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대선후보 합동토론에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단정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발언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4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했다”며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선 수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에서부터 없다는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들이 혼재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누구도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상당량의 농축우라늄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살상무기화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현단계에서 한국과 미국 정부의 기본전제”라며 “이 후보의 발언이 어떤 정보에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고계현 정책실장은 “북한 핵 보유 문제는 어느 누구도 공식적으로 말한 바가 없는데 이 후보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며 “어떤 근거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해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이태호 정책실장도 “아직 확실치 않은 사안에 대해 이 후보가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표현을 한 것은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며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은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을 가지려면 5~10년 정도 걸리고 현재는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 후보가 플루토늄 핵과 농축우라늄 핵의 차이를 잘못 이해했거나 정보를 과잉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각 인터넷 사이트에도 이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지면서 이 후보 발언을 둘러싼 공방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한 네티즌(아이디 ‘sangsul44’)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의 정치 일반 게시판에서 “한국이나 미국 정부도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이 후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며 “지도자로서 현명한 태도가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이날 이 후보의 발언을 “민족문제를 대통령 선거전에 악용하는 작태”로 규정하고 이 후보의 해명과 공개 사과를 요구한 반면, 한나라당은 “괜한 트집을 잡아 정쟁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하는 등 선거전 이슈로 떠올랐다. 이낙연 대변인은 이날 “한국이나 미국 정부도 확인하지 못한 핵 보유 사실을 대통령 후보가 국민 앞에서 단정적으로 말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 것은 큰 잘못”이라며 “민족의 명운이 걸린 문제까지 제멋대로 왜곡해 선거에 악용하려는 작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난 9월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단정한 발언을 하는 등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며 “새로운 사실도 아닌데 민주당이 이 후보의 발언을 침소봉대해 괜한 트집을 잡고 있다”고 반박했다. 류재훈 신승근 양선아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