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미끼’로 나머지 개혁법 저울질 [한겨레 2004-11-28 23:51]   [한겨레] 정부-여당 엇박자·전략부재 시간만 허비 ‘보안법 미루고 몇개라도 더…’ 절박함도 “어설픈 타협보다 후일도모” 분위기 가세 열린우리당이 28일 국가보안법 연내 처리를 사실상 포기하고 나선 것은, 이대로 가다간 자칫 4대 개혁법안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몇개 법안이라도 건지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가장 반대하는 보안법을 내 줄 수밖에 없다는 ‘주고 받기 셈법’인 셈이다. 이에 따라 보안법은 사실상 ‘장기과제’로 넘어갔다. 여당의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핵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과반의석이라도 보안법을 처리하지 어렵지만, 북핵이 사라지고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과반이 안되더라도 보안법을 폐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해빙과 보안법의 운명이 한데 얽혀있다는 얘기다. 유시민 의원 등은 전원위원회 회부와 자유투표를 주장하나,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모두 “어설프게 타협하느니, 아예 손을 대지 않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는 태도이다. 실제로 정부·여당은 그동안 한나라당의 반대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보안법은 물론이고, 4대 법안 가운데 국민적 지지도가 가장 높은 사립학교법도 한나라당의 지연전술로 상임위에 법안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과거사기본법도 친일진상규명법이 막혀있어 전혀 진전이 없으며, 그나마 문화관광위에 상정된 언론기본법마저도 합의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려면 김원기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해줘야 하는데, 김 의장은 “국민보다 반발만 앞서야 한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가는 개혁 법안은 물론 민생법안과 예산안까지 모두 좌초돼, 정부·여당의 무능력과 무기력만 드러낼 상황이다. 이는 결국 지지기반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 열린우리당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일정한 타협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정기국회 회기를 열흘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지금까지 ‘제자리 걸음’만 해온 셈이어서 여권은 ‘전략부재’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여당 내부에서 엇박자가 자주 일어났다. 열린우리당이 자체적으로 보안법과 관련한 당론을 준비하는 과정에 노무현 대통령의 ‘폐지 뒤 형법보완’ 발언이 터져나와, 당 지도부를 당황하게 했다. 또 이해찬 국무총리의 ‘차떼기 발언’도 원내전략 측면에서만 보면, 시간을 소모하고 힘을 분산시킨 측면이 있다. 또 지나친 의욕만으로 우리 사회 보수세력의 긴장도를 높인 것도 매끄럽지 못한 구석으로 꼽힌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을 처리하려다 체했다”고 표현했다. 천 대표도 “4대 법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지나치게 저항력을 키웠다”고 평가한 바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이런 타협안마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다. 물러서는 열린우리당의 기세를 보고, 다른 개혁법안도 더 강하게 저지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에도, 여전히 별다른 수단이 없다는 점이 열린우리당의 곤궁한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