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휴전직후 어린아이 총으로 쏴죽이고 은폐시도   [한겨레] 종전뒤 미군범죄 정부문서 첫 공개 정부·미대사관, 미군범죄 대거 은폐 드러나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한국의 단속권한이 없었던 1950년대에 미군에 의한 한국인 사상자가 대거 발생했지만 한국정부와 미 대사관이 이를 협의해 은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휴전직후인 1954년에만 30명이 미군에 의해 살해 또는 부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참여연대의 정보공개사업단이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미군의 한국인 상해사건 관계철-외무부 미주국 북미과(1954~1958)’라는 문서가 최근 공개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번에 공개된 정부문서는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단속권한이 없던 1950년대 미군들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범죄의 실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다. 정부문서 가운데 ‘AIDE MEMOIRE’라고 이름 붙여진 문서를 보면, 송유관을 지키던 미군이 1957년 7월6일 인천서 당시 세살이던 김아무개군을 총으로 쏴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사건이 커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한국 정부를 통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도록 협의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외무부 차관과 장관의 직인이 찍힌 보고를 보면, “이 ‘AIDE MEMOIRE’(비망록)을 정무국장이 단기 4290년(1957) 8월7일 오후 3시 30분 미 대사관 일등서기관 존스씨에게 수교(직접 손으로 전해주고)하고, 결재원본의 부전지(서류에 문제점이나 의견 따위를 적어 덧붙이는 쪽지) 내용은 구두로 전달한 바, 존스씨로부터 본건은 신문에 발표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희망을 말하였으로 정무국장은 이에 동의하였다”고 돼 있다. 한국정부와 미 대사관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외무부는 미 대사관쪽에 이같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에 해롭지 않는 적합한 방법으로 처리하자고 요구했다”고 당시 문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공개된 정부 문서에는 꿩 사냥을 나갔던 미군이 한국인 김아무개를 쏴죽인 사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빼간 한국인을 칼빈 총으로 쏴 즉사하게 만든 사건 등 그동안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미군범죄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54년 한해동안 발생한 미군에 의한 상해·과실치사·살인 사건은 기록된 자료에만 25건, 한국인 30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돼 있다. 54년 한해동안 30여명 피해…한·미관계 위해 은폐 송유관앞 지나던 3살 어린이 사살후 은폐시도 “54년 1월 19일 19시께 인천 월도 영정간 해상에 정박중이던 미군용 무역선 경비원 ‘ㅍ’씨는 물품을 훔치려고 선박에 침입하려는 상이군인 전아무개씨에게 칼빈총을 쏴 즉사시킴.” “54년 12월5일 전북 옥구군 옥구면 옥봉리 군산 비행장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미군 3명이 위안부 2명에게 엽총을 쏴 그중 전아무개씨를 즉사케하고 다른 1명에게 중상을 입힘.” 이밖에도 55년 5월15일 인천에 근무하던 미 제82부대 소속 이등병 ‘ㅈ’씨는 자신의 정부(여자)가 없는 것에 화가 나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정부의 두살된 딸을 쏴 죽인 사건도 있었다.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한국인을 바로보는 미군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사건도 있었다. 54년 5월 미군중사 ‘ㅋ’씨는 기르던 강아지의 이름을 ‘승만리’(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어 이름)라고 불렀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미군부대의 한국인 노동자는 미군이 없는 틈을 타 곤봉으로 강아지를 떼려죽였다가 바로 해고된 사건도 있었다. 미8군 소속 유류보급장을 하던 미국 국적의 일본인 2세는 당시 일본을 비판하는 국민대회가 잇달아 열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900명에게 화장실 이용시간 제한, 휴식시간에 신문구독 금지, 흑인 병사로 하여금 여자 노동자 신체검사 등의 앙갚음을 하기도 했다. 미군에 의한 범죄가 끊이지 않자 55년 1월 내무부 장관은 외무부에 공문을 보내 “미군 비행사건이 계속돼 인명 피해가 많으니 조속히 당해 기관(미군쪽을 말하는 듯)에 연락해 유사한 사고 방지에 노력하도록 주의를 환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해 외무부 정무국장이 내무부 장관에게 공문을 보내 “미군 송유관 파괴 및 유류를 훔친 혐의로 미군 경비원에 의한 아국민(우리국민) 피살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외교조치상 필요하오니 각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조속히 통보해 달라”면서 “체포심문 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살행위가 부득이했는지 또는 인종적 편견으로 불문곡절하고(이유없이) 사살함인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전진한 참여연대 간사는 “전쟁 뒤 한국인들이 미군들에게 많은 피해를 봤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희귀한 자료”라며 “사건들을 보면 미군들이 잔혹하게 총을 많이 쐈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우발적인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을 바라보는 미군들의 시선이 지금 이라크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 간사는 또 “국가기관에서 이런 정보를 가지고도 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은 큰 문제”라며 “58년 이후의 자료도 계속 찾아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