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엑스파일(X-File)이 일부나마 MBC에서 방송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일부나마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이상호 기자에 대한 신변 위협이 상당 부분 감소했기 때문이다. (1) 지난해 말 이상호 기자가 비장한 각오로 명품백 뇌물 사건을 폭로하면서 쓴 몇몇 문장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내 이야기, 주택 이야기, 고발기자의 숙명, 미국에 가면 어쩌면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그때 내가 이해 안되었던 부분은 미국 가면 어쩌면 못 올지 모른다는 비장한 말투였다. 향후 기자의 숙명은 자본을 경계하는 일이다. 기자의 본분은 시장을 감시하는 일이다. (생략) 나의 출장계획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경우,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리고 각오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기자는 어쩌면 목숨 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할 수도 있다. 불명예와 누명.. 자본은 자기 보호를 위해 그 보다 더한 오명을 기자에게 씌우려할 것이다. 두려운 가운데 형용할 수 없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안기부(현재 국정원)가 하는 일을 고발하는 일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며 목숨을 내거는 일임이 분명하다. 취재 도중 사고사나 실종으로 처리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이상호 기자를 단지 특종에 눈이 먼 기자로 판단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총알이 옆을 스쳐가는 가운데 사진을 찍어대는 종군기자가 위대해보이는 이유는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쉽게 목숨과 명예를 걸고 특종 현장에 뛰어들겠는가. 목숨과 명예, 누명을 감수하면서 특종을 잡으려 한다면 설사 특종 욕심이 있다 해도 진정한 특종 기자라 불러줄 만하다. (2) 한국의 기자 중 상당수는 공해 배출업체나 비리업체, 개인의 비리를 고발하는 특종에 혈안이 될 뿐이다. 특종을 잡으면 기자 자신이 권력을 쥐고 흥정을 할 수 있는 그런 특종, 고발 당하는 측이 약자가 되는 그런 특종 말이다. 누가 감히 5.18광주의 모습을 찍어서 보도했으며, 누가 감히 안기부의 비리를 고발했단 말인가. 박종철 고문 사건이 났을 때 남영동 대공분실에 불려갔다가 기자를 만나 물고문을 암시했던 오연상 의사는 자신이 스타 의사로 뜨고 돈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자에게 진실을 증언했을까? 아니면 의사로서 자신의 미래와 생명의 위협까지 각오하고 증언했을까? 고문 가능성을 몇 줄의 속보기사로 써야 했던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특종을 잡았다는 기쁜 마음만 있었을까? 아니면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을까? 이상호 기자 개인에 대한 평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고발기자로서 자질은 어느 기자에 뒤지지 않아 보인다. (3) 명품백 사건이 났을 때 그를 옹호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백을 바로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어떤 행동을 보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냉혈한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단지 도덕심이 좀더 강한 기자일 뿐이다. 어쨌든 그는 백을 돌려주었고, 자신의 치부를 공개했다. 업체 관계자가 두고 간 뇌물을 나중에 돌려준 기자는 많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스스로 밝힌 기자는 내 기억에는 없다. 공개해 자신의 경력에 흠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호 기자는 아직 양심이 살아있는 기자다. 물론 뇌물을 아예 받지 않은 기자도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뇌물을 받지 않은 기자들이 모두 도덕적이라서 안 받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기자의 힘이 약해 뇌물 받을 기회가 없거나, 뇌물의 위험성에 비해 뇌물이 약해서 거절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든 백을 가지고 집에 오게 되었고, 고민 끝에 뇌물을 돌려준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사실 뇌물을 돌려주는 일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밝힐 기자가 몇이나 될까? 자신에게 배달된 뇌물을 돌려준 기자는 많겠지만 그 사실을 밝힌 기자는 많지 않다. 물론 이상호 기자가 엑스파일 취재를 나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뇌물 돌려준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지 모른다. 목숨을 건 취재였기에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 될 경우 자신의 양심에 남은 앙금을 털어내 아내와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려고 했던 것인지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는 자신이 뇌물을 받았음을 밝힌 기자다. (4) 엑스파일 공개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너는 깨끗하냐?' '다 똑 같은 놈.' '우리나라가 그렇지.'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다 아는 이야기 꺼내 삼성 망하면 우리나라 경제 책임질래.' 등의 다양한 이유로 비리 공개 의미를 깎아내린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런 말은 비리 당사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나쁜 것을 밝히고 고치는 것은 이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 덕목이다. 그 일의 의미가 부정적일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의 피해자가 바로 나와 우리 가족일 수 있기 때문이다. 씨랜드로 아이들이 죽어도 '너는 깨끗하냐?' '대충 넘어가지 뭘 따지냐?'고 말할 것인가? 그것이 당신의 아이라도? 당신 자녀들이 백화점 콘크리트에 깔리고 지하철 안에서 불타죽고 길가다 끌려가 고문을 당해도 '너는 깨끗하냐?'고 말할 것인가? 공수부대가 당신 아들딸을 대검으로 찌르고 구타해도 군부독재를 옹호할 것인가? 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투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나와 내 아들딸이 길거리를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고 인터넷으로 온갖 말을 떠들 수 있는 것이다. 당신 딸이 길거리를 다니다가 만나는 전경마다 요구할 때 가방을 열어젖히며 수치를 당하지 않을 수 있고, 죄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 성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오늘, 당신과 당신 아들이 대통령 욕 했다고 곤봉에 두들겨맞으며 전경차에 실려가 행방이 묘연해지거나, 다음날 강제 입대해 어느날 시체로 돌아오지 않는 오늘이 되기까지는 이 사회의 부조리를 밝히기 위해 투쟁한 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대통령 욕 해도 잡혀가지 않는 그 잘난 주둥아리와 손가락의 자유가 내 청년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무현을 욕하고 김대중과 김영삼을 욕해도 잡혀가지 않는 그 자유가 이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내던진 수 많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함께 행동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리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사회를 비롯해 한 개인의 부도덕은 언제나 드러내 고쳐야 할 대상이지 감추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5) 부조리를 말함에 있어 경제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는 부류다. 당장 좀더 덜 먹고 살면 도덕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데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이유로 부도덕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진짜 경제를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국민의 경제생활을 내세우며 로비와 부도덕으로 일관된 기업들이 결국 남긴 것이 무엇인가? 국민의 고통과 일부 부도덕한 사람의 부축적 아닌가. IMF사태와 그로 인한 고통이 도덕적인 기업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부도덕한 기업과 관료 때문에 발생했다. 그럼 부도덕한 기업을 살리면 우리나라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것인가? 대우를 살리고 은행을 살리면 우리나라가 잘 살았을까? 대우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유로 돈을 집어넣다가 100조가 넘는 돈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끝까지 국민 세금을 빼돌려 대우 관계자만 해외에서 호의호식했다. 결국 대우는 망했다. 김우중과 그 일당은 외국 호텔에서 호의호식할 때 국민은 고생했다. 그러나 대우는 망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대우를 비롯한 부도덕한 기업들을 살리지 말고 시장원칙에 따라 알아서 자생하거나 망하게 했다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경제한국이 되었을 것이다. 삼성이 망하고 LG가 망하면 한국이 망할 것 같은가? 아니다. 또 다른 기업이 한국을 먹여살릴 것이다. 오히려 부도덕한 대기업이 건전하고 장래 있는 기업의 새싹을 밟아서 생기는 피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부도덕한 기업이 안 망하는 것이 결국 한국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언제고 삼성과 같은 부도덕한 기업은 그 나라의 종양이 되어 그 나라를 병들게 할 것이다. 이미 IMF로 겪어보지 않았는가? 실력 있는 기업이 수출할 자금을 못 구하고, 수출할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바치고, 실력으로 건설을 따 내지 못하는 나라, 로비로 따내 건설하고 그 건물이 무너져 사람이 죽어나가는 나라. 그런 나라가 문제인 것이다. 여전히 부도덕한 재벌을 옹호하는 사람은 결국 한국의 발전을 막는 사람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다. 도덕적인 기업이 잘 사는 나라. 그것이 결국 한국과 한국민의 행복을 위한 바탕임이 분명하다. 나는 삼성이 망하더라도 이 나라가 도덕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또 다시 부도덕한 기업으로 인해 IMF 사태를 겪지 않기를 원한다. 정직한 기업이 돈 버는 나라와 삼성 대우 한보처럼 뇌물로 점철된 기업이 가득 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 어느 나라가 더 미래가 보장되는가?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문제다. (김중태; 김중태 문화원 운영, 2005년 07월 24일, www.dal.co.kr 컬럼방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