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한학수 PD의 취재, 제작기
작성자 admin 작성일 2006/01/13 0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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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황우석' … 상식의 저항과 싸우다  
  한학수 PD가 밝히는 제작기  

  외면할 수 없는 눈빛
  
  2005년 6월 1일, 〈PD수첩〉 제보란에 하나의 글이 올랐다. 이 글을 최승호 팀장이 먼저 읽고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 글에서 제보자는 자신의 이름과 직장을 밝히고 부디 한번 만나줄 것을 요청했다. 그날 밤 제보자를 찾았다.
  
  제보 내용은 충격이었다.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 난자가 황교수의 연구에 사용되었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5년 5월에 발표된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난자 문제와 관련한 증거로 미뤄볼 때, 논문 조작도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런데 어쩌란 말이냐? 논문 조작의 증거는 하나도 없고, 제보자 자신은 2005년 논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날보고 이걸 입증하라고? 뭐라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논문 조작을 밝히지….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나 외면할 수 없었다. 제보자는 진지했고 그 눈빛은 절절함을 담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제일 강직할 것 같은' 프로그램을 찾았고, 그래서 〈PD수첩〉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야 한단 말인가?
  
  필사적 취재, 계속된 좌절
  
  사안은 너무 중대했다. 또한 '취재의 조건'은 각별한 보안이었다. 아이템을 공개할 수 없고 전문가들의 자문도 구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논문 조작이 사실이라면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고 그 거짓을 밝히는 주체가 반드시 국내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생겨났다.
  
  뉴욕타임스에서 논문 조작이 먼저 보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상상도 하기 싫은 망칙함이었다. 이 취재는 필사적인 것이 되어야 했다.
  
  첫 번째 도전, 그것은 논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블라스토시스트(BLASTOCYST, 배반포), 파세노제네시스(PATHENOGENESIS, 처녀생식), 테라토마 포매이션(TERATOMA FORMATION, 줄기세포의 생체실험) 등 수많은 전문용어들로 구성된 논문을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아울러 영롱이에서 백두산 호랑이, 광우병 내성소, 무균돼지 등 일련의 황교수 프로젝트를 줄줄이 꿰내야 했다.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의심가는 사람을 구분하고 이들의 연락처와 저술 등을 파악하는 일….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해 여름, 나는〈사이언스〉논문 하나를 쓰는 것처럼(?) 황교수 사건에 매달렸다.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미즈메디 병원 수정란 줄기세포의 유전자 지문(핑거 프린팅)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얻어내면 사이언스 논문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쉽게 논문 조작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어렵게 미즈메디 줄기세포의 핑거프린팅 결과를 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냉정했다. 논문의 핑거 프린팅 결과는 미즈메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아! 황교수님은 고단수로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세 번째는 논문에 소개된 줄기세포의 주인공 환자를 찾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지 황교수팀은 환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 난자 제공자의 경우,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만 환자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이정아 작가와 김보슬 조연출이 결국 해냈다. 2번 환자의 주인공을 찾은 것이었다. 웹 사이트 어딘가에 나와 있는 황교수 홍보 사진 중에 2번 환자로 추정되는 가족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탐문 끝에 이 환자의 보호자를 만나 환자의 머리카락 3개를 얻었다. 그리고 즉시 유전자 검사를 맡겼다. 결과는 정확히 논문과 일치했다. 이런, 이 논문이 정말 조작되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환자의 유전자와 논문이 너무 일치하지 않는가?
  
  다시 공부를 했다. HLA(조직 적합성 검사)를 한번 조사해봐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어렵게 어렵게 안규리 교수 방을 거쳐, 서울대 의대 진단의학실에서 결국 실험장부를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줄기세포의 숫자와 관련된 '의심가는 정황'밖에는 파악하지 못했다. 우리가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닌가? 애초부터 어리석은 도전이 아니었나? 설마 황 교수가 논문을 조작했겠어? '상식의 저항'은 어려울 때 마다, 뱀 대가리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포기할까 했다. 그래도 마지막 도전을 해보자. 다섯 번째 도전은 테라토마였다. 미즈메디와 강성근 교수, 그리고 서울대 수의대 동물실험실 등을 취재해가면서 결국 논문 조작의 단서를 잡았다. 이후의 진행은 알려진 바와 같다.
  
  여섯 번째는 김선종에 대한 인터뷰이며, 일곱 번째는 황교수팀의 줄기세포를 직접, 그리고 공식적으로 검증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단계의 도전은 12월 4일 〈YTN〉의 보도 이후라고 보인다. 그날 밤 김현기 PD와 윤희영 작가는 기어이 방송을 내야 한다며, 밤새도록 1차 편집을 마쳤다. 그때 우리들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취재윤리를 어긴 것은 정중하게 사과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최승호 팀장과 나는 〈MBC〉에서 방송이 되지 않는다면, 일부러 검찰에 구속되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논의했다. 그러나 〈MBC〉 구성원들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12월 15일 우리는 결국 방송을 했고, 진실을 드러냈다. 고맙다 MBC!
  
  황우석 파문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 편은 뜻하지 않은 질문 거리를 던졌다. 생명윤리도, 여성의 인권도 이 사안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문제였다. 그것은 '국익과 진실보도'였다. 의학전문기자라고 알려진 사람이 당당하게(?) '진실보도 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촌극을 봐야만 했다. 어디 그 사람뿐이랴. 숱한 기자들이 언론인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을 펼쳤고, 국민들은 '진실을 덮지 않고 그 진실을 보도한다'는 이유로 PD수첩을 탄압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광풍의 내면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거기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두 번째 질문은 '저널리즘과 취재윤리' 문제다. 물론 이 논란의 당사자는 자신이기도 하고〈YTN〉 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촉발시킨 당사자로서 여전히 죄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나는 이것이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언론인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도적이고 시스템적인 대안을 생각해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벌거벗은 대한민국, 우리는 어디에 와 있나?'의 문제다. 황우석 파문이 이 지경으로 될 때까지 언론은 무엇을 했고, 정부는 어떤 관리를 했나? 도대체 학계는 무엇이고, 국정원은 뭐 하는 조직인가? 황교수 옆에 줄을 섰던 정치인들은 무엇이며, 우리 국민들은 무얼 가지고 그토록 열광했던가? 현단계 한국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고도 투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황우석 파문은 우리 사회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과연 '우리 안의 황우석'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한학수/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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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 참으로 뻔뻔스런 한학수!!! 협박을 해서 거짓자백...아니 자신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자가 무슨 할말이 있다고...정말 적반하장이구만... 20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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