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중 한명이라도 신원을 확인했더라면 그렇게 긁어대진 않았을 거예요. " . 지난달 27일 서울시내 한 경찰서. 남의 신용카드를 훔쳐 쓴 혐의로 조사받던 蔡모(18)양은 이렇게 말하며 "결제가 너무 쉬워서 죄를 짓는다는 느낌도 없었다"고 했다. 蔡양은 지난달 26일 친구 崔모양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손님을 여관으로 유인한 뒤 신용카드를 훔쳤다. . 신용카드를 손에 넣은 이들은 곧바로 쇼핑에 나섰고 의류상가에서 옷과 액세서리 등 2백만원어치를 카드로 샀다. 이들이 사용한 신용카드는 성인 남자의 것이었지만 상점 주인들 중 신원을 확인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 어른들의 그릇된 상혼(商魂)으로 10대 청소년들이 신용카드 관련 범죄에 물들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현재 만 19세 이하 미성년 신용불량자 수는 7천8백23명. 이 가운데 89%인 6천9백80명이 신용카드 대금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로 추정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힌 것이다. . ◇양산되는 미성년 신용불량자=회사원 朴모(40)씨는 지난 9월 딸(19)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 명세서를 받았다. 갚아야 할 카드 빚이 3백만원이었다. . 딸을 다그친 결과 고3 때인 지난해 학교 주변에서 카드회원 모집책의 유혹에 넘어가 신용카드를 만든 뒤 옷과 CD플레이어 등을 카드로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朴씨는 급하게 돈을 구했지만 2백만원밖에 갚지 못했고 딸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 정부는 뒤늦게 지난 7월부터 신용카드사들의 가두 판촉을 금지하고 미성년자 카드 발급기준을 강화했지만 일부 카드사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신용불량자는 이 조치가 시행된 7월 8천여명에서 10월 7천여명으로 약간 줄었을 뿐이다. . 소비자보호원이 지난 10월 인터넷을 통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1천2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미성년자에게 카드를 내준 경우가 37.2%나 됐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15개 카드사 중 청소년 인적사항으로 카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7곳이나 됐다. . ◇청소년 카드 범죄='신용카드를 내미는 청소년에게라도 물건만 팔면 그만'이라는 상혼이 청소년들의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 朴모(19)군은 지난달 13일 동네 학원에서 원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빼낸 뒤 친구와 함께 사용하다 원장의 분실 신고로 3시간 만에 붙잡혔다. 하지만 朴군 등은 그 사이 옷 가게와 전자제품 대리점 등에서 1백여만원어치의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 밀리오레.두타 등 대형 쇼핑몰들을 관할하는 서울 중부경찰서의 경우, 지난해 한 건도 없었던 청소년 카드사범 적발 건수가 올해 7건으로 늘었다. 모두 남의 카드를 훔쳐 사용한 사례다. 이 경찰서 관계자는 "신용카드를 쓰려는 청소년의 신원을 확인하는 상인이 없어 청소년 카드 범죄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자보호원과 시민단체들에는 10대 청소년들의 카드 연체대금 문제에 관한 상담이 한달에 수십건씩 밀려들고 있다. . 소비자보호원측은 "신분 확인없이 청소년들이 건네는 신용카드로 결제해 주거나 이들에게 편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업체들에 대해선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10대 카드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