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체육대회다. 사건 송치말라” [경향신문 2004-11-04 19:39]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직원들의 체육대회를 이유로 사건을 송치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내 경찰의 업무 공백이 발생하고 민원인들이 큰 불편을 겪는 등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날부터 민원인에게 만족과 감동을 주자는 취지로 ‘친절 드리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로 했지만 체육대회 행사로 인해 빛이 바래게 됐다. ◇“사건 송치 마세요”=4일 서울시내 경찰서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2일 사건과장 명의로 관할 경찰서에 ‘서울중앙지검 사건과 추계 체육행사에 따른 업무협조 요청’이란 제목의 업무연락 공문을 내려보냈다. 검찰은 관내 경찰서장 및 송치 담당자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4일 사건과가 체육행사를 함에 따라 구속·불구속, 수사지휘 품신 등을 접수받지 않으니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이 관할하는 경찰서는 종로·중부·남대문·동대문·성북·서초·관악·노량진·강남·방배·수서서 등 11곳이다. 지검 사건과는 경찰서가 올려보낸 구속·불구속 사건의 서류와 수사지휘 요청서 등에 대한 접수와 해당 서류를 검사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경찰이 검사 지휘가 내려진 문서를 찾으러 가는 곳도 사건과다. 검찰은 또 공문에서 강남서, 남대문서, 서대문서, 성북서, 서초서, 서대문서장 앞으로 ‘주말인 5일에도 형사부의 체육행사가 있기 때문에 수사지휘 품신을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경찰 업무 공백=이날 경찰은 극심한 업무 공백과 차질을 빚어야 했다. 지검의 사건과에는 몇명의 인원이 남아 있었지만 업무를 처리하지 않았다. 공문을 확인하지 못한 채 지검을 찾은 한 경찰관은 “수사 지휘를 받으러 왔는데 담당자가 없다”면서 “내일 다시 오는 수밖에 없다”며 발길을 돌렸다. 일선 경찰관들은 대체로 “우리은 체육대회는커녕 회식 한번 하기 힘든데 검찰 체육대회 때문에 일을 아예 못하니 허탈할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강남지역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영장계에서 구속영장 신청이나 긴급체포 등을 처리하지만 사건과 행사로 나머지 사건 송치와 검사 지휘, 민원 처리 등의 업무는 전면 중단됐다”며 “체육대회 덕분에 우리도 하루 쉬게 됐다”고 비꼬았다. 그는 “변사사건의 경우 부검 여부도 검사 지휘를 받는데 업무 중단으로 유족이 장례를 하루 미뤄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강북지역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런 공문이 매년 내려왔다”며 “평일에 체육대회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이 사건 송치가 늦어져 재판을 신속히 받을 수 있는 기본권리도 침해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중앙지검 관계자는 “오랜 관행이라 별다른 생각없이 공문을 하달했다”며 “중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최소 인력은 남겨두었다”고 해명했다. 〈장관순·선근형기자 quanso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