성은 지난해부터 올 5월까지 서우정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성열우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11명의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사내 변호사로 영입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종왕 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그는 지난해 8월 상임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사장급)으로 삼성에 합류했다. 반면, 같은 기간에 영입된 순수 변호사 출신은 4명에 불과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29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법조계를 통해 파악한 삼성그룹 소속 변호사들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삼성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변호사는 모두 120명 정도로, 이 가운데 판·검사 출신은 22명으로 파악된다. 결국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절반이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영입된 것이다. 삼성은 또한 최근 이건혁(42) 재정경제부 자문관 겸 거시경제팀장을 삼성전자 아이아르(IR)팀 상무로 영입하는 등 지난해부터 올 5월까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 출신 관료 6명을 현직에서 곧바로 영입했다. 허술한 공직자들의 대기업행 규제=삼성이 이처럼 공직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고 있지만, 이들의 대기업행이 적정한지를 따지는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4월 대검찰청에서 받은 ‘퇴직 검사의 사기업체 취업 관련’ 자료를 보면, 2001년 공직자의 취업제한 제도가 시행된 이후 모두 10명의 검사가 대기업으로 가면서 취업 제한 여부를 확인해줄 것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이들은 모두 ‘제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참여연대가 대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한 결과, 같은 기간에 모두 6명의 판사들이 마찬가지로 ‘제한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고 기업으로 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는지는 불분명하다. 실제로 2002년 말에는 이아무개 검사가 삼성전자 관련 재판을 수행하다 사표를 낸 뒤 대검찰청의 취업제한 여부 확인을 거쳐 다음달에 삼성전자로 옮겨가기도 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검사들에게 적용되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는 검사의 업무 특성에 맞춰 업무 연관성을 판단하고 취업을 제한하는 조항이 아예 없다”며 “삼성전자가 형사고발한 삼성전자 소속 노동자를 기소하고 퇴직한 뒤 곧바로 삼성에 취업한 이아무개 검사의 경우가 이런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노회찬 의원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의 이직 제한 범위 등을 모두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퇴직 뒤 이직이 제한되는 공직자에 판·검사 출신들을 포함하고, 이직 대상 직종 등도 분명히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