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 이인용 "언론 압도하는 이념 압박 버거웠다"   MBC 동료들에게 이메일 '이직의 변'…29일부터 삼성전자 전무로 출근      선호 기자 arioso@mediatoday.co.kr    지난 5월 MBC를 그만두고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 이인용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가 MBC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이 전무는 지난 29일 삼성으로의 첫 출근을 앞둔 지난 27일 사내 메일을 통해 '뒤늦은 인사'라는 제목의 편지를 MBC 동료들에게 전했다. 이 편지는 지난 26일 쓰여진 것으로 이 전무의 부탁을 받은 사내의 한 지인을 통해 발송됐다. 이 편지에서 이 전무는 '처음 사표를 내고 나서는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려워 퇴직한지 두달 정도 지나 늦게 인사를 드리게 됐다'며 삼성으로 떠나는 개인적 심정을 전했다. 이 전무는 이 편지에서 자신의 기자생활의 여정을 정리하면서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전선으로 나뉘고 언론도 그 이념의 한 축을 이루면서, 언론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압도하는 이념의 힘을 버겁게 느껴야 했다"며 그간의 고민을 대해 털어놨다. 이 전무는 "기자 생활 20년을 넘기면서부터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이 커가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판단한 사실의 조합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것이 제게는 늘 고통스런 질문이었다"라고 전했다. 그 후 "지난 3월 저는 삼성으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는 회사의 홍보의 틀을 새로 짜고 싶고, 그래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의에 마음은 조금씩 움직였다"고 밝히고 "우리 사회가, 또 정부나 기업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은 하던 차였다. 삼성이 우리 사회, 나아가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도 보람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자리를 옮기기로 한 결심의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평생 직장으로 여겨왔던 MBC를, 천직으로 생각해왔던 기자직을 떠난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런 결정이었다"며 그간의 갈등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 전무의 전직 결정에 대한 MBC 내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저의 이직을 두고 이런저런 억측과 오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오해는 풀리고, 억측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 모든 얘기들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다음은 이 전무가 전한 편지 전문이다. <뒤늦은 인사> 제가 MBC를 떠난지도 두달 가까이 돼갑니다. 뒤늦게 이렇게 인사 드리게 된 걸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사표를 내고 나서는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려워 여러분께 편지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두 달여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면서, 23년간의 제 MBC 생활을 돌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선후배와 동료들로부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지 저는 늘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외신부(지금의 국제부)에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3년 가까이 붙박이처럼 외신부의 말석을 지켰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중국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80년대 초 개혁, 개방의 길을 조심스럽게 모색하던 중국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는 게 큰 보람이었습니다. 올챙이 'China watcher'였다고나 할까요.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이 중국의 개방을 촉구하는 논문을 썼고, 그 논문을 본 AFP 베이징 특파원이 중국 지도부의 의중이 담겨 있다면서 이 논문을 전 세계에 타전한 것을 야근 중에 번역해서 아침 뉴스에 리포트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5공화국 시절 언론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은 오욕의 역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견디가 힘들었던 저는 85년 미국에 가서 일하면서 공부도 하겠다고 사표를 제출했지요. 저를 아껴주신 선배님들이 제 사표를 휴직 처리해 주셨고, 저는 2년 뒤 MBC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정치부와 국제부를 오가면서, 이른바 5공청산 정국과 소련, 동구권의 와해, 1차 걸프전 같은 굵직굵직한 국내외 이슈를 취재했습니다.   또, 워싱턴 특파원과 앵커, 해설위원, 니만 펠로우, 전문기자, 통일외교부장, 부국장으로… 자리는 달랐지만, 외교 문제와 남북 관계를 붙잡고 씨름하며 지냈습니다. 힘들었지만,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여러 선후배들과 깊은 동료애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에서는 시청률 경쟁에 치어 상업성에 깊이 빠져가는 우리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심하며 지냈습니다. 제 얼굴에 침을 뱉는다는 걸 알면서도 동료 방송 언론인들에게 우리 뉴스를 상업성의 늪에서 끌어내자고 촉구하는 글을 방송 전문지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한 일간지 기자가 그 글을 보고 "앵커가 뉴스 비판"이라고 기사를 쓰는 바람에 난처한 지경에 빠지기도 했지요.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전선으로 나뉘고 언론도 그 이념의 한 축을 이루면서, 언론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압도하는 이념의 힘을 버겁게 느껴야 했습니다. 기자 생활 20년을 넘기면서부터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이 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보고 판단한 사실의 조합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것이 제게는 늘 고통스런 질문이었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쪽에 서 보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3월 저는 삼성으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았습니다. 대기업의 홍보 책임자… 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는 회사의 홍보의 틀을 새로 짜고 싶고, 그래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의에 제 마음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저는 홍보라는 말 대신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만, 아무튼 우리 사회가, 또, 정부나 기업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은 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삼성이 우리 사회, 나아가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도 보람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바라던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막상 평생 직장으로 여겨왔던 MBC를, 천직으로 생각해왔던 기자직을 떠난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런 결정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출발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오는 29일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합니다. 저의 이직을 두고 이런저런 억측과 오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한 후배가 저의 전직을 비판했다는 것도 기사를 통해 봤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오해는 풀리고, 억측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얘기들을 제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 후배가 되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늘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05년 6월26일 이인용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