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기자?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MBC 보도국 이상호 기자는 ‘고발 기자’로 유명하다. 유명세를 치른 ‘X파일 사건’ 외에도 그가 고발한 사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보도 때문에 당한 소송만도 40여 건. 이제는 내공이 생겨 취재하면서 아예 소송에 필요한 문서 준비도 같이 한다는 그는, “철없다” 꾸짖는 세상을 향해 “기자도 반부패 보도활동을 통해 사회개혁에 힘을 보태야 하는 NGO”라며 당당히 맞선다.                                                            <다 함께, 더 맑게>                                                    (사)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글 이옥선  사진 임근재 담백한 기자. MBC 이상호 기자를 만난 느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담백’과 ‘기자’라는 두 단어가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밀어내며 자연스럽게 엉키지 못한다. 필자에게 기자는 적당히 거만하고 냉소적인, 군림의 이미지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아니 적어도 달라 보였다. 따뜻하고 겸손했다. 잠시였지만 그에게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마르지 않는 애정을 보았다. 바람마저 포근한 봄날에 MBC 사옥 옆 벤치에서 그, 이상호를 만났다. 고발기자 이상호, 인당수에 빠지다 “제가요, ‘투명하다’란 말을 제일 좋아해요. 부정과 부패를 투명하게 만든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근데 그 투명은 위에서 선언만 해서 되는 건 아니에요. 아래에서부터의 합의가 기본이 되어야지요.” 이 ‘투명함’을 위해 10년 기자생활 동안 참 바삐도 움직여왔다. ‘카메라출동’, ‘시사매거진2580’, ‘사실은’ 같은 시사 프로그램들을 두루 거쳤다. 연예인과 매니저 간의 불공정 계약,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예산 운용을 비판한 ‘하남국제환경박람회’, 전두환 전(前) 대통령의 비자금,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실태 등 그가 고발한 사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는 사이 40여 건의 소송을 당했고 회사에선 ‘데리고 있기 힘든 놈’으로 찍혔다. 이젠 ‘내공’이 생겨 아예 취재하면서 소송에 필요한 문서 준비도 같이 한단다. 소송 당하지 않도록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소송에서 이길 것인가 연구하는 적극적인 기사 작성이 그의 체질에 맞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그 많은 소송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이제 소송도 기사를 쓰기 위한 언론환경이 되었어요. 고발기자라면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의 취재과정으로 감내해야지요.” 그런 그에게도 지난 해 X-파일 사건은 혼자 넘기엔 너무 높은 산이었다. 그가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중앙일보 전 사장 사이의 대화를 담은 테이프와 녹취록 등 안기부 비밀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패 고리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마음이었어요. 삼성을 건드리면 살아남기 힘들겠다고도 생각했지요.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테이프를 가지러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 후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들이 이어졌다. 권력유착의 밀담을 공공의 영역으로 폭로한 그가 오히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소환되는 등 ‘피의자’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의 바다를 건너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그 환하던 웃음도 엷어졌다. 그래도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준 국민들이 고맙다. 그가 이런 소위 ‘큰 건’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사기 당해 가슴 치는 할머니, 왕따 당한 아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어머니, 모두 그가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이상호 기자의 고발 뉴스’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민초들로 북적거린다. 그들의 글에는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줄 거라는 기대가 묻어난다. ‘로맨틱 액티비스트’, 문제기자가 되다 나이 마흔, 세상과 타협할 나이가 됐을 법도 하다. 무엇이 그를 계속해서 고발하고 그러다 다치고, 또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것일까? 민주화 열기로 떠들썩했던 87년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그저 감정적으로 독재에 분통터지고 먼저 저항한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을 가졌던 ‘로맨틱 액티비스트’였단다. 87년 6월 9일, 한 선배가 같이 집회에 나가자고 했다. 집회에 나갔다가 이미 몇 차례 경찰서에 들락거렸던 새내기 이상호는 가기 싫었지만 선배의 설득에 따라나섰다. 데모대 맨 앞줄에 선배가 섰고 바로 뒷줄에 이상호가 섰다. 신촌로터리로 행진하던 중 눈앞에서 선배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바로 그 선배가 고 이한열 열사다. 그가 ‘문제기자’로 낙인찍혀도 지치지 않고 초심을 지키도록 다독거려주는 기억. 바로 이한열 선배에 대한 기억이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뒷줄에 있는 다수의 안전이 앞줄에 선 누군가의 희생으로 담보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지요.” 약자의 편에 서려고 쉬지 않고 달렸고 종종 앞줄에 서 있다는 존재감도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앞줄엔 항상 더 많이 희생하는 누군가가 있었단다.   10년 세월에도 사람들의 아픔에 무뎌지지 않는 그만의 비법은 ‘철들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억울하고 힘없는 취재원을 만나면 같이 손잡고 질질 짜기 일쑤다. 하지만 사회는 철들지 않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당신이 기자지 NGO냐”며 퉁을 놓는 이들도 있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기자도 반부패 보도활동을 통해 사회개혁에 힘을 보태야 하는 NGO다. 기자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순간 기득권층이 되어 버려 힘없고 답답한 사람들의 얘기가 들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자는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속해서 철없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답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당사자가 되어 그들과 소통하고, 화해의 과정을 함께 하는 것, 바로 ‘무당’ 같은 역할을 하는 기자가 좋은 기자지요.” 같이 울고 떠들고 푸닥거리해서 마음이 아픈 이들을 다독거려 주는 것, 그의 ‘무당기자론’이다. 그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조리에 맞서 내부고발을 강행한 우리시대 의인’ 내부고발자에 관한 문제다. 사회가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는 홈페이지(http://www.leesangho.com)에서 내부고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소금창고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책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의 인세를 종자돈으로 해 ‘아름다운재단’과 공동으로 만들었다. ‘마이크를 든 전사’ 이상호. 그는 혹자의 말처럼 공명심에 들뜬 철부지도, 또는 망상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갈망으로 무장된 ‘부드러운 전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