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청명한 가을날 “이젠 네가 환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좋은 피를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단다. 암 가지고는 신경 쓰지 마라.” 자신의 치료 경력을 잘 내세우지 않는 구당. 오늘은 좀 별나다. 자신이 ‘재생불량성빈혈 환자만 어림잡아 50명 넘게 치료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모두 임상 기록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자랑은 안 해. 그럼 내가 고쳤다고 떠벌이는 것밖에는 안 되잖아. 다만 나는 그 임상 기록을 가지고 ‘어떠어떠한 병이 침뜸으로 고쳐진다’고 말하는 데 쓰고 싶은 것 뿐이다. 나는 직접 치료해봐서 고쳐진 것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야.” 구당은 평생을 침과 뜸에 의존해 환자를 치료해 온 의료인이다. 이 사실은 의학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순수하게 침과 뜸만을 가지고 70여 년을 치료해 왔다는 사실은 침뜸 의학의 가능성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구당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침뜸경험방에 그의 방대한 치료 데이터베이스를 더함으로써 침뜸만으로 어떤 병이 치료되고 어느 병에 차도가 있는지, 또 어느 병이 치료가 안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통 침뜸이란다. 약 없이, 부황도 없이 침뜸으로만 치료해 왔다. 낫는다, 안 낫는다, 효과가 있다 없다를 실증적으로 축적해 왔다. 그 결과 거의 모든 병증 분야에서 침뜸이 최소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영이 같은 환자를 많이 봤는데, 의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의 도발적인 침뜸의학 강의는 계속된다. “또 검사를 통해 혈소판 상태를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뿐이다. 안다 해도 그들에게는 현재로서는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백혈병에도 골수이식을 하지만 그렇다고 낫는 것은 아니다. 20일이면 수혈 받은 피가 다 나간다. 새로 들어와도 다시 쓰고 만들고, 결국 음양의 과정을 통해 순환하는 거란다.” 치료가 시작된다. 맥진과 촉진에 이어 태충에 자침. 양릉천, 합곡, 중완, 거궐, 좌양문, 수삼리, 동자료, 지창에 자침. 뜸자리에 뜸 다섯 장씩. 잠시 유침하는 사이에 구당이 아프게 말을 꺼낸다. “살려 달라고, 치료해 달라고 아침저녁으로 편지가 온다.” 구당이 영업정지 상태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여전히 전국의 환자들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더 많이 들어와. 도저히 제정신으로 읽을 수가 없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나는 이들의 사연을 그대로 복사해서 발표할 것이다. 아는 게 고통이다.” 의료법상 손발이 묶인 그에게 아픈 환자들의 절규는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침사 자격을 인정해 침은 놓을 수 있다지만, 뜸은 시술하지 말라는 관계당국. 평생 뜸을 떠온 뜸의 권위자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대는 무례하다. 본디 ‘침과 뜸은 하나다’라고 애걸해봐도 소용이 없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90대 할아버지 다시 침을 잡는다.   곤륜에 자침. 위중, 신유, 비유,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 천료, 천종, 고황에 자침, 뜸자리마다 뜸 다섯 장씩. “자, 봐라. 재생불량성빈혈의 살색은 퍼런색이다. 열심히 떠라. 니가 직접 떠라. 뜸으로 고쳐질 것이다. 뜸의 또 다른 효능은 독한 약의 해독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투약하는 암환자들이야말로 반드시 뜸을 떠야 한다. 뜸을 못 뜨게 하는 병원과 의사들을 보면 가서 얘기해 주고 싶다. 당신이 한번 약을 먹어 봐라.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러나 뜸을 뜨면 편해진다.” 구당 마치 자신이 암환자인 양, 병상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다고 항생제의 작용이 멈추는 게 아니다. 오히려 치료 효과가 좋아진다. 서울대병원에서도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치료 효과가 더 좋은 것 같다고 진영이 니가 그랬잖니? 약의 남발이 걱정이다. 약을 파는 사람은 한 알이라도 더 팔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병원도 버틸 수가 없다. 비싼 약을 많이 먹이면 뻔히 돈이 되는데 그걸 이겨낼 의사가 얼마나 있겠니? 항생제·조울증 부작용도 뜸만이 풀어낼 수 있다.” 오늘의 치료가 끝났다.   내일은 장진영 씨가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다. 병원에서 뜸을 뜰 수 없어 걱정이다. 며칠간 침뜸 치료가 중단될 것이다. 어느 환자는 눈치를 보며 몰래 뜸을 뜨다 의사에게 들켜 불호령을 들었다고 한다. 그 의사는 뜸을 알까? 알면서 막는 것일까? 왜 환자가 야단을 맞아야 하는가. 몸으로 체감해서 환자가 아는데 의사는 모르면서 막는다. 슬픈 현실이다. 환자가 스승이라는 말을 잊었나? 구당 선생은 특히 서울대병원이 뜸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한다. 배운 게 많고 똑똑한 의사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이다. 만일 서울대병원이 뜸치료를 막지 않는다면, 장진영 씨에게 ‘원시적인’ 뜸치료에 의존함으로써 자신들의 의학적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고 눈치 주지 않았다면, 장진영 씨는 병실에서 편하게 뜸을 뜰 수 있을 텐데.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아.. 아는게 죄다. <알려드려요> - '영리병원 반대'와 '민중의학 침뜸 보급' 위해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나무와 숲)를 매일 연재합니다.   - <환자가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오늘> 돈 들이지도 않고도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침뜸의 소중한 진실, 함께 지켜주세요. 읽으시고 공감되시는 분은 꼬옥! RT 부탁드립니다. - 장진영씨에 대한 치료는 2008년 9월28일부터 12월 25일까지 3개월간 매일 이뤄졌습니다. 연재 역시 2011년 9월28일부터 12월25일까지 이어집니다. - 우리의 오늘은, 3년전 장진영씨에게 그토록 절실했던 하루였답니다. 그녀와 구당의 대화를 통해, 당신의 하루가 더 근사해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