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한국사회운동의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
조희연 , <동향과 전망>, 1989. 가을, 백산서당, 서울
1. 머리말
이글의 목적은 6 25사변 이후 70년대 말까지 한국사회운동의 발전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현단계 변혁론 논쟁의 핵심적은 쟁점은 남한사회 변혁운동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어떻게 통일적으로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변혁운동의 '현재'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변혁운동의 '역사'적 전통을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인가.【주】이러한 과제가 바로 동시대를 사는 모든 연구자에게 절박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제와 연관해서 볼 때, 이 글은 현단계 논쟁의 지평을 역사적으로 확장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간 80년대 사회운동의 '괄목'할 만한 변화상이 사회과학자들과 실천운동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에, 80년대 사회운동 및 그운동론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연구 분석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러한 '괄목'할 만한 성장(물론 필자는 80년대 변혁운동이 대중운동, 조직운동, 사상운동이라는 측면에서 일정하게는 60, 70년대와 동일한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의 예비기이자 준비기라고 할 수 있는 80년대 이전의 운동사에 대해서는 80년대 사회운동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비교론적 시각에서 언급되었을 뿐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다행히 80년대 중만이후 이제까지 금기시되었던 '제국주의 지배'문제, '민족해방운동;의 전통문제 등이 부각되는 것을 계기로 하여, 해방 후 미군정기의 운동, 더 나아가 1930, 1940년대의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확대되어 온 바 있다. 이 글에서는 80년대 운동의 전사(前史) 정도로만 취급되어 왔던 50,60, 70년대 사회운동의 발전과정을 분석해 부고자 한다. 이 시기 운동에 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될 때 비로소 일제하 및 미군정기의 운동과 80년대 운동 사이의 공백이 메워질 수 있을 것이며, 근현대 운동의 발전사를 단절없이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이글은 전후 사회운동분석의 방법론 및 시각을 둘러싼 전제적 논의를 앞세우고, 그에 바탕하여 전후사회운동의 전개과정을 시기구분한 후, 각 시기별 사회운동의 특징 및 연구상의 쟁점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까지 이러한 선행작업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 한째 이 글을을 쓰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을 '작업가설'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전후사회운동사 연구의 방법론적 논의
사회운동사에 대한 총체적 분석은 사회운동사를 다음과 같은 제연관속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즉 사회경제사회와 사회운동사, 정치사와 사회운동사, 사회의식(이념)사와 사회운동사의 연관이 바로 그것들이다.
먼저 사회운동은 한 사회의 객관적인 경제구조에 근거를 두는 제모순에의 대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회운동사를 사회경제사의 맥락 속에서 접근하는 것은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다음 사회운동은 사회경제구조 자체의 변화를 목표로 하나, 현실적 전개는 그러한 사회경제 구조에서 초래되는 정치적 위기를 계기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 정치적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은 - 즉 정치적 위기를 예방하거나 완화, 억제, 해소하기 위한 제반시도 - 총괄적으로 정치세계의 변화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위기 및 그에 대응하는 정치체계의 전개와 관련하여 사회운동사가 분석되어야 한다. 한편 사회운동은 사회경제적모순, 정치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구성원들의 주체적 의식적 조직적인 집단활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운동의 전개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적 내용 여하에 따라 상이하게 전개된다. 따라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사회의식, 나아가 그러한 의식의 체계화된 형태로서의 운동이념에 대한 분석은 사회운동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사회운동사를 분석함에 있어서는 사회경제사 정치사 및 사회의식사와의 관련성을 올바로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방 이후 한국사회운동사를 분석할 때 직면하게 되는 여러쟁점 및 분석의 원칙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하자.
첫째, 현단계 한국사회운동(계급해방운동)이 갖고 있는 '민족해방운동'으로서의 성격과 '탈(脫)자본주의적 운동'으로서의 성격의 상호관계는 무엇이며, 이양자를 어떻게 통일적으로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주】 현하의 변혁론 논쟁과정에서는 이 양자를 대립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입장도 존재하고 있는가. 이러한 시각은 운동사를 보는데에도 투영되어, 전후(6 25 이후) 사회운동사를 계급대립만을 강조하는 견해에 대립하여 민족해방운동의 발전과정으로(만) 규정하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해석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미성숙이 낳은 '소부르조아'적 해석에 다름아니라고 하면서 운동이 약화되고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변혁운동이 확대 강화되어 온 과정이라고 파악하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러한 해석상의 대립은 현단계변혁논쟁의 발전적 전개에 의해 궁극적으로 해결되겠으나, 필자는 현단계 한국사회운동이 갖는 민족해방운동적 성격과 탈(脫)자본주의 운동적 성격은 결코 같은 차원에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화시켜 이야기할 때 '식민지종속형'사회에서의 '계급해방운동'이 '민족해방운동'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볼 때 그러한 대립적 구도의 설정은 남한 사회운동 발전의 역사적 현재적 조건의 특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남한의 사회운동은 여타의 제3세계 사회운동과 달리 '내전'이라는 과정을 거쳐 변혁적 사회운동의 전통이 극심한 타격으로 현저히 약화되었고 따라서 전후의 사회운동은 그러한 '단절'에 가까운 악조건을 극복하고 변혁적 사회운동이 전통을 복원시켜 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민족해방운동'으로서의 보편적 성격의 강조는 바로 이러한 운동전통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함축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해방운동의 객관적 조건-재국주의 지배라는 본질적 규정성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전후 제국주의체제의 변화속에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보다 일반적으로는 '발전도상국 내부에서의 사회경제적 발전수준의 분화' 현상으로 불 수 있고, 일국적으로는 종속자본주의화의 진전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조건변화로 파악될 수 있다. 발전도상국에서 나타나는 종속자본주의적 발전의 새로운 경향이 갖는 변혁론적 함축의 문제가 바로 60년대 말 이후 소련 및 남미 등의 일반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데,【주】 남미에서는 이러한 쟁점이 '민족해방운동'의 새로운 조건 해명이란 시각에서, 그리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갖는 공산당 혹은 노동자계급당의 강령수정을 위한 당내 이견으로 제시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의 전통이 현저히 약화된 상황에서 그것이 복원되어 가는 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에 종속자본주의적 발전이라는 새로운 현상의 변혁론적 위상이 기존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론 일반과의 대립물소서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노동계금의 정치적 진출이 확대되고 노동계급이 민족(해방)운동의 주력으로 등장하게 됨과 동시에 전통적 변혁운동이 새롭게 재조명될 때 현재의 논쟁구도는 새롭게 변화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6 25를 분기점으로 한 남한사회운동의 단절성과 연속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양극단의 입장으로서 '절대적 역량단절론적 해석' 과 '지도연속론적 해석'【주】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전자는 6 25를 분기점으로 하여 변혁운동의 전통이 인적 조직적 이념적으로 단절되었고 거의 원점에서부터 재출발하였다고 보는 데 반해, 후자는 "역랑은 연속되며, 그 형태와 내용이 조건과 시기에 따라 변하기는 하지만 지도는 관철되고 운동발전의 주된 동인이 바로 그 지도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본다.
흔히 사회운동이 발전한다고 할 때 그것은 ①전위적인 인자들의 육성 정도, ②대중의 정치적 진출의 정도,③위 양자의 조직적 결합정도,④지배이념에 대항하는 변혁이념의 확산 정도 및 중간 제세력의 포섭 정도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제기준과 연관해서 볼 때, 6 25 이전과 이후는 현격한 변화가 일어나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전위적인 제세력의 제거 및 이주, 6 25를 통해 증폭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의식과 피해의식으로, 남한사회성원의 진보적 의식은 잠재화되거나 굴절되고, 남한의 사회운동은 지배층과 대항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현격히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조건을 기초로 하여 지배층은 사회성원들 사이에 '극우적인 의제적(擬制的) 합의(consensus)'를 창출하고(보다 엄밀하게 얘기한다면 무자비한 탄압 패배로 인한 공포감의 결과로서의 체념 침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 전통적인 변혁세력의 잔류층 및 변혁적 지향에 -일부나마-공감하는 제세력을 제거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로 앞의 ①②③④의 제측면에서 현저한 역전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러한 역전에 의해 전환된 계급적 역관계에 기초하여 남한사회가 친미반공분단종속체로서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변혁운동의 완전한 '단절'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전통적 변혁운동의 '잠복' 및 '약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분명히 전후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간속에서 전통적 변혁운동은 지배권력의 '타격'에 의해 ('공세적 확장'이 아니라) '자기방어'에 급급한 수중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후의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 자체의 균열에 따른 새로운 변혁적 인자의 성장에 대응하여, 그러한 '자기방어적 잠복'을 벗어나 '공세적 확장'을 지향하면서 새로운 변혁적 인자와의 결합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가 바로 50~70년대의 여러 '좌익사건'들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현상을 '지도연속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단절론' 못지 않게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지도연속'이라는 것을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제한된 범위에서의 지도 자체의 존재를 얘기할 수는 있겠으나, 6 25이후 사회운동의 조건은 (지도를 매개할 수 있는)전위적 제세력의 현저한 약화, 지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의 진보적 의식의 잠재화 및 그 결과로서 대중운동의 단기적 침체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 자체를 확대 해석하는 것, 즉 전후 남한사회운동 발전의 주된 추동력이 그 '지도'에 의해 주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그 주된 추동력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균열에 따른 새로운 변혁운동세력의 형성(청년학생운동의 이념적 심화와 기층민중운동의 성장 및 그 결과로서 새로운 변혁운동인자의 생성 등)에 의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변혁운동의 전통은 전후의 조건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변혁운동이 성장하면서 비로소 '계승'되고 '활성화'된다고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후의 사회운동사는 전통적 변혁운동의 약화과정이자 새로운(자생적) 변혁운동의 성장에 대응하는 부분적인 '공세적 확장'으로의 전환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변혁운동의 강화과정이자 그 강화에 따른 전통적 변혁운동과의 부분적 결합 및 변혁전통의 내적 담보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셋째, 사회운동의 범위 혹은 사회운동사의 연구영역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정치사와 사회운동사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右경계의 문제) 광의의 정치사는 사회운동사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협의의 정치사하는 개념을 전제하게 되면 "기존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형(地形)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집단적 조직적인 행동"을 정치사와 구분하여 사회운동사의 영역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야당사는 정치사에 포괄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정치사와 사회운동사를 구분하는 시각에 서더라도, 근현대한국사회의 정치사와 사회운동사는 상호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접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사회 정치변동의 현실을 6 25이후 극우적 지형으로 협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둘러싼 집권세력과 야당의 정치갈등은 '극우적 지형에서의 퇴행적인 권력갈등'으로 왜소화하게 된다. 더구나 극단적인 냉전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합법적인 정당활동의 범위 또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사의 영역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한된 영역이 사회운동의 발전에 의해 확장되면서 정치사의 영역, 합법의 영역이 동시에 확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정책사를 제외한 정치사의 영역은 사회운동사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전후 사회운동사의 분석에서는 정치사와의 차별성을 중심에 놓고 분석하되, 정치사와의 고정된 경계선에 집착하지 않고 정치사 및 사회운동사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비합법적인 운동형태들을 사회운동사의 범위에 포함할 것인가 하는 문제(左경계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좌익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혁명당 사건'이나 '통일혁명당 사건','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등을 남한사회운동사의 범위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며, 포괄한다고 하면 어떻게 위치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로 된다. 필자는 이러한 제반의 시도들을 남한사회운동의 급진적 형태로서의 '변혁적 사회운동'범위에 포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좌익사건의 인적구성은 대체로 구혁신세력과 학생운동출신 인자 및 기층대중인자로 구성되고 있는데, 남한사회운동의 발전에 따라 좌익사건의 인적 구성에 있어 학생운동출신 인자 및 기층대중 인자의 비중이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좌익사건들까지를 '남한'사회운동사의 범위에 포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반 좌익사건의 인적 구성이나 대중적 기초는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남한사회운동 사상의 위치 부여에 있어서는 각 사건들의 구체적 내용에 근거해서 세밀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3. 전후 사회운동사의 시기별 분석
이상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전제위에서, 전후 한국사회운동사의 시기구분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전후 사회운동의 단계적 변화는 한국사회의 경제구조【주】 및 정치체제의 변화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정단계의 경제구조의 위기와 그에 따른 경제적 모순의 첨예화 및 대중의 정치적 진출의 확대 그를 반영하는 사회운동의 고양과 기존지배체제의 정치적 진출의 위기 지배체제의 재편과 대중의 정치경제적 요구 및 사회운동에 대한 전면적 탄압, 경제구조의 재생산메카니즘의 변화 탄압 및 정치경제적 변화를 계기로 한 사회운동의 이념 및 인식의 심화 새로운 사회운동단계의 출발"이라는 과정으로 전후 사회운동이 변모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전후 사회운동사를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시기구분하였다.
·제1시기(1953~60년)
·제2시기(1960~61년)
·제3시기(1961~72년)
·제4시기(1972~79년)
사회운동적으로 볼때 제1시기에서 제4시기까지의 시기는 6 25이후 남한에 성립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정치경제적 균열 및 그 재생산메카니즘의 변화에 대응하여, 남한의 사회운동이 민족 민주 민중 변혁운동으로 재정립해 오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제1시기 이전 1945년에서 1953년까지의 시기는 독립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전면적인 계급투쟁의 시기인바, 이 시기는 북한에서의 민중민주주의혁명(PDR)의 성공 및 '남한에서의 PDR의 실패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성립'으로 인한 남북 분단구조의 형성 및 6 25전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사회운동사의 제1시기는 바로 이러한 조건 위에서 출범하는 '전통적 변혁운동의 약화 잠복 및 사회운동의 침체기'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는 전후 복구의 시기이자 원조에 기초한 시기이며, 한국의 자본주의적 관료적 성격이 심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간권위주의정권을 매개로 한 친비반공분단종속체제의 재생산기'라고 할 수 있다. 이 50년대는 귀속재산 불하, 원조물자의 분재 및 가공을 둘러싸고 민간예속독점자본이 형성되는 시기인데, 50년대 말에 이르면 원조경제의 종결에 따라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경제적 재생산기초가 급격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근거로 하고 민간권위주의정권의 비민주성 부패를 정치적 저항계기로 하면서 4 19혁명이 발발하고 여기서 사회운동사의 제1시기는 종결하게 된다.
1960~61년의 제2시기는 정치경제적 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가 새로운 재생산메카니즘을 확립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겠고, 사회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과도기적인 지배체제의 이완상태를 계기로 하여 변혁적 사회운동이 제한적으로 재진출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사회운동은 처음 친비반공분단종속체제의 제한적 측면, 즉 그 비민주성 부패성을 계기로 하여 출발했으나. 곧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 분단과 대결하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여기서 지배체제의 물리적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군부와 미국에 의한 재반격 및 지배체제의 재편시도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5 16군사쿠데타이다. 5 16쿠데타는 새로운 정치경제적 구조로 재편되는 분기점이 되고 사회운동의 새로운 조건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사의 제3시기로의 경계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의 시기는 사회운동의 객관적 조건에서 현저한 변화를 드러내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50년대의 원조경제의 위기에 대응하며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종속적 자본주의화'가 추진되는 시기이다. 이 종속적 자본주의화는 예속성의 확대 심화라고 하는 기본구조가 유지되면서 새로운 자본주의적 축적양식이 정착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5 16군사쿠데타로 출현한 군부파시즘은 바로 이러한 종속적 자본주의화에 조응하는 최적의 정치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군부파시즘을 매개로 하는 종속적 자본주의화에 의해 60년대의 한국사회는 자본주의적인 방향으로 광범위한 재편을 겪게 되고, 동시에 독점화한 '탈민족경제'화 과정도 보다 심화되어 가게 된다. 사회운동사적으로 이시기는 군부파시즘의 대두에 의해 제2시기에 표면화된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의 일부는 제거되고 일부는 잠복하면서, 군부파시즘의 지배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여 민족민주운동의 방향을 모색한 시기하고 할 수 d씨다. 이 시기는 초기 군부파시즘이 표방하고 있던 '민족적 민족주의'의 허구성이 '한일회담반대투쟁' '3선개헌'등을 통해 깨지면서, 후반에 들어 사회운동이 대중적으로 다시 활성되고 여기에 종속적 자본주의화자체의 경제적 위기,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로 인한 국제적 영향이 중첩되면서, 군부파시즘의 총체적 위기로 귀결된다.
제3시기와 제4시기를 구분하는 획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이 글에서처럼 유신체제의 성립을 분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고 그렇지 낳으면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제모순이 표면화하게 되는 70년대초를 분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필자는 60년대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제모순이 현상화되고 그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위기에 대응하여 지배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유신체제의 성립을 분기점으로 삼았다. 유신체제는 정치적으로는 60년대까지의 형식적인 민주주의 자체를 제도적으로 허구화시키면서 군부파시즘체제를 보다 폭력적인 성격으로 재편하는 것을 의미하며, 경제적으로는 위기에 처한 예속독점자본의 자본축적 구조를 전면적으로 보강함으로써 지배체제의 경제적 안정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적인 군부파시즘하의 이러한 독점적 자본축적은 한편으로는 반파시즘 민주화운동의 고양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급의 경제적 진출 및 생존권투쟁의 고양을 가능하게 했다. 유신체제 이후 제4시기의 사회운동은 반파시즘 민주화운동과 기층민중의 생존권투쟁이 결합되면서 80년대의 변혁적 사회운동의 기반이 조성되어 가는 시기로 규정될 수 있다.
제1시기(1953~60년)
1950년대는 이승만정권이라고 하는 민간권위주의정권을 통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재생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6 25이후 남한사회의 계급적 역관계의 현저한 전환과 극우적 재편으로 인하여 변혁적 사회운동의 잔류세력이 잠복하고 침묵하는 시기로서 전반적으로 변혁적 사회운동의 침체기로 규정할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신생독립국에서의 정치경제적 변화의 방향은 구식민지 상황에서의 반제민족해방운동 관정에서의 세력구성에 의해 규정된다. 한국의 경우 1930년대 이후 반제민족해방운동으로부터 우파민족주의 세력이 광범위하게 탈락하고 좌파적 지향의 운동이 운동의 중심에 자리잡게 됨으로써【주】 해방 이후세력 구성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좌파민족해방운동세력의 주도성이 강한 상태에 있었다.【주】 그러나 한국사회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남한사회 내부적으로는 계급적 역관계의 현저한 전환을 겪고 극우적인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로 전환하게 된다.【주】
민족해방운동 과정으로부터 우파민족주의 세력이 탈락한 신생독립국의 일반적인 발전의 결과는 사회주의적 발전방향을 취하거나 비자본주의적 발전지향을 취하거나 비자본주의적 발전지향을 갖는 국가자본주의로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6 25이후의 이승만정권은 경제적으로 비록 국가부문이 지배적인 주도적 부문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관료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였고, 그 계급적 기초에 있어서는 이미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지향이 견지될 수 없었다. 이것은 물론 남북분단이 남한사회에 미친 정치적 결과이다. 더구나 6 25라고 하는 제세력간의 치열한 정면대결은 6 25직후 남한사회에 있어서 극우적인 제세력을 제외한 운동세력으로 하여금 자기방어에 급급한 조건에 놓이게 하였다. 이승만정권은 바로 이러한 전후의 조건 위에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를 강화하고, 그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인적 정지작업을 수행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주】
6 25이후 남한사회운동 세력중에서 먼저 남로당계를 비롯한 좌익세력은 그 핵심간부들이 대체로 월북하거나 파르티잔 투쟁과정에서 도태됨으로써 그 인적 기반 자체가 대단히 약화외어 있었다. 또 근로인민당계 역시 1947년 당 자체가 불법화된 후 6 25를 겪으면서 양분화되어 잔류세력은 50년대를 거쳐 잠복하다가 후게 4 19이후 혁신계로 일부 정치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한편 이승만과 한민당 중심의 단정수립에 반대하였건 비타협적인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나 중도세력들 역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강화에 따라 존립할 수 있는 정치적 입지를 상실하면서 잠복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6 25이후 50년대 남한의 정치공간에서 변혁적 지향을 갖는 제세력은 거세되거나 잠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아가 단정에 반대했던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세력이나 중도세력 역시 침묵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하의 극우적인 정치적 공간과 사회운동의 방어적 존재상태는 1950년대를 통하여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있어서는 바로 지배체제의 본질적 성격을 둘러싼 투쟁이나, 정치적 공간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타파하고자 하는 저항은 부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1950년대 지배체제의 정치적 균열은 그러한 본질적 문제를 둘러싸고 표면화되기보다는, 극우적 지형 내에 있어서의 제한된 정치적 주제를 둘러싸고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성경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이승만정권의 반복되는 비민주성, 부패성에 대한 도전으로 1950년대 지배체제의 균열이 현재화(顯在化)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주】
이러한 균열이 제도정치권의 균열로 표면화되는 것은 아무래도 1955년 12월 민주당의 결성에서라고 생각된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이승만정권의 비민주적 독주와 비합법적인 장기집권 시도 및 권력으로부터의 소외 때문에 '저항'적 야당으로 전환되었다. 민주당의 결성은 50년대 지배블럭 내의 이반(離反), 지배체제의 균열과 불안정성의 출발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1956년 대통령선거는 이승만정권의 재집권에도 불구하고, 지배블럭과 제도정치권의 균열, 더 나아가 이승만정권으로부터의 대중의 이반을 분명하게 드러내주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의 급서(急逝) 직후 이루어진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후보는 216만 표의 지지를 획득하였는데 이는 1952년 선거에서의 79만표에 비해 지지가 거의 3배로 증가한 것이었다.
이 선거에서 진보당【주】의 주상은 사회운동사상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진보당의 정책은 50년대의 극우적인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비추어 볼때 '변혁'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러한 변혁적 정책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남한사회의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로의 재편에 따라 잠재화된 대중들의 진보적 요구의 '우회'적 발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당의 지지기반 확대가 곧 전후 한국사회의 극우적 재편에 의해 배제된 변혁적인 운동세력의 복귀 혹은 대중성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조봉암 자신은 과거의 좌익운동으로부터 전향하여 이승만정권에 참여했던 경우로서, 전통적인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의 정치적 복귀라는 의미보다는 이승만정권으로부터의 이반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학생운동의 경우도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조건 때문에 변혁적 지행을 갖는 흐름은 극히 미미했다. 단지 1957년 신진회의 한 멤버인 유근일의 필화사건이라고 하는 이념적 학생운동 흐름의 한 돌출현상이 있을 뿐이다. 50년대 후반에는 학생운동 내에서조차 1957년 '이강석 부정입학사건 규탄시위'가 있었던 정도이고, 심지어 북송반대시위 등 관제시위가 지배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주】는 것을 보더라고, 당시 학생운동 역시 극우적 이데올로기적 지형에 유폐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이후부터 이승만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점차 확대되어가게 된다. 비록 당시는 격화된 냉전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대중들의 불만이 잠재화 되고 표면화되는 경우가 적었으나, 조봉암의 사형 및 진보당의 해산 등으로 인한 1인독재체제의 강화, 극우적인 정치기반을 공유하고 있는 정적(政敵)에 대한 탄압, 제1공화국 관료체제의 부패와 비효율성 등으로 대중들의 정치적 불만은 보다 심화되어갔다. 여기에 1950년 전체에 걸쳐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를 경제적으로 지탱하고 있었던 원조경제의 위기, 원조경제하에서 도태되어가는 자생적 궁핍화는 이러한 대중들의 정치적 불만을 근거짓고 도한 심화시켰다. 경제적으로 볼때 1950년대는 자립적 민족경제로의 가능석이 박탈되고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세계경제에의 예속적인 경제적 토대가 형성 강화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예속적 토대는 한편에서는 자생적 민족공업의 소멸과 배제, 다른 한편으로는 예속적 구조에 축적기반을 갖는 매판적인 독점자본의 형성과 강화에 의해 조성된다. 이처럼 자립적 기초의 붕괴 때문에, 50년대말 원조의 감소 및 그로 인한 원조경제의 위기는 곧 한국사회 전반의 정치사회적 위기의 직접적 계기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퇴진의 제요인 중 하나(여러 요인 중의 하나라기 보다는 가장 기적적, 시발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로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50년대 후반(57년경)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동북아전략의 변화를 들 수 있다. 1949년 중국혁명의 성공이후 균형을 잃었던 동북아 국제정세에 대응하여, 미국은 전후복구를 완료한 일본을 하위동반자로 하는 한 미 일 경제 군사블럭을 기반으로 동북아 반공전선의 재편 강화를 지향하였던 것이다. 이승만의 반일태도(한일회담 반대태도)는 미국의 이러한 동북아 정세재편에 커다란 장애였고, 여기에 이승만 퇴진의 객관적 조건이 미국의 동북아전략과 관련하여 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이 점은 추후 5 16군사정권의 주요한 역점사업의 하나가 한일회담의 성사와 한일관계 개선이었다는 점에서도 밝혀진다).
사회운동사의 제1시기를 종결하는 4 19혁명【주】은 이승만정권의 정치경제적 위기의 집약적 표현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4 19혁명은 학생운동의 선도적 투쟁에 일반시민들이 광범하게 동참하는 '도시대중봉기'【주】의 형태를 띠었는데, 봉기의 직접적인 투쟁목표는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성격과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이승만정권의 비민주성과 부패에 저항한다는 낮은 수준의 것이었다. 이는 50년대 사회운동을 전반적으로 제약하고 있었던 반공냉전이데올로기와 극우적인 정치적 지형의 규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낮은 수준의 투쟁목표에서 출발한 4 19혁명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 자체의 내재적 불안정성 때문에 곧 지배체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제2시기(1960~61년)
4 19혁명에서 5 16까지의 시기는, 50년대의 민간권위죽의정권이 붕괴되면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일시적 이완상태가 조성되고, 이를 계기로 하여 50년대에 잠복했던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의 일부(혁신계운동세력 및 진보적인 천연 학생운동 세력)가 대중운동의 장(場)에 재등장하게 되고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성격을 중심으로 변혁적 사회운동이 활성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균열은 미국 및 군부, 국내보수주의 제세력의 재반격을 낳고, 여기서 50년대식의 민간권위주의정권이 아니라 '군부파시즘을 매개로 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재생산기'로 이행하게 된다. 이 계기가 된 것이 바로 5 16군사쿠데타 이다.
그럼 이시기 사회운동의 경과를 사건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시기는 크게 두개의 소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시기는 4 19혁명으로부터 60년 후반에 이르는 시기로서, 민주당 정권에 혁명의 사후추진을 위임하고, 4 19혁명의 주력이었던 학생운동은 '신생활운동' '국민계몽운동' '학내민주화운동' 등 비정치적인 하위 수준의 개선운동에 몰두하는 시기이다. 둘째시기는 60년 후반부터 5 16에 이르는 시기로서, 혁신적인 정당 및 대중운동이 활성화되고 학생운동이 '급진화'되면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제도와 문제와 관련된 제반의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시기이다. 60년초의 2대악법 반대투쟁과 60년 봄의 남북학생회담추진투쟁 등이 이 시기의 주요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전자의 소시기에 나타나는 학생운동 전개의 내용적 주변화는 바로 4 19자체의 객관적 한계에서 주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한계점들로서는, 4 19혁명이 지배체제의 본질적 성격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권위주의정권 재생산의 비민주성 그 자체에 제한된 투쟁이었다는 점, 명확한 이념적 조직적 전망을 갖는 주도세력에 의해 주도되지 않았다는 점, 당시의 전반적인 대중의식이 극우적인 냉전이데올로기에 침윤되어 투쟁의 대중적 인식지평이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 투쟁의 주력이 학생 및 일반시민이었고 노동자 농민 등 계급적 대중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한계에 의해 규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4 19혁명은 민주당 정권의 계급적 성격, 당시의 지배체제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학생은 학원으로' '시민은 직장으로' 복귀하고 개혁은 자유당과 이념적 계급적 기반을 공유하는 민주당 정권에게 위임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당시의 이러한 한계는 곧 4 19이후 이루어진 7 29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과 역신 제당의 의회진출의 좌절에서도 반영된다.
제1시기의 이러한 한계, 나아가 4 19혁명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이 제2소시기이다. 즉 시민 민주주의적 성격의 운동이 점차 변혁적 사회운동으로 전환되어 가게 된다. 이러한 활성화를 가능케 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먼저 학생운동의 이념적 심화【주】와 급진화를 들 수 있겠다. 4 19직후 학내에는 여러 이념서클이 형성되어 이념적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것이 여러 조직형태로 외화되었던바,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족통일학생연맹」【주】등이다. 또 이시기에는 7 29총선에 패배하였던 혁신계 정당들이 대중운동적 차원에서 발전해 가고, 그 대중적 조직기반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다. 혁신계의 인적 구성은 주로 진보당 잔류세력과 50년대를 통하여 잠복하였던 좌익세력의 일부 - 여기서 구남로당계의 경우 노출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6 25시기까지를 통하여 제거되었거나 공식적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근로 인민당계 등 비남로당계 잔류세력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 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중간청년세력은 해방 이후 6 25까지의 시기에 진보적 이념에 공감하거나 하부 조직활동에 관여했던 제세력 및 학생운동출신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청년조직으로서는 「민주민족청년연맹」, 「통일민주청년동맹」등이 있었다.【주】 50년대 이후의 변혁적 사회운동의 맥은 바로 4 19이후의 열린 정치공간에서 성장한 청년 학생운동출신인자들에 의해 계승된다.
이시기에 혁신적인 제세력의 등장과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4 19로 인해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가 부분적으로 이완된 결과 진보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이 일정하게 확보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60년대 이후의 시기와 달리, 분단으로부터 시점이 짧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변혁운동과의 정서적 유대가 일정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이적으로도 중첩 연속현상이 일정하게 보이고 있었다. 당시 운동세력 내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이승만은 무너졌으니, 이제 분단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남한만의 단독정부와 그를 통한 분단의 고착화는 해방 이후 상황에서 좌익적인 세력만 반대한 것이 아니고, 김구 김규식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세력이나 중도세력까지도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단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감은 잠재적으로는 심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반적 사회의식을 배경으로 하여 혁신정당 청년운동 학생운동은 1961년에 들어서면서 통일문제를 둘러싼 운동으로 수렴된다. 그것의 조직적 표현이 바로「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혁신정당의 대중조직적 기초는 강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통일문재를 계기로 한 민자통의 활동이 보다 중시되는 측면마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4 19이후의 체제 내적인 개혁운동이 통일운동으로 발전 수렴된다고 하는 것은 민간권위주의정권의 교체를 계기로 한 위기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개편(혁명적 대안)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지배체제의 새로운 재생산메카니즘 확립(반혁명적 대안)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통일운동은 대중들의 광범한 정서적 호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4 19혁명의 한계로서 지적되었던 점들이 학생대중 일반에게는 기본적으로 계승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지배체제의 인식에 있어서도 '반제적(反帝的)인식이 전제되지 않은 통일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대중적 조직적 힘에 뒷받침되지 않은 통일운동의 낭만성'이 개재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주】 예컨대 1960년 11월 서울대의 「민족통일 학생연맹」이 발표한 대정부 사회건의문의 제2항은 "남북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는 남북총선에 대비하여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하여 연합할 기틀을 마련하라"【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당시의 통일운동 전개가 광범한 대중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대중 혹은 학생운동 주도세력 전반의 이념적 수준을 제고하는 계기로 작용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당시의 학생일반의 의식수준은 체제내적인 개혁운동의 수준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지배체제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인식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일운동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각성을 대중적으로 확산함으로써 지배체제의 위기를 심화시켰는데, 이에 대한 미국과 지배세력의 반혁명적 대안으로서 출현한 것이 바로 5 16군사쿠데타이다.【주】
5`16군사쿠데타, 즉 군부파시즘의 등장은 민간권위주의정권을 매개로 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즉 민간권위주의정권 운영이라는 표면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보다 본질적인 이슈들이 등장하고 그것을 통해 위기가 심화되자 새로운 민간권위주의정권의 등장을 통해 위기수습이 불가능하게 되고, 여기서 군부파시즘을 통한 새로운 재생산기제의 확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5 16의 이러한 본질적 성격에 대한 인식이 대중의식 수준에서 곧바로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핵심적인 운동세력에 있어 그러한 본질적 성격은 분명히 인식되고 있었다고 보이지마, 그러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공유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민주당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그러하였다. 이러한 점은 5월 23일 서울대 총학생회의 '5 16 군사혁명 지지선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사상계』에서의 5 16에 대한 평가를 보면, "4 29혁명이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 16혁명은 부패 무능 무질서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인 군사혁명"【주】이라고 보고 있었다. 당시의 사회운동세력 내부에서는 5 16 군사쿠데타를 '낫세르식의 민족혁명 군사혁명'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일정하게 존재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운동적으로 보면 이러한 인식상의 한계는 4 19이후의 혁신적인 사회운동이 50년대의 본질적 한계를 대중적으로, 또한 조직적으로 극복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라고 하는 남한의 지배체제의 위기상황에서 이루어진 5 16은 몇 가지의 본질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 민간권위주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대안으로서 군부파시즘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재생산매커니즘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둘째, 5 16은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의 제거 및 대중의 정치적 진출의 차단을 목표로 하는 극우적인 반혁명적 체계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의 동북아정책에 부응하여 한미일간의 군사적 경제적 유착에 적극적으로 기능하는 체제의 구축이라고 하는 의미를 띤다는 것이다. 넷째, 50년대 원조경제의 종결, 60년대초의 심각한 불황과 대중들의 경제적 요구에 대응하여,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급속한 추진체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섯째, 5 16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지배블럭의 질적 구성에 변화계기가 된다는 점이다.【주】 즉 제1공화국의 지배블럭의 주요 구성부분이던 지주출신이나 식민지관료출신들이 상당한 정도로 탈락하고 새롭게 군인 기업가들이 대거 충원되는 것이다. 세력적으로 보더라도 봉건지주세력의 지배블럭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데, 이는 5 16 군사정권의 등장이 60년대초의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정치적 위기의 해소이면서 동시에 "종속적 자본주의화를 추진할 수 있는 최적(最適)의 정치체제의 창출"을 의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5 16쿠데타는 경제적으로는 종속적 자본주의화를 통해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경제적 기초를 변화시키고, 정치적으로는 민간권위주의정권을 대신하여 군구파시즘을 매개로 한 지배체제의 재생산메카니즘을 확립하게 됨으로써, 또한 대중운동의 차원에서는 '또 한번의 패배'가 낳은 패배주의 '잠복의식'이 확대됨으로써, 사회운동의 주관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분기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제3시기(1961~72년)
5 16이후 등장한 한국사회의 새로운 지배체제는 군부파시즘을 매개로 하여 재생산되는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변혁적 사회운동의 성장과 관련한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첫째 제국주의체제의 새로운 국제분업적 요구에 대응하여 종속적 자본주의화가 추진됨으로써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경제적 기초가 자본주의적 성격으로 전환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운동의 정치적 노선 조직노선 투쟁노선 모두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둘째로 군부파시즘이라는 극단적인 억압 통제체제의 등장으로 인하여, 지배체제의 본질적 구조와 대립하지 않은 세력에게는 일정한 정도의 합법적 정치공간이 존재하게 되나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에게는 합법적인 활동공간이 철저하게 배제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변혁적 사회운동의 지하화 및 비합법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운동사상에 있어 1960년대는 군부파시즘 통치를 통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재강화에 대응하여 낮은 수준의 반파시즘 대중투쟁이 전개되는 시기이고, 동시에 합법공간의 소멸에 따라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의 지하화와 비합법적인 조직역량의 확보시도가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4 19혁명 후 일시적으로 확장되었던 이데올로기적인 해방공간이 군부파시즘의 물리력과 냉전이데올로기의 확대 강화에 의해 다시 위축되게 됨에 따라 정치투쟁의 이념적 수준은 전반적으로 제한된다고 보인다. 더구나 60년대 초반까지에 있어 군부파시즘의 반민족적 반민주적성격이 충분히 노정되지 않았고, 군부파시즘이 한국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관련하여 '전향적(轉向的)'성격을 갖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운동의 대중성 이념성은 제한된 상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성은 보다 본격적으로는 70년대의 더욱 억압적인 파시즘 통치를 매개로 극복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60년대에 시도된 비합법적인 반파시즘 민주화운동역시 그러한 비합법적 흐름과 분리된 채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60년대의 사회운동사는 크게 4개의 소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의 소시기는 5 16으로부터 민정이양에 이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둘째의 소시기는 민정이양으로부터 한일회담 한일협정을 둘러싼 투쟁이 종결되는 65년경까지의 시기이며, 셋째의 소시기는 한일협정이후부터 68년까지의 시기이다. 마지막 네번째 소시기는 69년경부터 유신체제 성립에 이르는 시기이다.
먼저 첫 번째 소시기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이 시기는 새롭게 등장한 군부파시즘에 의한 운동세력의 대대적 탄압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군부세력의 제도정치권에의 진출을 위한 정지작업기라고 할 수 있다. 이시기에는 군사혁명세력의 본질적 성격에 대하 인식이 명확하지 않았을뿐더러, 군사혁명의 '민족적'성격, '국가주의'적 경제개발에 대한 환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혁명에 대한 반대투쟁의 공간이 제약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50년대를 통해서 확대된 '반공=구국'이라는 냉전적 사고는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제약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조건 때문에, 당시에 일정하게 진보적 지향을 갖고 있었던 지식층과 학생운동 출신 일부가 공화당 창당과정, 제3공화국 수립과정에 참여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 군사정권의 등장은 지주출신 식민지관료출신 등을 주요구성으로 하는 지배블럭을 해체하고 지배블럭을 재구성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지배세력과의 관계에서는 일정한 '진보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식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63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은 '민족적 민주주의'를 내결었고, 한국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위장한 이질적 사상과의 대결'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그것이 사상논쟁으로 비화됨으로써 군부세력측은 '수구적 반공'이 아니라, '전향적인 반공'세력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군부파시즘을 통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안정화'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소시기【주】에 군사쿠데타세력의 비민주성과 부패성이 '4대 의혹사건'(이는 공화당 당자금 조달과정에 다름 아니다.), '민정이양 공약의 번복' 등으로 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둘째 소시기는 합법적 공간에서는 한일회담반대 및 한일협정비준 반대투쟁이 중심적 위치를 갖는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비합법적인 공간에서도 전위조직의 건설을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한일회담 및 한일협정 비준 반대투쟁을 살펴보기로 하자. 전자는 64년 3월24일부터 서울에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는 6월3일까지의 투쟁을 가리키며, 후자는 65년 2월18일부터 서울지역 대학에 위수령 및 휴교조치가 발동되는 8월 27일(혹은 8월말)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투쟁은 기본적으로 대중들이 강한 반일의식과 일본의 재침(再侵)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국민, 야당, 지식인 등의 광범위한 호응 가운데 전개되었다. 이 투쟁은 군사정권이 내걸었던 '민족적 민주준의'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군사정권의 반민족성을 노정시키며 그로 인해 군사정권의 비정통성을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반군사독재투쟁의 대중적 기초를 확대하고, 5 16 이후 수세적 위치에 있는 사회운동을 공세적 위치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투쟁을 통해 5 16 이후 위축되어 있었던 정치적 분위기가 활성화하게 되며,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환상이 깨짐으로써, 사회운동의 합법적 공간이 부분적으로 확대되는 계기로 된다.
한일화담 반대투쟁이 확대 격화 되자, 군사정권은 민정이양 이후 처음으로 물리력을 이용한 진압(비상계엄령)을 단행하고, 더 나아가 '인민혁명당 사건'【주】의 발표를 통해 냉전적 위기의식을 증폭시킴으로써 투쟁의 확대를 저지하고자 하였다. 한일협정 비준반대투쟁 역시 위수령이라는 강권적 방식에 의해 종결시키게 된다. 비록 이 당시 단기적으로는 대중투쟁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군사정권의 폭력성이 대중에게 노정됨으로써, 반군사독재의식의 확산 및 비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심화를 통해 60년대 후반이후 투쟁의 기초를 예비하게 된다. 또한 이 투쟁의 과정에서 '외세의존의 매판적 경제질서'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게 되는데, '매판재벌'이란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게 되는 시점도 바로 이때이다.【주】60년대 후반 '삼성재벌 밀수반대 투쟁' 등 종속적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자신의 축적기반을 강화시켜 가는 독점재벌에 대한 반대투쟁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시기의 투쟁의 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일회담 및 협정을 둘러싼 투쟁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일간의 관계개선은 국내적으로는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물적 기초를 확보함으로써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경제적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을 갖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한일간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미일간의 경적 정치적 블록화를 실현함으로써, 미국의 동북아 질서개편에 복무한다는 측면을 갖고 있었다. 한일회담의 추진은 남한의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를 미국과의 단일한 관계를 넘어서서 제국주의체제의 우기적인 구성부분으로 편입시키고자하는 미국의 전략적 고려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의 한일회담 반대투쟁은 제국주의적 지배구도의 과학적 이해위에서 진행되기보다는, '반일'감정이라고 하는 소박한 기초위에서 한일회담 진행에서 나타나는 굴욕성, 한일회담의 내용의 불균형성에 대한 비판을 기조로 진행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주】당시의 인식은 단적으로 '제국주의체제에 대한 비판없는 반일' '반미 없는 반일'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시 일강에서는 반일의식이 보다 본질적인 인식으로 심회되어 가는 양상도 보이나, 그것은 제한적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보면 극우적인 이데올로기적 지형, 즉 친미반공적 인식지형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주】
바로 이러한 인식의 제한성이 동일한 시기에 시작된 월남파병에 대한 사회운동권의 침묵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와 한일회담의 진행과정에 대하여 비판적이던 야당계 언론, 『사상계』 등의 잡지도 월남파병에 관해서는 비판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은 '파월의 대가를 미국에서 얼마나 확보해야 하느냐'는 정도였다.【주】 월남파병【주】은 경제적으로는 종속적 자본주의화가 가속화되고 60년대 후반의 고도성장이 가시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면서【주】, 정치적으로는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의 내재적인 확대재생산의 중요한 계기로 되는 것이다. 이 월남파병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경색화 때문에, 한일회담에서 표출된 민족주의적 요구가 반(反)종속 자립화 자주화의 요구로 발전되지 못하게 되며, 60년대 후반 이후 70년대의 사회운동이 민족(해방운동)적 성격이 잠재화된 채로 전개될 수밖에 없게 되는 중요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 수준에서 위와 같은 인식의 한계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선진적인 학생운동인자나 학생운동출신인자들은 4 19이후 정치적 경험과 한일회담 반대투쟁기의 경험과 한일회담 반대투쟁기의 경험을 통해 이념적으로 대단히 심화되어 간다. 더구나 5 16 이후 위축되었던 정치적 분위기가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통해 해빙되고, 군사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사회운동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4 19 이후 혁신적인 청년운동 학생운동을 하였던 세력 및 60년대 전반의 일부 학생운동 세력들은 사회운도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제세력은 군부파시즘의 대두와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실패라는 상황에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것은 군부파시즘의 대두로 인한 지배체제의 강고화에 대응하여 자연발생적 대중투쟁 역량을 어떻게 조직적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군부파시즘의 극복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변혁과정에서 남한의 운동역량과 북한의 혁명역량의 관계는 무엇일까라는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후자는 한국변혁운동의 민족전체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의 관계해석 문제였으며, 전자는 대중조직과 전위조직 간의 관계 및 전위조직 건설의 문제였다.【주】
이러한 논의 가운데서 학생운동출신세력과 구좌익세력의 결합에 의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당 건설시도로 나타난 것이 「통일혁명당」이다.【주】
이 당은 1964년경(즉 한일회담반대투쟁기 전후)부터 시작되어 1968년에 대규모적인 검거를 맞게 된다. 이 통혁당을 사회운동 분석의 범위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앞서 지적한 대로 분석 범위에 포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주요한 근거를 든다면, 통혁당 지도부의 주요한 인적 구성이 김종태를 제외하고는 서울대학교 문리과학대학 혹은 상과대학의 학생운동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조직확대과정의 주요한 부분이 학생운동 출신 인자들의 포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주】그렇기 때문에 통혁당의 결성 및 조직확대라는 현상은 4 19 이후 60년대초의 정치적 공간에서 사회운동 및 학생운동의 선진적 세력이 시도하였던 제반의 운동형태 중의 하나이며 그것은 운동이념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물온 통혁당 사건은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의 이념적 급진화과정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으나, 동시에 1960년대 이후 북한의 지하당 건설노선의 반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주】북한은 4 19혁명의 실패에 대한 자체평가 위에서 남한 혁명역량을 기반으로 지하당 건설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이렇게 볼때 통혁당은 북한 대남노선의 급진화가 결합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통혁당과 관련해서는 여러 쟁점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주】 통혁당의 기반과 관련하여, 필자는 그것이 광범한 대중적 기초 위헤 서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통혁당이 광범한 대중적 기초위에 서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하나. 이는 정확한 주장은 아니지 않는가 생각된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간이 4 19 이후의 경험, 군사정권의 본질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심화에 따라 다소 확대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본질적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객관적 조건을 고려할 때 그러한 추정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세 번째 소시기는 한일협정이후 68년까지에 이르는 시기이다. 한일협정체결을 통한 한미일 유착구조의 구축과 그로 인한 대외적 관계의 안정화, 월남파병으로 인한 냉전적 반공정 의식의 확대 강호, 대규모 지하당의 노정과 북한의 대남 무력노선의 대두로 인한 남한 내 반공적 위기의식의 강화에 따라 파시즘통치체제의 제도적 공고화가 급속하게 추진되고 그에 따라 사회운동의 방어적 침묵이 지속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군부파시즘이 공세적으로 대중의 정치적 진출과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절차를 구축해 나가게 되다. 언론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을 제약하기 위한 시도(예컨대 '학원안정법' 제정시도 등), 1968년초의 향토예비군 창설, 1968년 4월 대학군사훈련교육실시방침, 1968년 12월 국민교육헌장 선포 및 반공교육의 강화 등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군부파시즘의 공세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위하여, 여러 좌익사건들이 연이어 발표되게 된다. 1967년 7월 동백림사건 및 「민족주의비교연구회」사건【주】, 1968년 8월의 통일혁명당 사건들이 그것이다. 한편 이식 군부파시즘의 공세를 보다 강화하는 계기가 된 한 요인으로서 북한의 대남노선상에 있어 강경노선의 대두를 들 수 있다. 북한은 64년 초부터 "대남사업에 무력을 병행시킬 것, 남한 혁명역량을 급속히 구축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남노선 강화를 시도하는데, 67년 5월 대남사업 총국장에 허봉학이 임명되면서 무장게릴라 침투시도가 나타나게 된다.【주】 그것이 바로 68년초의 '무장게릴라 청와대침입사건'과, 68년 11월의 '울징 삼척지구 무장게릴라 침입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부정권은 '안보위기'를 조성하며 반공 냉전의식을 보다 강화시켜 나가게 된다.
이 시기는 60년대 후반 이후 70년대의 반군부독재투쟁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일정하게 규정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먼저 이 시기에 발표된 지하조직사건으로 인해 이념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반외세운동의 가능성을 잠재화시켰고 사회운동 및 학생운동의 주도세력으로 하여금 '(전워)조직기피증' 적 경향을 유발시키게 되었다는 것이요, 둘째는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화로 인해 60년대말 이후의 반파시즘투쟁을 민주화투쟁 및 민중생존권투쟁이라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했다는 점에서이다.
다음 네 번째의 소시기에는 군부파시즘이 세 번째 소시기의 공세의 연장선에서 장기집권음모를 노골화하게 됨에 따라 반파시즘 투쟁전선이 비록 낱은 수준에서나마 가시적으로 형성되게 되고, 군부파시즘 통치의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하고 할 수 있다. (유신체제 구축기에서의 반파시즘 민주화운동의 점진적 고양) 이 소시기의 후반에는 위와 같은 반파시즘 투쟁전성의 가시화와 함께, 60년대 이후의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축적구조가 위기를 맞게 되고, 이에 대한 지배층의 대안이 바로 유신으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68년에는 좌익사건의 출현 및 무장게릴라 사건 및 월남파병 등으로 냉전적 분위기가 보다 고조됨으로써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는 극도로 위축외어 있었으나, 69년에 들어서면서 군부정권의 3선개헌 및 장기집권시도가 노골화되면서 광범위한 반파시즘투쟁이 전개된다. 특히 3선개헌은 그간 냉전이데올로기의 격화에 의해 은폐되어 있었던 군부파시즘의 반(反)민주성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게 됨으로써, 학생들의 투쟁에 일반대중이 일정하게 참여해 가는 계기가 된다. 즉 60년대까지에 있어 대학생에 국한되어 있던 반정부운동이 사회 각 영역, 계층으로 확산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기는 반파시즘운동의 대중적 전개의 출발점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네 번째 소시기에 있어서의 반파시즘민주화운동의 고양을 계기지우는 제반의 투쟁들은 먼저 69년 3선개헌 반대투쟁을 시발로 하여 71년 부정선거 반대투쟁과 '교련반대투쟁' 및 '학원자유수호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제반의 투쟁에 더하여 사회 각 영역에서의 권리획득 및 생존권을 위항 투쟁이【주】 고양되어 가면서 군사정권의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어 가게 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종속적 자본축적의 위기 및 동북아에서의 냉전구조의 이완으로 이한 이데올로기적 위기 등이 결합되면서 60년대 지배체제는 위기국면으로 치달아 가게 된다. 즉, 외자에 의해 건설된 수출산업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수출부진과 유가인상 금리상환 압박 경영부실 등으로 도산의 위기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종속적 자본축적의 기반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주】 이러한 경제적 위기에 더하여 닉슨 독트린 및 미 중국 관계의 개선 등 동북아 구조의 전반적 개편【주】이 결과한 기존냉전반공 이데올로기의 이완현상는 한국의 지배체제의 위기를 보다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상의 위기들이 결합되면서 총괄적으로 유신체제 직전의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 자체의 위기가 출현하게 된다.【주】
이러한 지배체제의 위기 및 이완은 그간 군부통치하에서 위축되어 있던 사회운동의 활성화 계기로 작용하면서, 공개적인 저항조직이 출현하게 된다. 71년 4월 「민주수호국민협의회」【주】의 건설은 그것의 한 표현이다. 이 단체는 5 16 이후 최초의 반정부 지식인 연합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단체는 사회운동적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몇가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첫째, 전후의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구좌익계 혹은 혁신계 인사들이 반체제 사회운동체들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이 새로운 단체에서는 전통적 변혁 운도의 맥락 속에 서 있지 않은 인사들이 주요한 성원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 단체의 주요구성원들은 기층계급운동 등에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고, 정부에 비판적인 개별인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 단체의 이념적 성격은 '진보적(비판적) 자유주의'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투쟁의 목표 역시 선거에서 드러난 자유민주주의적 질서의 파괴에 대한 '저항'과 '민주수호'에 두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통적 변혁운동의 단절 위에서 출현하는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성격을 예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이상의 성격에서 민주화운동의 '지도'적 조직이라기 보다는 학생 청년운동의 투쟁이슈를 대중화하는, 혹은 대중과 유리되지 않도록 하는 매개적인 역할에 두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소시기에 일어난 주요사건으로서 전태일 분신사건【주】 등을 들 수 있는데, 그것들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성격의 투쟁이 확산되면서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의 성격변화에 주요한 전기를 맞게 된다. 이것들은 60년대 이후 진행된 종속적 자본주의화로 인해 표면화되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계급모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건들의 발생 후 그것의 사회문제화 과정에서 70년대의 민주화운동에는 새로운 질적 성격이 부여되어 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반군부독재민주화운동은 그것이 단순히 군사정권을 민간정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군사정권이 재생산기제의 일부로 되는 자본주적 계급모순에 대응하는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시기는 반파시즘민주화운동의 성격, 계급적 기초, 전망에서의 근본적 변화가 출현하는 단초적 시기로서 규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4시기(1972~79년)
72년부터 79년까지의 시기는 이른바 '유신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본질적으로 60년대와 같이 '군부파시즘을 매개로 하여 재생산되는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 시기라고 할 수 있으나, 그러한 종속자본주의의 재생산방식, 즉 군부파시즘의 통치양식에 일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이다.【주】즉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진전으로 인한 계급적 모순의 심화와 군부통치의 장기화에 따른 정치적 위기의 만성화에 따라 물리적 강압력을 동원한 억압이 일상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60년대와는 일정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60년대까지는 군부통치의 적극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환상이 일정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반공냉전이데올로기에 의한 국민들의 '환상적 동기'가 군사정권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주】 물리적 강압력의 제한적 사용 및 그 강압적 본질의 잔재화가 가능했으나, 60년대말 이후 70년대초까지의 과도기적 시기를 통해 군사정권의 반민주적 본질의 대중적으로 노정되고 반공냉전이데올로기가 부분적으로 이완됨에 따라 물리적 강압을 전면화 일상화한 체제가 필연화되게 된다. 요컨대 70년대는 군부파시즘을 매개로 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재생산메카니즘을 정치경제적 위기의 수준에 조응하여 보와 조정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운동사적으로 볼 때 유신시대는 사회운동의 방어적 진출기(방어기 속에서의 제한적 진출기)이며 동시에 80년대적인 변혁적 사회운동이 기반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군부파시즘의 가혹한 탄압 및 억압의 시기였던 만큼 대중들의 의식 역시 자폐적이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자기방어가 기조로 되면서 점차 반파시즘민주화운동이 고양되어가는 과정을 밟았다. 이처럼 방어적이었던 만큼 유신시대 사회운동의 투쟁지평은 군부통치의 반민주성에 저항하는 반파시즘민주화투쟁으로 협애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반제의 문제나 반자본주의 및 통일문제【주】등은 70년대 전기간에 걸쳐 대중적으로 제기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협애화되고 낮은 수준에 있었으나 반파시즘민주화투쟁이 축적되고 발전되어 감에 따라 변혁운동으로서의 자기성격을 구체화할 수 있는 근거가 확충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근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어지게 되는데, 그 첫째는 합법 공간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극악한 군부통치체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심화 및 그 대중화가 이루어져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둘째는 노동계급의 경제적 진출이 확대되고 노동운동이 고양됨에 따라 민주화운동에 민중운동적 성격이 각인되어 가고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운동세력 내부의 인식이 심회되어 갔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80년대적인 변혁적 인식의 기초가, 새롭게 그 모순이 노정되어 가던 종속자본주의체제에의 대면(對面)과정 속에서 형성되어 갔다고 하는 점이다. 즉 새롭게 노정되는 종속자본주의적 모순 및 군부통치의 장기화 가혹화에 대한 대결의식의 심화로 생성 확대되어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기초 위에서 구(舊)변혁운동적 의식의 '계승적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적으로 볼때 한편으로는 전통적 변혁운동의 흐름위에 선 인자 및 운동형태들이 약화되거나 그 기반이 축소 개별화되어 가면서 새로운 모순에 대응하여 새로운 변혁적 인자들이 성장해 갓고 그 기초 위에서 부분적으로 양자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유신시대는 크게 2개의 소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의 소시기는 유신체제의 성립부터 신급조치 제 9호가 발동되는 시기(1975년 5월)까지이며, 둘째의 소시기는 긴급조치 제9호의 발동부터 1979년 10 26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두소시기는 반파시즘민주화운동의 고양수준 및 그에 대응하는 억압의 강화수준이라는 점에서 양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의 소시기는 첫째에 비해 민주화운동의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투쟁수준이 점증됨에 따라 지배체제의 위기가 고조되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억압이 보다 강화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첫째의 소시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72년 10월 유신이 발발 한 후 한국의 사회운동은 일시적인 잠복기【주】에 들어가게 된다. 10월유신 후 군부세력은 유신 이전부터 진행시켜 온 장기집권을 위한 제도적 정지작업을 보다 고도화하게 된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군부통치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군부통치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민족적 민주적 환상이 거의 붕괴되어 버렸기 때문에, 장기집권을 위한 정지작업은 주로 반공 냉전의식을 증폭시키고 그 에 따라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즉 "북괴의 남침위협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현재와 같은 유신체제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물론 유신체제는 이러한 방어적 논리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한 체제'구축이라고 하는 '전향적'명분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북괴의 남침위협을 감각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체제는 반공 냉정의식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경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방향에서의 체제공고화는 당시의 동북아정세의 해빙기조 및 미국의 제3세계 전략의 기조와 불일치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유신체제 균열의 국제적 조건으로 발전되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고화되어 가는 유신체제에 대한 최초의 집단적인 저항은 1973년 10월2일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의 시위【주】였다. 이 시위는 72년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일시적 잠복상태에 있었던 민주화운동에서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이 서울대 시위를 계기로 하여 반유신민주화운동은 급속히 확산되어 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일차적인 구호는 '유신헌법 철폐 및 개헌'이었다. 이러한 요구를 전면에 내건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73년 12월부터 전개되어 나가게 되고, 74년 1월에는 서명인원이 30만명에 돌파하게 된다. 이처럼 반(反)유신 분위기가 확산되어 가자, 군사정부는 서명을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긴급조치 제1호를 발동하게 된다. 이어서 군사정부는 반유신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및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2차 인혁당) 사건을 발표한다.
이 민청학련 사건은 군부정권이 반유신적인 학생 재야 운동과 대중을 분리시키기 위하여 왜곡 과장한 내용이 많으나, 전국적 조직결성 및 전국적 동기궐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학생운동 수준을 한단께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 및 70년'대초의 학생운동은 개별 학교 단위의 반정부시위 형태를 띠고 있었고, 시위가 확산되면서 각 시위가 자연발생적으로 연합하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청학련 주도세력들은 전국 각 대학의 학생운동세력을 조직화하여 일제히 봉기하고자 한 나름대로의 조직적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청학련 주도세력들의 이념적 수준은 제한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주】 즉 당시 반정부의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감에 기초하여 전국적인 반정부투쟁을 계획하기는 했으나, 지배체제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인식은 부재하였고 유신체제에 대한 변혁적 전망 역시 부재하였다고 할 수 있다.【주】더욱이 민청학련 세대가 당시 공안당국의 발표와 같이 구변혁적 전통 위에 서 있는 인자와 조직적으로 결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당시 주도세력들은 정부의 탄압을 완충 완화시키기 위하여 "종교 재야 지식인 세력과 연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청학련 사건은 진보적 성향을 갖는 학생운동세력을 학원으로부터 추방하고 투옥하는 계기가 되고, 그로 인해 70년대 후반이후의 민주화투쟁의 중간지도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민청학련 세대들 중 상당수는 출옥 후 재야민주화운동에 투신함으로써 반파시즘민주화운동의 기반을 확충하고, 7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서의 각 부분운동-노동운동 학생운동 재야운동 등 -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민청련 사건이후 일부 그룹은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기층민중운동으로 투신하게 된다. 필자는 민청학련 세대 이후 비로소 변혁적 사회운동의 인적 연속성이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한편 당시 정부는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서 ①과거 공산계인민혁명당 조직②재일조총련계 인사③국내 좌파 혁신계를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배후세력'과 민청학련 주도세력간의 조직적 연결은 부재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재판과정에서 피고인 주도세력들이 배후관계설을 전면 부인하는데서도 잘 드러난다.【주】 결국 '조작적'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반파시즘민주화투쟁의 고양에 따라 그러한 투쟁이 변혁적 방행으로 전화되는 데 대한 일종의 '쐐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전통적 변혁운동세력'과 '새로이 성장한 진보적인 세력'간의 결합이라는 성격을 띠기보다는, 결합을 의제적으로 가정하여 그 양자의 결합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면서 그 연속선상에서 반파시즘민주화투쟁을 약화시키려는 '조작'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사건은 운동권 내부에 통일혁명당 사건이후 대두된 '조직기피증' 현상을 보다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 민청학련 사건의 조작적 성격에 대한 각계의 반대가 확산되고, 그러한 반대확산의 과정에서 74년 11월에는 「민주회복국민회의」의 탄생을 보게 된다. 이것은 71년의 「민주회복국민협의회」와 비슷한 위상을 갖고 있으나, 지배체제의 강고화라는 상황하에서 그 이념적 조직적 수준에 있어 부분적 진전을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70년대 전반은 유신체제 직후의 잠복기를 제외하고는 -비록 낮은 수준에서이지만-반파시즘민주화 운동이 고양되고 그것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어 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화운동의 발전에 대응하여 유신체제는 더욱 그 자폐성과 억압성을 노골화해 가게 된다. 특히 유신체제는 74년 8월 15일 육영수 저격사건을 국민의 반곡 반일 의식 고양의 시발적 계기로 삼고 75년 봄 월남 패망으로 인한 국민들의 반공적 위기의식 고양을 주요한 계기로 삼아 스스로를 보다 강고한 탄압체제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바로 그 집약적인 표현이 '긴급조치제9호'의 선포이다. 유신세력들은 이법을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일체의 언행에 대해 구속 투옥 등 가혹한 탄압을 일상적으로 가하였고, 또한 노동현장에서의 낮은 수준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경찰력의 즉각적 투입을 통해 연행 구속을 무차별적으로 행하였다.
'민주주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바로 이 시기에 합법적 혹은 반합법적 공간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운동에서 재야운동【주】 및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공개기우운동【주】이 특히 중용한 위치를 점하는 것으로 된다. "당시는 적의 강력한 공세기이고, 사회운동의 전반적 수세기이므로, 지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안정된 기반이 필요하다"는 논리에서 합법적인 교회기구운동으로 민청학련세대 및 학생운동 출신세력들이 상당 부분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종교단체라고 하는 합법적 공간은 대중에의 접근통로가 일체 차단되어 있던 당시 상황에서는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에서 제기된 문제를 사회여론화하는 장으로서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은 보다 강화되고 있었다.【주】 70년대 후반기는 유신체제의 탄압으로 투쟁의 공개적 장이 지극히 제약되어 있던 반면, '한국문제의 국제화'【주】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는데, 한국 내의 인권 및 민중운동 탄압 등의 국제적 홍보는 바로 이러한 종교 단체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제2소시기라고 할 수 있는 긴급조치 제9호하에서 학생운동 역시 그 투쟁공간이 지극히 제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타 운동에 비해 학생대중의 비판적 의식이 강하고 공간적으로 밀집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학생운동은 자신의 선도적 투쟁을 통해 대중투쟁을 활성화 하는 주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긴급조치 제9호의 초기에는 유신체제의 폭압적 탄압으로 시위가 사전에 누설되어 저지되거나, 발생하더라도 수십분 안에 진압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정부의식이 확산되면서,【주】 학생운동의 선도적 투쟁이 대중투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78년 6월의 광화문 시위는 학생들의 반유신투쟁이 대중투쟁으로 전환되어가고 있음을 보여 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선도적 투쟁과 대중투쟁의 결합은 79년 부산 마산 사태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고 그 여파로 유신체제는 붕괴하게 된다. 긴급조치 제9호하에서 학생운동은 60년대의 소부르조아적 의식, '소영웅주의'적 의식들을 탈각하면서 이념적 심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심화속에서 학생운동 출신의 선진적인 그룹은 노동운동으로 투신하거나 지하전위당운동으로 선회한다. 전자와 관련하여 우리는 '현장론'의 강화를, 후자와 관련해서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을 주목하게 된다.
학생운동권에서 현장론이 대두된 시점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들이 존재하고 있으나,【주】70년대 후반의 시기는 학생운동 내부에 현장론이 보다 분명하게 자리잡고 확대되면서 그를 둘러싼 논쟁도 나타나는데,【주】 일각에서는 대학생활을 현장으로의 투신을 위한 준비기로 설정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당시로서는 학생운동의 정치투쟁의 한계성에 대한 인식 및 기충민중을 중심으로 한 변혁역량의 구축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현장론 강화의 주요근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으로의 투신형태는 일부 선진활동가의 경우이고, 학생운동일반 및 일반학생들의 노동운동과의 관계는 노동쟁의발생시 그것을 여론화하는 홍보 역할 및 야학교사로의 참여 역할에서 찾아질 수 있다. 긴급조치 제9호하에서는 제도언론이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노동쟁의가 공개적으로 홍보될 수 있는 통로가 부재하였다. 여기서 학생운동이 노동현장에서의 투쟁사실을 홍보하거나, 규탄대회나 기도회에의 참석을 통해 항의하는 방식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것은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당시의 독특한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야학활동은 진보적 접촉(나아가 의식화)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 및 현장투신을 목표로 하는 학생활동가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었다. 노동야학은 처음 '검정고시야학'의 성격을 띤 것이 많았으나, 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본격적인 '노동야학'의 성격이 강화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주】
다음 '남민전'【주】사건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이 남민전은 비공개이념서클 및 조직에서 활동했던 진보적 학생운동가들이 여러 형태로 사회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지하혁명세력과 연결되어 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남민전의 인적 구성은 이재문,【주】 신향식 등 과거 좌익사건에 연루되었던 인자와, 학생운동을 통해 배출된 인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주】 이런 의미에서 "기존의 지하당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자생적인 민주화운동가들의 결합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과 같은 비합법적 시기에는 강고한 지하혁명조직만이 전체 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그것을 올바로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남민전에 참여한 사람들의 현실인식【주】이었다. 당시 그들은 '정예운동가들의 전위조직','직업적 혁명가들의 비밀지하조직'으로서의 성격을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남민전은 결성 직후의 시기를 준비기로 인식하고, 전면적 투쟁국면에 대비하여 정치투쟁, 무장투쟁의 힘을 축적하고자 하였으며, 공개운동으로 전환되기까지는 선전선동활동을 강화하면서 무장투쟁을 부분적으로 실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고 보인다. 남민전은 중앙위원회 산하에 각 계금, 부문운동조직을 결성하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산하조직 중 「민주투쟁국민위원회」(민투)나 「민주구국학생연맹」(민학련)은 일정하게 조직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직들에 참여한 성원들은 긴급조치하의 학생운동의 이념적 심화의 연장선상에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지도부는 구혁신계적 전통위에 서 있는 인자들이었으나, 새롭게 자생적으로 성장한 세력들이 주요 구성인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좌익사건과는 상이한 측면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좌익사건은 대중적 기반을 부분적으로도 갖추지 못하고 전위적 인자들만의 조직에 그친 경우가 많았으나, 남민전의 경우는 그 이전의 조직운동의 한계를 일정하게 극복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원들의 자기기반이 취약했고, 특히 기충민중운동의 기반은 거의 부재했다는 점을 한계라 지적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부 대중적 조직적 기반 없는 선진적 인텔리 인자들의 상층조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들은 남민전만이 아니라 70년대 운동 일반이 갖는 한계의 반영이고 그렇기 때문에 70년대적인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지향을 가졌으나 동시에 70년대적 운동의 객관적 한계에 의해 규정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운동사적으로 유신시대는 변혁적 사회운동의 전통이 약화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변혁운동의 흐름이 성장해가는 교체기 및 과도기로서 규정할 수 있는데, 이런 점과 연관시켜 보면 '남민전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자생적으로-구좌익적 전통과의 조직적 연관없이-성장한 새로운 변혁적 운동 및 그 인자가-일정한 발전수준에 이르러서-전통적 변혁운동의 흐름과 결합하려 한 시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70년대 후반은 노동대중들의 생존권투쟁이 강화되고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 노동운동이 확대됨으로써, 반파시즘민주화투쟁이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시기이기도 하다.【주】파시즘적 군부통치하에서 진행되어 온 종속적 자본주의화의 제모순이 표면화하게 되는 70년대 초반에는 노동운동이 주로 자연발생적이고 일회적인 투쟁의 형태로 폭발하였으나, 70년대 후반에 글어서면서부터는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경제적 요구를 관철하려는 조직적 성격을 띠었고,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세력들이 이러한 민주노조들의 근로조건개선 및 생존권투쟁에 직 간접적으로 연대하여 투쟁함으로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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