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에 등장하는 재벌은 삼성" 이상호 기자, 공개강연에서 밝혀... "어떤 희생도 감수" MBC에서 두달여간 보도여부 논란을 빚었던 'X파일'이 <조선일보>에 의해 실체가 확인된 가운데 이상호(사진) 기자는 "'X파일' 보도를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20일 오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주최로 서울 을지로 향린교회에서 열린 대학언론강좌에서 'X파일'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MBC는 87년 방송민주화투쟁 때 국민의 힘으로 세운 공영방송"이라며 "MBC라는 봉화대를 통해 꼭 불을 밝히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로서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보도관철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이어 "MBC 내부에서도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과 함께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조만간 MBC에서 보도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보기관으로부터 조심하라는 주의 받았다" 그는 또 'X파일' 확보경위에 대해 "미국에 가서 테이프를 입수했다"며 "그 과정에서 삼성에 취재내용과 일정이 다 노출돼 한국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관련 재벌이 삼성그룹임을 적시했다. 그는 테이프에 수록된 내용과 관련,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다만 "감춰진 이건희 회장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다"며 "삼성 재벌과 삼성을 떠받치는 정·언·관 기득권 복합체를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불법도청 당사자인 정보기관에서도 이 기자의 취재사실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면서 "그래서 더욱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X파일 보도불가' 사태와 최문순 사장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기자 사회가 겨울잠을 자던 시절 언론노조를 띄운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즉답을 비껴갔다. 그는 대신 "회사 설득을 포기하고 개별행동에 대한 유혹을 많이 느꼈지만 MBC의 건강성을 믿는 구성원들과 함께 보도관철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답변으로 MBC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 내 홈페이지도 해킹했다" 이날 강의에서는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 이를 대하는 기자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많이 언급됐다. 그는 먼저 '이건희 회장 고려대 박사학위 수여식 사건'을 거론하고 "내가 학생이던 시절 학생회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대생은 이제 삼성에 취업 다했다'라는 식의 인터뷰가 나오더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며 언론의 삼성보도를 성토하기도 했다. 그는 "삼성이 (한국기업의) 경쟁력 높이는데 이바지한 것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이건희 일가의 회사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이건희 일가 지분은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는 국민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사회 구성원들이 삼성문제를 이건희 개인문제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삼성의 꾸준한 대국민홍보 결과로 해석한 그는 "(자본주의) 시장이 길러낸 기자들도 이건희 회장 입장에서 삼성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삼성의 언론장악력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밝혔다. 일례로 그는 "삼성이 시공한 고가도로 상판이 떨어져 적잖은 피해가 났는데 아예 보도되지 않았다"면서 "삼성 비서실에서 입막음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제보가 와서 취재에 들어가니 이미 삼성은 숨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 홈페이지도 삼성쪽으로부터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이건희 우상화' 태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그는 "이건희 회장 육성을 들어본 적 있는가"라며 "언론은 우상을 키우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언론이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고 평가해야 하는데 이건희 회장은 항상 텍스트로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그는 "삼성이 여러번에 걸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이건희 회장은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도 언론과 기자들은 아무도 이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 중요한 이슈들이 너무 많이 있지만 기자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반성도 이어졌다. "상당 이슈들이 자본의 문제와 부딪치게 되면 본질로 못 들어가고 있다, 한미관계도 그렇고 환경문제도 그렇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이같은 상황을 '죽은 기자의 사회'로 명명했다. 언론, 자본에 맞서지 못해... '죽은 기자의 사회" 그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SBS 등 그동안 보도를 통해 강도 높게 비판했던 다른 언론사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언론이 자본의 편을 들고 있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문제와 기자들의 함수관계에 대한 나름의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조선일보와 SBS에 소속된 기자들의 졸업학교를 조사한 적 있는데 '강남 8학군'에 'SKY'(서울대·고대·연대) 출신이 많았다"면서 "시장이 부여한 경쟁력으로 키워지고 자본에 의해 자라난 기자들이 자본의 문제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선 보도하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보도는 하지 않는다"면서 "노동문제에 대해선 자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교육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는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고 학생들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 키워야 한다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면서 "대학이 생산성 높은 고급 노동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돼야 한다는 언론의 관점은 지금 서울대 주장과 똑같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올해초 '구찌 핸드백' 사건과 관련,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다가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이후 '견디기 힘든 왕따'를 당했다"고 토로했다. 몇몇 후배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3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한국언론의 현실, 자신의 '기자론' 등을 열성적으로 설명한 이상호 기자. 그는 강의가 끝난 뒤에도 '사인'을 받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 덕분에 30여분간 '특강 아닌 특강'을 더 하고 자리를 떠났다. (2005-07-21 /안홍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