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연말 들어 대대적인 ‘재고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정권 말기와 연말이 겹치는 12월 들어 서울지검은 3~4년씩 캐비닛 속에 넣어뒀던 미해결 사건을 털어내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5일 “유창종 서울지검장이 연말까지 검사 1인당 30~40건씩 안고 있는 미제사건 수를 9건 이하로 줄이도록 최근 지시한 것으로 안다”면서 “연말을 맞아 그동안 묵혀둔 사건을 한꺼번에 털어내면서 무더기 기소사태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울지검 특수1부는 현재 내사나 수사가 진행중인 177건 중 대부분을 이달 안에 털어낸다는 목표를 세우고 관련자 소환 및 사건기록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묵은 고소·고발사건이 많은 형사·조사부 소속 검사들은 더욱 바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월말엔 통상 중간간부진을 중심으로 미제사건 해결을 챙기는 게 관례이지만 요즘은 정권말과 연말을 맞아 더 신경이 쓰이는 게 현실”이라며 “미제사건 해결 때문에 신규 사건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서울지검이 최근 기소한 사건 중 상당수는 3년 이상 묵은 ‘재고품’이 대부분이다. 서울지검 형사9부가 금감위 고발 이후 3년 이상 묵혀뒀던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의 특가법상 배임혐의 수사를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1999년 11월 정치권에서 불거진 전 평화방송 이모 기자의 ‘언론대책 문건’ 절취사건 역시 3년여 만인 4일 기소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해묵은 관행에 대한 불만과 우려도 적지 않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매년 되풀이되는 ‘연말 재고정리’식 수사관행은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라며 “충분한 사전 기록검토도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기소하다 보면 애꿎은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문규·김형기기자 park00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