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의 사이버 추모게시판(http://lee.610.or.kr/)에 올렸던 글입니다. 이한열과 1987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형, 상홉니다. 그동안 잘 쉬셨는지요. 벌써 10여년이 지났군요. 담배한대 태우시죠. 형은 한산도를 즐겨 비웠죠. 오늘은 제 은하수 담배 한대 태우시죠. 한산도든 은하수든 그땐 그 담배들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요. 사실 형! 몇일전 이곳에 왔었어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저 막막하더군요. 온통 머리가 뒤죽박죽 옛날 처럼 또 눈물이 날 것만 같더군요. 오늘은 그래서 담배나 한대 태웁시다. 어머님은 잘계신지... 무심한 후배라 제대로 인사도 못드리고 벌써 십년은 넘은 것 같아요. 한동안 각종 시위현장에서 한열이형의 모습으로 앞장서시던 어머님 아버님을 뵜었는데 요즘은 통 뵐수가 없었습니다. 두분, 입술을 꼭 다물고 강한척 하시지만 어디 자식 보낸 부모 마음이 그랬겠어요? 이제 시간이 지나 저도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보니 자꾸 형 보내고 나서 가슴을 부여 뜯던 어머님의 절규랑 아버지의 눈물이 새록새록 새롭게 떠오르더군요. 형, 그래도 걱정마소. 어디 형 부모님이 보통분들이던가요. 저도 꼭좀 다시 찾아뵐께요. 그래도... 그래도 형 병원에 입원해있을때 가난때문에 형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다고, 형 좋아하던 호박잎에 보리밥 한가득 멕여보고 싶다고 오열하던 어머님의 모습이 아른 거려요. 형, 할수 있다면 그곳에서라도 부모님께 효도하소 우린 얼마나 큰 죄를 진건가요... 세상살이가 그저 너무 크게만 보이던 20대 초반, 형은 2학년 과대표였구 저는 1학년 대표를 맡았었죠. 형, 생각나? 4.13 호헌조치 철폐하라구, 우리 경영학과 수업거부했었잖아. 근데 다들 놀러가구. 하루하루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지... 나중에 집회에는 고작 열댓명 왔었지! 그친구들 이제는 미워하지 않지만 그땐 정말 밉더라구. 그리고 수업거부 시한 마지막날 집회에는 형이랑 나랑 그리고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다른 한 친구. 이렇게 셋만 나왔잖아. 그래도 고생했으니 정리집회는 해야한다며 우리 막걸리 사가지고 청송대 올라갔던것 기억나? 하필 그때 소나기가 올께 뭐냐구. 술인지 비인지 모를 잔을 비우다 우리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잖아. 운동이 뭐냐구... 사람들은 왜 그리 무관심 하냐구... 그래도 운동인지 뭔지 이거 안하고는 못살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젖은 땅에 앉아 허겁지겁 술을 비우고는 걸죽한 노래들도 한 가락씩 불렀던 것 같구. 무슨 노래였을까... 형! 이제 40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서 봐도 형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 형이라고 하니까, 이상하네. 형이라고 부른 짧은 시간보다 열사라 부른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오늘은 형이라 부르고 싶어. 형... 형은 그래도 씩씩했어. 한숨 짓는 우리들에게 형은 무관심한 대중을 어떻게 투쟁의 대오로 이끌어낼까를 고민하는 방법, 운동하는 삶이 태생적으로 갖는 고독, 그래도 남이 뭐라해도 가야하는 이 '길'의 역사... 뭐, 이제 잘은 생각이 안나지만 대충 그런 이야기를 해주며 우리를 토닥여 줬었거든... 그래, 형은 눈물 보다는 강한 사람이었어... 사실 형 다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10여년, 정확히 15년 정도되나? 형은 내 인생을 지배한 가장 큰 그림자였어. 비난 나에게 뿐만은 아니겠지만... 그 시대를 살아남은 우리들 모두에게 형은 벗어날수 없는 너무도 큰 멍에 였지. 나 요즘 방송일해. 우리 그때 집회장소에 소위 어용기자들 오면 욕해주던거 생각나? 몇몇 언론사는 번쩍이는 취재차에 기스도 내줬었잖아. 그때 생각에 욕은 안 먹는 기자가 되보겠다고 노력은 하고 있어, 하지만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예전처럼 대중을 어떻게 조직할지 고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형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될려구 노력해왔어. 그리고 노력할께. 다만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믿음. 우리 그때 그런 얘기 했었지. "어둠을 탓하기 전에 한자루의 촛불을 켜자"고... 형이 안 다쳤으면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지적이면서도 시대의 아픔에 귀기울일줄 알았던 사람, 시와 예술을 좋아하고 인생의 멋도 넉넉히 즐길줄 알던 사람. 우리가 지나온 시대는 너무도 잔인했고, 어쩌면 그래서 더 소중했던 것 같아. 형이 있어 내 청춘은 많은 날 눈물이었지만, 형이 있기에 지나온 날과 앞으로 남은 날이 그만큼 소중할 수 있을 것 같아. 형! 오늘은 그만 떠들께... 오늘도 나는 결국 남이 먼저 힘들여 만들어 놓은 재단에, 남보다 더 늦게... 이렇게 꽃 한송이 올리고 가는군요. 형! 만일... 만일 말이지... 그날 형이 내 앞에서 어깨걸지 않았더라면, 형이 우리 앞에서 버텨주지 않았더라면... 누가 그 최루탄을 맞았을까? 사실 난 그 죄책감 때문에 남 보다 한 발 앞서 걷기로 했는데, 오늘도 난 이렇게 뒷줄에 서 있네... 형, 미안해... # 이한열은 지난 87년 6월 9일, 최루탄 피격 당시 스크럼의 맨 첫줄에 서 있었고, 저는 이한열의 뒷줄 바로 그 뒤에 있었답니다. 바로 뒷줄에 말입니다. 87년 6월은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짐을 남겼습니다. # 이한열은 사망 당시 21살 이었습니다.   21살 말입니다.      이한열은 66년 생으로 8월 29일에 태어나서                87년 7월 5일 숨을 거뒀지요.   이제 제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21살 이라는 이한열의 나이가  마치 눈밭위의 선혈 처럼   느껴져 한없이 눈이 시려오는군요.      내년 제사땐 자식들을 몰고 그를 찾아볼 작정입니다.   그와 나의 청춘이 묻혀있는 바로 그 곳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