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TV 시청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하나는 이것저것 골라 보는 사람, 또 하나는 오로지 드라마에만 채널을 고정하는 사람! SBS TV는 말 그대로 '드라마 제조 공장'을 방불케 한다. 방송 편성표는 거의 드라마로 도배되어 있다. 특히 주말 편성을 보라, 한 치의 틈도 허용치 않고 다닥다닥 붙은 저 끝없는 드라마들의 행진을 말이다. 하루 저녁도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는 날이 없다. 아니, 얼마 전까지는 금요일에 '잠시' 존재했었다. 그리고 금요일 밤 시간대는 KBS의 <인물현대사>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 MBC의 <베스트극장> <신강균의 사실은> 등에 분산되는 다양한 시청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고심 끝에 SBS는 2시간 짜리 연속극이라는 초유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금요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단 <아내의 반란>을 본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이건 무슨 설날 특집극도 아니고 매주 꼬박 2시간 동안 연속극을 편성하는 무지막지함에 우선 놀라고, 뚜껑을 열어본 후 그 내용물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내의 반란>은 KBS의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중에서도 가장 선정적인 소재만을 골라서 종합선물세트로 내놓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 진부함은 차치하더라도, 좀 인기가 있다 싶은 타사 제품을 그대로 벤치마킹 했다는 점은 드라마의 악재로 자리잡는다. 벌써 수년째 이어져온 <사랑과 전쟁>이야 그 비현실성이나 선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혼 위기에 몰린 실제 사례들을 참조한다는 점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소재 고갈로 인해 별별 해괴한 사례들을 다루는 바람에 점차 <세상에 이런 일이>수준이 돼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채널만 바꿔 같은 시간대에 또다시 <사랑과 전쟁>의 '종합편집판'을 보라는 SBS의 기획력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내의 반란>의 기획의도를 보면 무슨 대한민국 주부들의 한풀이를 자처하고 나선 듯 싶다. 그렇다면 정말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 부부들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었는가? <아내의 반란>은 부부 문제를 단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단순명쾌한 도식을 들이대고 있다. 마당놀이나 고전해학극도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다. 이런 도식에 따르자니 남편들의 역할은 고전소설에나 나올 '평면적 인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조준기(조민기 분)는 '밤 일' 못하는 남편, 박민구(선우재덕 분)는 바람둥이, 김병구(이상우 분)는 무식한 데다 가끔 폭력까지 쓰는 못난 남편이라는 각자의 유형화된 역할만을 대변할 뿐이다. 콩쥐는 원래 선하고 팥쥐는 원래 악할 수밖에 없듯 각자의 정해진 운명대로 따라가면 그만인 배역은 연기력을 요하지도 않는다. 굳이 조민기나 선우재덕, 이상우 같은 출연료 비싼 배우를 쓸 필요도 없었다. 대역배우거나 심지어 모자이크 처리한 일반인이 출연했다 해도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남편들의 캐릭터가 이러할진대, 그 상대방인 아내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다만 여배우들에게는 좀 색다른 임무가 주어졌으니, 몸매 관리와 과다 노출이라는 과제였다. 도식적인 인물들이 부부 문제를 유형화시키는 '단순한' 플롯을 두 시간이나 끌고 가자니 결국 해답은 낯뜨거운 선정성 뿐이었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 이미 전회 '19세 이상 시청가' 판정을 받아 이슈를 끌어냈다. 어처구니없게도 SBS가 '금요 드라마'를 신설할 때 애초 기획은 '가족 드라마'였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훈훈하고 따뜻한 이웃의 이야기'를 담자는 원래의 취지는 어디로 실종되고, 결국은 또 시청률만을 쫓다못해 에로 비디오의 영역까지 넘보고 말았는가? 부디 다음 번 '금요 드라마'는 다른 선택이기를 기대한다. SBS가 이왕 '드라마 공장'이 되기로 했다면, 한번쯤은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다룬 정통 드라마로 진검승부 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그것이 지금의 소재주의 드라마들 속에서 오히려 신선한 충격이 되리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주/ 김 원, 문화비평가, gonews.co.kr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