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개혁이 국민경제 발목 잡는다고? [한겨레 2006-03-31 19:24]     [한겨레] 대안연대회의(이하 대안연대)가 삼성그룹을 비판하는 연쇄 발표회를 시작했다. 31일 오후 2시부터 민주노동당 4층 회의실에서 제1차 발표회를 열었다. ‘재벌그룹 삼성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한 이번 발표회는 다음달 2일과 16일에도 계속 열린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문제를 짚는 토론회는 기왕에도 많았다. 이번 자리가 특별한 것은 그 주최자가 대안연대라는 데 있다. 그것도 세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삼성을 비판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대안연대는 지난 2001년 4월 출범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모였다. 그런데 이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안연대는 대부분 참여연대와 맞물려 등장했다. 참여연대의 재벌개혁 주장과 다소 대립되는 주장으로 대안연대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보수언론과 선긋고 참여연대와 ‘개혁 연대’ 포문 내부거래 실상·하도급 관계·무노조경영 1차 폭로 이병천 교수도 “사회적 책임기업 바꾸자” 합세 이유가 없지는 않다. 대안연대는 출범선언문에서 “외환위기 이후 시민 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 구도를 형성하기보다는 상당 정도 개발독재-신자유주의의 이분법에 기울어진 경향이 없지 않았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시민 운동의 성찰적 쇄신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알듯 모를듯한’ 대목이 참여연대와 대안연대를 미묘하게 구분짓는 경계선이다. 소액주주운동을 중심으로 한 참여연대의 재벌개혁운동에 대해 대안연대는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를 거드는 일”이라고 비판해왔다. 대안연대의 이번 토론회의 의미는 그래서 특별하다. 대안연대의 주장을 “재벌 개혁이 국민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논리로 남용했던 재벌 및 보수언론과 분명한 선을 긋는 의미가 있다. 대안연대의 애초 고민이 어디까지나 재벌 개혁을 통한 국민경제의 선순환 구조 마련에 있음을 분명히 하는 계기다. 대안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삼성을 비판만 하면 삼성을 죽이려 한다는 ‘국민적 공포심’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은 분명 국민적 자산이지만, 이를 이건희 일가와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데 기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31일 발표회 내용을 보면 삼성 비판의 강도가 어느 학술대회보다 높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가 삼성 내부거래의 실상을,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가 삼성과 중소기업의 하도급 관계를,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가 삼성의 무노조경영 철학을 실증적으로 비판했다. 한결같이 삼성의 ‘추악한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이번 자리를 토론회나 심포지엄이 아니라 ‘발표회’라고 이름 붙인 것도 삼성을 둘러싼 진실을 ‘알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다음달에 열릴 2차, 3차 발표회의 주제는 각각 ‘삼성 재벌의 자본 축적 방식’, ‘재벌그룹 삼성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다. 만만치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병천 강원대 교수의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제2라운드 삼성 개혁운동’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재벌 개혁 과제로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를 사회적 책임기업 체제로 바꾸고 △재벌의 축적양식을 양극화 극복의 길에 합치되도록 개혁하며 △재벌과 정·관·언 유착체제를 민주적으로 규율할 법적·제도적 방안을 세우는 것을 꼽았다. 그는 이러한 “삼성 개혁 전선이 다층적으로 구성돼 있다”며 절차적 시장 공정성의 원칙 아래 주주 자본주의 지향과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지향이 경합하고 있는 상황을 짚었다. 이 교수는 “재벌 개혁 전선에서 밀려난 노동 문제를 복권하면서 회사법 개혁을 중심으로 사회적 책임기업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삼성은 국민적 자산… 이건희 일가와 분리해서 봐야 대안연대 조돈문 위원장 불법·탈법, 국가 이익과 무관 경영 승계과정 감시 집중 필요 이번 발표회를 기획한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대안연대 운영위원장)는 “현재 삼성그룹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는데, 이를 제대로 푸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은 국내 자본을 일방적으로 방어하기보다 이들에게 일정한 조건을 갖출 것을 요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일부에선 ‘국적 자본’을 중시하는 대안연대가 삼성 등 재벌의 경영권 보장에 우호적인 게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 다른 조건이 똑같다는 전제 아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의 국적자본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맞다. 그러나 언론들이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이라는 전제를 빼고 대안연대의 주장을 다루면서 재벌옹호론으로 비춰진 측면이 있다. 물론 대안연대 소속 학자 가운데 일부는 재벌총수의 지배권 보장을 일정하게 허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대안연대의 기본입장은 재벌총수가 경영권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 그동안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로 대표되는 ‘주주자본주의’ 비판에 무게 중심을 뒀다는 인상이 짙은데, 이제 재벌 개혁에 대한 대안연대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나. =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를 모델로 삼고 있다. 주식을 가진 사람들만 발언한다는 발상이 그 핵심이다. 그런 차원에서 소액 주주에 의한 경영 감시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에 대해 비판했던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메카니즘만으로 기업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기관, 노동조합 등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기업을 함께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대안연대의 그런 철학을 삼성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적용할 것이다. 우리가 주주 자본주의를 주로 비판했던 외환 위기 때와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제 외국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국내 자본과 결합했다. 지금은 국내 자본을 일방적으로 방어하는 것보다는 (초국적 자본과 결합한) 국내 자본도 (경영권 문제 등에 대해) 일정한 조건을 갖출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삼성 문제에 대한 대안연대의 해법은 무엇인가 = 우리는 기업집단의 긍정성을 인정한다. 문제는 총수다. 삼성이 저지르는 불법·탈법은 재벌그룹이나 국민경제적 이익을 위한 게 아니다. 총수 개인 및 일가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이를 아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수단이다. 재벌총수와 (재벌)기업 집단을 분리하는 게 한국에서는 급선무다. 이를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게 필요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