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재벌 정면 비판 소설 출간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0/10/07 1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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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정면 고발한 ’허수아비춤’ 펴낸 조정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작품만을 써온 작가 조정래씨가 한국 사회의 성역 ‘재벌’을 정면 고발하는 장편소설 을 내놓는다. 작가는 번뜩이는 풍자로 돈에 미친 사람들의 야만을 고발한다.

인터뷰 by 시사인 주진우 기자 2010.10.04  ace@sisain.co.kr    
  
“오늘의 우리 사회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모습이 추하든 아름답든 그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자화상을 똑바로 보기를 게을리할수록, 회피할수록 우리의 비극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작가 조정래씨(67)는 재벌의 횡포에 문학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지론대로 소설은 술술 잘 넘어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지울 수 없다. 단순히 재벌뿐 아니라 이를 묵인한 독자에게도 작가는 ‘국민, 당신들은 노예다’라는 말 회초리로 따갑게 때린다. 9월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봄에 비해 많이 핼쑥해져 있었다. 한여름 폭염을 ‘글 쓰기 노동’으로 통과한 작가의 치열함과 고민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사IN 백승기
1943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출간했다. 또한 산문집과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시리즈를 펴냈다.

언제부터 재벌과 경제 민주화에 대해 고민했는가?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뤘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방임했다. 1970~1980년대에는 축적의 시기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분배의 시대에 와서는 아무 말 않고 넘어가고 있다. 재벌의 횡포가 심해져 문학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사명이 무엇인가? 경제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업은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세금을 올바로 납부해 그 혜택을 소비자가 골고루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의 노예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제 소비자가 기업을 감시·감독해야 한다. 20년 전부터 기업의 횡포와 비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한강>을 내놓은 다음에는 이 소설을 반드시 쓰겠다고 생각했다. 1년간 취재하고 조사해서 3개월 동안 집필했다.

기업이 잘되어야 국민이 잘산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업이 잘되어야 잘산다는 것은 망상·몽상·환상이다. 여기서 깨어나야 한다. 고뿔(감기)도 남 안 주는데 기업이 왜 당신에게 돈을 주겠는가? 국민이 노예가 되고 싶지 않으면 시민이 직접 고쳐야 한다. 기업은 끝없이 진화한다. 그래서 감시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뭉쳐서 감시하고 잘못했을 때 불매운동을 벌인다면 세계 어떤 기업도 버티지 못한다. 기업인들은 이 소설을 엄청 불편해할 것이다. 고쳐서 함께 가자는 것이다.

회장의 친위부대가 1조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만들어 정·관계에 로비 자금을 뿌리고, 계열사 공조를 통한 순환출자구조를 완성한다. 그리고 후계자의 경영권과 재산권 상속이라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진행시킨다. 삼성 이야기 아닌가?
삼성일 수도, 현대일 수도, LG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소설에 대해 중앙일보는 한 줄도 못 쓸 것이다. 문화일보 기자는 자기는 절대 못 쓴다고 하더라. 소설을 보면 기자들도 기분 나쁠 것이다. 기업과 뒤에서 놀아나는 기자들 모습이 나온다.

소설 쓰지 말라는 외압은 없었나?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삼성이 출판사 쪽에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사 쪽에서 “아예 연락을 안 하는 게 좋다. <태백산맥>을 쓴 사람이다”라고 했단다. 작가는 작품으로 남는다. 영원히 남는다. 작가는 작품에 생명을 거는 존재다. 그 어떤 돈과 가치도 작품을 이길 수 없다. 나는 독자들에게서 받은 사랑과 부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돈보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처음 이 소설 쓸 때 김초혜 시인(부인)은 뭐라고 했나?
“여보 괜찮을까. 기업 무섭잖아” 하고 걱정했다. 그래서 “<태백산맥>도 썼는데. 죽으면 죽지”라고 말하고 썼다. 그랬더니 “조금 덜 써. 덜 써”하더라.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니까 너무 통쾌해한다.

삼성은 월급을 많이 주니까 좋은 회사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바보다. 파렴치한 기회주의·이기주의·개인주의적인 악랄한 궤변이다. 이를 깨부수고 가르쳐주려고 소설을 썼다. 시원하게 웃게 만들려고. 1조~2조원의 비자금으로 정부를 희롱하고 농락했다. 그런데 종신형을 받지 않고 부자가 된다. 또 다른 기업들이 닮고 싶어한다. 매우 불편한 진실이다. 막아야 한다. 국가의 비호로 돈을 번 거대 재벌이 그 돈을 자기 능력이라고 횡포를 부린다. 더 이상 방임하면 안 된다. 경제 민주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시민단체가 이를 바로잡은 역사가 있다.

기업은 원래 도덕과 거리가 있지 않은가?
세금 낼 것 다 내면 사업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중은 도덕을 지켜야 하고 기업은 부도덕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 아닌가. 세금으로 기업을 망하게 하는 정부는 없다. 워런 버핏은 25달러짜리 밥 먹고 세금 많이 내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다. 빌 게이츠도 존경받는다. 불법으로 상속 않고 세금 제대로 낸다면 누가 기업인을 무시하고 불신하겠는가? 우리 국민이 기업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당연하다. 존경받기를 원하는가? 나름의 해결책이 뒤에 나와 있다. 책에 해결책을 적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에서처럼 시민단체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가능하다. 독일·프랑스·스웨덴 등은 한 사람이 5~6개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5만 개의 시민단체가 정치·경제·사회를 분할해서 감시하는 체제가 정착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됐다. 투표장에서만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은 위임한 권한을 제대로 감시하는 이중 조직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비양심이 아니라 무양심이다. 권력은 횡포하게 되어 있다. 그들을 믿으면 안 된다. 시민단체가 전국적인 불매운동을 벌이면 기업은 견딜 수 없다. 미국의 빌 게이츠가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미국은 강대국의 횡포를 부리지만 미국 시민단체는 사회를 올바른 곳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한 사람이 1000원씩 5개 시민단체만 후원해도 사회가 완전히 바뀐다. 시민단체가 정치인과 기업을 고발하고 감시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민주주의 토착화는 없다.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시민단체는 천천히 가더라도 순수해야 한다.
    
10월1일 출간하는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

재벌은 부패했지만 공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
부패가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소리는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켰다는 논리와 똑같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위해 철로를 놓은 것도 아니다. 기차를 놓아서 식량·자원을 수십 배, 수백 배 빼앗아갔다. 물론 재벌이 한 일도 있다. 하지만 싼 노동력과 독점을 토대로 수십 년간 돈을 벌어들인 재벌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한다. 책에서 대기업을 비판한 교수가 잘리고, 노조 간부에게 2억원 주고 말을 뒤집게 만들고, 가신들은 스톡옵션으로 홍콩에서 쇼핑하고 카지노에 간다. 기업의 차명 계좌가 자기 것이라고 버티는 사람에게는 그 액수의 절반을 나누기도 한다. 참, 돈 흔해 빠졌다. 재벌들에게 기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세금만 내라. 그러면 그림자도 밟지 않겠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 정말 우울했다. 이 소설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낙관적인 성격인데 왜 우울했나?
현실이 괴롭고 불안했다. 유명환(전 외교통상부 장관)·김승연(한화그룹 회장) 사건에서 보듯 비이성적인 한국적 인정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발전이 안 된다. 이제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새로운 빛이, 믿음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봐야 하나하나 극복하고 이룰 수 있다. 좋은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이런 확신 없이는 문학 안 한다. <태백산맥>을 쓰며 15년간 공갈·협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확신 때문이었다. 서구 선진국은 200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우리는 이제 겨우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다. 경제 민주화는 이제 시작이다. 기업가다운 기업인이 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갈 길을 가르쳐주었다. 결국에는 기업인들이 고마워할 것이다.

돈의 위력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도왔던 신부들이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좌천됐다. 종교까지 기업에 당하니 말이 되는가, 돈이 종교를 누르다니. 자본의 힘이 어디까지 가는 건지…. 당나라 때 사마천이 이미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돈이 나보다 만 배가 많으면 노예가 된다”라고. 돈의 마력·횡포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취재하고 소설을 쓰면서 생각보다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점에는 제동을 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겠구나 하는 위기감에 소설을 썼다. 작가로서 정시·직시하고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소설로 사회를 정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게 안 되더라도 인간의 편에 서는 게 문학의 소임이다. 인간은 문학이 천착해야 하는 근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더 많은 작가가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란다. 사실 사회현상에 대한 소설은 40대 젊은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젊은 작가들은 관심이 없다. 특히 취재에 관심이 없다.

근래에 사회문제를 다루는 소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나 갈등·모순·빈부격차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할 사회 현상이 하나둘이 아니다. 격렬했던 사회·역사 의식이 없다. 이것이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치열한 작가 의식이 없다. 작가가 민중의 논리적 증오를 가슴에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정신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 소설은 민중의 바닥에 있는 자본에 대한 증오를 담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사적인 것에 빠져 식상해져 있다. 각성해야 한다.

문단은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점령당한 것 같다.
드라마 한류가 가듯 문단에 일류가 온 것이다. 우리에게 일본에 대한 민족적 원한과 증오가 있지만 동질성과 친밀성도 많다. 우리 작가에게서 볼 수 없는 점을 문화적 호기심에서 열광하는 것이다. 일본을 알고 싶어하고 동경하는 것 같다. 일시적 현상이어서 괜찮다고 본다. 일본 작가들의 말장난, 가벼움, 표피적인 것을 우리 작가들이 따라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이 소설 (<1Q84>)은 일본에서도 부실 공사라는 평을 받지 않았는가. 하루키는 감각적이고 가볍고 빨리 읽힌다. 사교가 가지고 있는 묘한 산물이다. 문학성은 거의 없다. 소모 문학이다. 나는 1권을 좀 읽다가 덮어버렸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중국에 관한 소설을 구상 중이다. 중국 대륙을 삼키려 하는 미국·중국·한국의 젊은 기업가들 이야기를 초현대판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중국 문화혁명의 폐해를 알리는 소설만 나왔다. 중국의 현대,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한번 해보고 싶다. 소설 제재를 취재하면서 중국 여행기도 한번 쓰고 싶다.

여행기라니?
소설 취재를 하면서 여정을 이야기하는 여행기는 빨리 쓸 수 있을 것 같다. 파리와 로마는 100번 여행 가도 좋은 곳이다. 이곳에 관한 여행기도 쓰고 싶다. 할 일이 많다. 올해는 등단한 지 40년 되는 해다. 50주년까지는 이미 계획을 다 세워두었다. 10년 동안 기행문·산문·소설 12권을 내놓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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