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1일 토요일, 갑자기 기온 내려감 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 간밤에 기온이 크게 내려간 탓에 진료실에도 냉기가 감돈다. 방구석에 있는 온열기의 전원을 켜며 구당 선생이 병상의 장진영 씨에게 다가온다. “에이, 이제 다 나아 버렸다.” 장진영 씨의 배를 촉진하던 구당이 웃으며 말한다. 환자를 격려하기 위해 던지는 말이지만 듣는 장진영 씨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밥은 잘 먹니?” “네.” “약은?” “안 먹은 지 이틀째예요. 그런데 어제는 배가 살살 아팠어요.” “화장실에는 다녀왔니?” “네.” “그래 잘 했다. 좋은 거다.” 배꼽 주변을 촉진하더니 ‘동계가 많이 줄었다’며 구당이 즐거워한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웬일인지 오늘 장진영 씨의 안색이 상당히 창백해 보인다. 함께 온 예당 최 부사장이 내게 손짓을 하기에 함께 밖으로 나갔다. 들어보니 장진영씨 안색이 좋지 않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진영 씨가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생존 확률이 5%도 채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들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장진영 씨가 이미 알고 있는 줄 알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딸이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자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장진영 씨의 부모님은 말기암 선고를 받은 딸이 너무나 대담하고 태연하게 지내기에 그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었다고 한다. 무너지는 절망감에 흐느끼는 딸과 어쩔줄 모르고 황망해하는 부모님. 그렇게 세 사람이 겪어야 했을 그 처참함에 마음이 시려 왔다. 그럼에도 장진영 씨는 눈은 조금 부어 있었지만 여전히 담대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다. 치료실로 돌아오니 태충에서 시작해 삼음교, 양릉천, 음교, 중완, 좌양문, 거궐에 침이 꽂혀 있다. 주말에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치료와 침뜸 강연차 하와이로 초청받아 떠나는 구당. 장진영 씨가 걱정되는지 오늘따라 여기저기 부산히 챙긴다. 천추, 수분, 합곡, 지창, 동자료에 자침이 추가된다. 기존 뜸자리에 다섯 장씩. 이어 몸을 돌린 누인 뒤 곤륜, 위중, 신유, 천종, 천료, 고황,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 격유, 풍지, 천주에 자침. 같은 자리에 뜸 다섯 장. 치료가 끝났다. 나는 조심스레 어제 장진영 씨의 손목을 맥진하며 느꼈던 질문을 구당에게 던져 보았다. “할아버지, 어제 진영 씨의 양 손목을 맥진해 보니 좌우 맥이 눈에 띄게 다르더라고요. 우맥은 심한 부맥인데, 좌맥은 잦아드는 침맥이었어요.” “하하, 괜찮다. 보통은 그렇게 좌우 맥이 다르단다. 우리는 눈이 맑아야 한다. 병과 병이 아닌 것을 항상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건 병이 아니다. 지금 진영이의 얼굴색이 조금 누렇게 뜨지 않았니? 이건 병이니, 병이 아니니? 이건 병이 아니다. 만일 병이면 심각하지. 하지만 이건 병이 아니라 항암제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병이 아닌 것이지.” 그렇다. 우리는 병인 것과 병이 아닌 것 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병이라 한다.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꼴이다. 오늘도 장진영씨에게 희망이 허락되길 빈다. <알려드려요> - 영리병원을 반대하고 민중의학 침뜸을 알리기 위해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나무와 숲, 2010)를 매일 연재합니다.   - 장진영씨에 대한 치료는 2008년 9월28일부터 12월 25일까지 3개월간 매일 이뤄졌습니다. 연재 역시 2011년 9월28일부터 12월25일까지 이어집니다. - 우리의 오늘은, 3년전 장진영씨에게 그토록 절실했던 하루였답니다. 그녀와 구당의 대화를 통해, 당신의 하루가 더 근사해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