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 4일 발표된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조사는 44개국을 대상으로 나라별로 7~11월에 이뤄졌다. ◇ 미국 이미지 미국에 대한 태도의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29개 나라 가운데 19개 나라에서 호감도가 줄었다. 특히 이슬람 나라에선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라크 침공 준비를 위해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터키에선 미국에 우호적인 응답자의 비율이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전인 2000년에 비해 22%포인트나 떨어진 30%에 그쳤다. 파키스탄에서도 호감도가 13%포인트 떨어진 10%로 집계됐고, 친미 중동국가인 이집트 국민의 69%, 요르단 국민의 75%가 미국에 반감을 나타냈다. 보고서는 “미국이 해외에서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슬람 나라들에서 극도로 나빠진 이미지”라고 지적했다. 캐나다·영국·프랑스 등 전통적 우방국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크게 확산돼, 미국의 대외정책이 자국의 이익만 고려한 것이라는 응답이 50~70%에 이르렀다. 많은 나라에서 미국의 정책이 국가간 빈부격차를 늘리는 데 기여하고 있고, 미국이 인류공통의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 응답자의 39%도 여기에 동의했다. 미국의 영화·음악·텔레비전프로그램이 전세계적으로 환영받는 등 미국의 문화·기술발전이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미국식 사고와 관습이 확산되는 데 대해선 반대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럼에도 또다른 초강국의 출현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 이라크 침공 프랑스·독일 등 5개국에 대한 11월 추가조사에서 대다수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세계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군사공격에는 반대했다. 영국에선 찬성과 반대가 47%씩 나왔다. 이라크 침공이 ‘지역안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라크 원유 장악을 위한 것인지’를 묻는 물음에는 원유 장악이라는 대답이 러시아 77%, 프랑스 75%, 독일 54%, 영국 44% 등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프랑스·독일·러시아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이 급선무라는 대답이 많았다. 응답자의 다수는 또 이라크 침공이 유럽지역 테러 위험을 높여줄 것으로 우려했고, 북한이나 이란에 비해서는 이라크가 더 위협적이라고 대답했다. 터키 국민의 83%는 이라크 침공을 위해 미국이 군사기지를 이용하는 데 반대했다. ◇ 기타 세계가 직면한 문제로는 에이즈와 같은 질병의 확산, 종교·인종 분쟁, 핵무기, 환경오염 등이 꼽혔다. 아시아에선 현재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지만 미래에 대한 낙관이 어느 지역보다 높았으며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가장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는 응답이 15%에 이르러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