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이 본보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 동아일보 기사는 충격적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온 나라가 어린 여학생의 성추행 피살 참극으로 슬픔과 분노로 무겁게 가라 앉아있지 아니한가.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 사건이 일어난 뒤 국가 차원의 성범죄 근절책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또한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와 언론의 건강한 관계가 거듭 강조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국내 제1야당과 메이저 언론사가 심야에 부적절한 장소에서 비극적 '희극'을 연출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간담회 겸 만찬에 참석한 인사들이 예사롭지 않다. 동아일보 쪽에서는 편집국장, 정치부장과 한나라당 출입기자가, 한나라당 쪽에서는 박근혜 대표, 이규택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 주요인사가 자리를 같이 했다. 신문사 편집 최고 책임자와 당 최고 결정권자 등이 만난 것이다. 이날 자리는 신임 당직자들과 상견례를 하자는 박근혜 대표 쪽의 요청에 따라 마련됐으며 만찬 자리에서는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다. 물론 간담회가 꼭 공개된 장소에서만 열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언론과 정치권력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요구하는 특별한 상황이다. 5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이미 상대를 향한 칼을 빼들어 휘두르고 있다. 언론 또한 과거와 다른 정치 감시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정치 집단의 공약을 평가하고 감시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한데 어울린다? 이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언론의 불행한 과거에 비춰볼 때 더욱 그러하다. 우리 사회는 언론과 권력이 유착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하면서 기나긴 군사통치 기간 동안 권력의 이익에 봉사했고 반대급부로 경제적 풍요를 챙겼다. 그런 언론은 제도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손가락질 당했다. 그러다가 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으로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제도언론은 개선된 상황에서 과실을 따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민주화에 무임승차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군부 정치 집단의 계승세력과 손을 잡고 민주화 진전의 발목을 잡는 반역사적 행위에 앞장서 왔다. 과거 청산은커녕 반성조차 않는 언론의 행태는 요즘 더 기승을 부린다. 일제 한반도 지배를 생산적 과정으로 변질시키는 괴이한 논리를 찬양 고무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제1야당은 뒤틀린 논리에 따른 언론 자유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언론사 탈세에 대한 법 집행조차 언론 탄압으로 주장하고, 언론 시장에서 경품권을 뿌리는 식의 불공정 행위 근절에 협조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보수 언론과 공동 전선을 펴면서 진보언론 등이 주장하는 언론시장 건전화 요구에 돌을 던졌다. 이런 행태는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이 그냥 보아 넘길 수위를 넘었다는 혐의를 받는다. 언론이 정치에 대한 파수견 역할을 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민주사회에서 그것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그래서 동아일보가 현 정부를 난타하는 것도 이 사회가 민주주의 상태를 지속하는 한 허용되는 것이다. 그런 동아일보의 주요 언론인들이 야밤에 색깔론으로 무장한 채 5월 선거를 준비하는 야당 대표 등과 회동을 하고 술판을 벌였다. 앞서 지적한 여러 가지 사실에 비춰볼 때 동아일보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집단적 심야 회동은 정치·언론유착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최연희 사무총장의 당직 사표 수리, 의원직 사퇴 등을 거론하면서 정치권의 뒤틀린 음주문화, 성 관념 등을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권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치솟는 성범죄에 대한 분노의 열기 속에 여기자 성추행이 크게 부각되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더 깊은 데 있다. 그것은 언론과 정치의 정상적인 관계의 확립과 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