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X파일을 잊고 있는 우리 언론, 냄비언론이다” “MBC,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기부 도청 테이프, 이른바 X파일을 입수, 보도해 검찰에 기소돼 있는 MBC 이상호 기자가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의중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는 2006년 1월 2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진행 신율, 저녁 7시5분-9시)과의 인터뷰에서 “도청 테이프를 들어보면 이건희 회장은 심지어 피라미 검사에게 얼마의 돈이 갔는지까지도 하나하나 꼼꼼히 다 챙기는 인물”이라며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 역시 이건희 회장의 의중에 따라 이뤄진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상호 기자는 이어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의 상의 없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삼성 이건희 체제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힌 뒤 “안 그래도 X파일 문제로 현 정부와 거리감을 느껴왔던 삼성 이건희 회장이,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참여정부가 최근 양극화 해소를 아젠다로 던지는 등 경제 철학에 있어서도 방향 선회를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면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는 또 “X파일을 제공한 공익적 제보자 박인회씨 2심 공판이 어제 있었지만, 어떤 언론의 어느 기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벌써 X파일이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은 냄비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호 기자는 그리고 “MBC가 언론 본연의 사명에 따라 X파일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법적으로 여러 가지 난제가 있어 MBC로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아주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밝힌 뒤 “국민의 엄중한 요구가 있다면 MBC도 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하 방송 내용 전문 =========== 어제 공판은 어떤 내용이었나? 엑스파일 공개와 관련해 MBC가 제보했던 박인회씨, 당시 미림팀에서 엑스파일 녹취를 담당했던 공운영씨에 대한 결심 공판이었다. 이상호 기자 부분에 대한 공판은 아직 열리지 않았나? 나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있는데, 3월 중에 공판에 시작될 것 같다. 박인회씨가 도청 테이프를 안기부 미림팀장으로부터 받아서 삼성 고위인사에게 내용 공개를 협박했고, 금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했고, 그 뒤에 이상호 기자에게 테이프를 넘겼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게 사실인가? 사건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데, 언론은 거울과 같아서 얼룩이 묻어있거나 왜곡되어 있으면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 시청자들은 사실과 다른 것들로 잘못 알게 된다. 잘못된 정보에 의해 판단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게 언론의 속성이고 책임이다. 이번엔 불행하게도 언론을 통해 왜곡된 부분이 많다. 중앙일보를 비롯해 삼성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일부 언론에 의해 박인회씨가 대단히 파렴치한 분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물론 박인회씨가 삼성 이학수씨를 접촉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공운영씨 등이 복직을 요구했는데 복직과 관련해서 일거리들, 그분들의 부탁을 하기 위해 간 것이다. 물론 자기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겠거니 하는 기대는 있었겠지만,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7년, 나에게 제보를 주던 시점으로부터는 5년,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거쳐 과거를 반성하는 입장에서 나에게 제보한 것이었다. 따라서 박인회씨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위해 아주 필요한 공익적인 내부 제보자였던 것이다. 금품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다는 것? 그렇다. 공운영씨 복직을 요구한 자리에 그냥 같이 간 것인가? 박인회씨는 미국 교포사회의 터줏대감같은 사람이다. 80년대 재미동포 사회를 조직화했다. 87년 당시엔 대한민국 민주화 격변기에 수천명의 동포들을 조직해서 대한민국 민주화 지지 지휘를 이끌어낸 주동자이기도 하고, 최근까지는 통일학교 등에 관여하고 있다. 미국 동포사회의 재야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분인데, 지금 파렴치한으로 몰려있다. 인권변호사인 강신옥 변호사가 돈 한 푼 받지 않고 변론해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제보자에 대해 악의적으로 왜곡되는 면이 있다. 어제 공판에서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있나? 1심의 사실관계에서 법리적인 내용을 다루는 공판이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아쉬웠던 건 재판부가 엑스파일에 대해 공익적 제보를 시도했던 박인회씨에 대한 최소한의 평가도 없이, 게다가 현재 박인회씨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수술까지 받은 상황인데, 3번째 보석신청도 무의로 하고 있고, 무리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어제 공판에 기자들이 왔나? 한국언론을 솥뚜껑언론, 혹은 냄비언론이라고 하지 않나. 어제도 한명의 기자도 볼 수 없었다. 엑스파일 문제, 삼성이 돈을 갖고 정치권과 관료사회를 매수하려 했던 대단히 반헌정적인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언론의 주요 관심에서는 사라진 사건이 됐다. 이런 현실이 착잡할 것 같다. '익숙한 절망과 조우하게 된다'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게 언론의 일차적 사명이겠지만, 우리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유지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혹시 MBC가 엑스파일을 공개하겠다는 건 검토되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테이프 내용을 온전하게 시청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하지만 삼성 측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다. 또한 막강한 자금력으로, 예를 들어 우리가 테이프를 직접 인용하거나 방송했을 경우 수십 억원을 지급하도록 가처분 결정이 나와있다. 회사로서는 큰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진행하기 어렵다. 언론 단체에서 헌법 소원을 준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하튼 국민적 알 권리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내용인만큼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이 들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현재 MBC는 법적 제제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 법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방송할 수도 있다? 그렇다. 누군가 희생을 치를 것을 자임하면서 공개하는 것이 언론인데, 국민들의 엄정한 요구가 있을 경우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명관 삼성물산 전회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는데, 이걸 두고 "삼성이 참여정부와 등 돌리는 신호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는데? 현명관 회장이 말씀하신 내용 중 두 가지가 관전 포인트다. 하나는 "삼성의 공식적 입장과 분리해서 생각해 달라"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이건희 회장께 보고한 적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엑스파일에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건희 회장은 국가공권력조차 직접 조사를 하지 못한, 그야말로 천상의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존재다. 그분은 텍스트로만 존재한다. 고대 학생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정당한 요구를 했어도 물의를 일으켰고, 이번에도 감히 검찰조차 직접 부를 수 없는 분이다. 하지만 엑스파일 자체는 인간 이건희 회장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현명관 회장이 독자적으로 정치판으로 뛰어들도록 용인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하나 다 챙기는 분이다. 일개 피라미 검사들에게 준 돈까지 챙기고, 돈을 전달받은 정치인들의 반응까지 꼼꼼히 챙기는 분이다. 보고 과정 또한 아주 조직적으로 진행된다. 아주 정교하게 불법적인 금품 전달까지도 챙기는 분인데, 하물며 삼성의 대표 CEO이자 이건희 회장이 가장 아끼는 분이 정치판에 뛰어드는데 이건희 회장이 보고받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현명관 회장의 한나라당 입당은 이건희 체제에서 고도로 기획된 전략적 판단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더이상 민심에 몰려 우리 사회의 양극화의 고통을 직시할 수 밖에 없었던 현 정부로부터 더이상 기업자유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단, 그리고 엑스파일 이후 현 정권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유턴한 것으로 보여진다. '황우석 교수 지지 국민연대'에서 서울대 정명희 위원장을 고발했는데, MBC 기자로서 어떻게 보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쉬우면 진실이란 이름이 그렇게 빛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런 감행을 하는 게 언론사 기자인데, 점점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지형으로 간다. 이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들에게 이미지를 부여한다. 과거엔 돈과 권력이 따로 존재했는데, 이제는 사실관계로서 피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의 친숙함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은 진실이 침해되는 아픔을 느낀다. 한 때 PD수첩을 종용하려고 했는데, 그 때 정치권 등의 압력은 없었을까? MBC라는 회사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끝> CBS편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