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방송은 왜 침묵하나"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한미FTA 강연에서 언론 소극적 태도 비판      안경숙 기자 ksan@mediatoday.co.kr    "조중동은 찬성하고, 한겨레는 역량 부족이고, 방송은 침묵하고 있다." 정태인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이 한미 FTA와 관련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 다음 세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한미 FTA에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라디오공개홀에서 열린 한미 FTA 특강에서 이 같이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와 관련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제품이 생산되는지조차 모르면서 협정 초안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금 언론이 조용하면 (오는) 12월 FTA가 그대로 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언론이 FTA 협상 내용을 모두 지적해 정부가 각각의 조항 하나하나를 따지게 만들어야만 쌀은 지키겠다든지 마지노선은 어디까지로 하겠다든지 등등 정부 입장을 들을 수 있다"며 "국민의 뜻이 무시된 채 협상이 진행되선 안되는데도 지금 사람들은 FTA에 대해 잘 모르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일 가운데 조선일보가 유일하게 찬성하는 게 바로 한미 FTA"라며 "요즘 청와대 브리핑을 보면, 조선일보 사설인지 청와대에서 나온 글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또 "조중동이 한미 FTA 문제에 대해 찬성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염원인 방송사를 소유하기 위해서"라며 "한미 FTA가 미국 뜻대로 체결되면 'KBS-MSN-조선'이라는 이름을 단 방송사가 나올 수도 있는데, KBS와 MBC가 침묵하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정 전 비서관은 "한겨레가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지만 내용이 부족하고, KBS가 최근 통계 조작 의혹 보도와 멕시코 취재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심층적이고 비판적인 한미 FTA 보도를 거듭 주문했다. "비판 들으면 가슴 아프지만 한미FTA는 대통령 공약 다 뒤집는 것"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 들으면 가슴 많이 아프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한미 FTA는 우리 경제체제를 미국형으로 바꾸고, 이게 제도화되면 100년이 가게 될 선택이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일을 사실상 12월 말까지 끝내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어떻게 해야 한미 FTA를 제대로 바라보고 공공성을 살리면서 개인의 창의력도 살릴 수 있는지, 우리 경제체제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참여정부가 내건 '사회적 대타협'을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2년차가 지나면서 포기했다면서 "이 때부터 지역이기주의니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라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고, 이후 대연정과 함께 '외부쇼크에 의한 개혁'을 하겠다고 나왔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의 생각을 수렴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개혁하겠다는 초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주의자와 타협해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외세를 빌려 개혁을 하려고 한다는 비판이다. 그런가 하면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는 대통령 공약을 다 뒤집는 것"이라며 "출자총액제 등을 지켜왔지만, 협상이 되면 이것마저 다 풀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FTA는 국외 협상으로, 협상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내 협상이 선결돼야 함에도 정부가 '선 개혁 후 개방'이 아니라 '선 개방 후 개혁'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IMF 이후 지표상으로는 수익성과 건전성이 높아졌지만, 투자의 위험을 회피하면서 소비자 대출을 늘린 결과 카드 대란이 왔듯이 외부 쇼크에 의한 개혁은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같이 버리는 일이 틀림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조업은 도움 안되고 서비스업은 미국으로 넘어가고 공공성은 훼손될 것"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이 받을 영향에 대해 "제조업은 도움이 안 될 것이고, 서비스업은 단기적으로 미국에게 모두 넘어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그나마 남아있는 공공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 내렸다. 방송·의료·교육 등 서비스 분야는 물론 공기업들도 투자 대상이 되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비용은 높아지면서 고용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는 최대한 막아야 하며, 국제적인 신인도 등을 고려해 체결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천천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졸속 추진 논쟁과 관련해 "일본과는 5년 동안 협상을 진행하다 중지한 것을, 미국과는 몇 개월만에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소모적 논쟁을 끝내려면 제1차 대외경제위원회부터 대통령이 한미 FTA의 공식 추진을 추인한 제6차 대경위 자료와 토론내용을 모두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정 전 비서관은 "선박, 섬유 등은 미국에게는 우리의 쌀과 같은 민감 품목"이고 "설탕과 땅콩, 낙농제품 등의 분야가 그들(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밝힌 국정브리핑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설탕과 땅콩, 낙농제품은 한국에서는 많이 생산되지 않아 그림의 떡일 뿐이고, 섬유와 의류 등은 얀포워드(원사의 원산지에 따라 어느 나라 산인지를 정하는 미국의 방식) 규정이 걸려 있는 데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의 특별봉쇄를 뚫어 관세를 인하해도 중저가 시장에서 동대문산의 가격경쟁력은 중국산에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높은 관세로 보호하고 있는 일부 픽업 트럭과 스포츠 유틸리티 시장(SUV)의 관세가 철폐되면 수출 증대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는 픽업 트럭을 생산하지 않고, SUV도 생산 능력이 없으며, 유가가 올라가면서 오히려 CUV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정부가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의류를 3대 수혜 품목으로 꼽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자동차업계에서는 한미 FTA로 수출과 수입이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고 △전기·전자 부문은 가장 비중이 큰 반도체의 경우 이미 관세가 '0'인 데다 현지 생산이 많아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언론 역할 매우 중요"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가 가져올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를 들었다. "정부는 세계화로 우리 생산성이 높아져 세금을 더 거둬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브레인에 해당하는 부분(사업 서비스)은 미국이 그대로 가져가고, 그 지점들이 국내에서 사업해 돈 벌어가고, 가격은 높아지면서 생산성이 높아져야 할 부분은 더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증세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테고, 이렇게 되면 중산층이 붕괴해 특권계급은 더욱 특권화되고 중산층은 하향 평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 전 비서관은 "국민과 자식들의 삶을 결정할 한미 FTA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미국과 협정을 맺어선 안된다"면서 언론을 향해 '현상'이 아닌 '진실' 보도를 거듭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