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9일 목요일 “이제 여기에 있는 동계만 잡으면 된다.” 구당 선생이 누워 있는 장진영 씨의 아랫배를 손끝으로 만져보는, 촉진을 하며 말한다. ‘동계’는 겨울철 올림픽도 아니고, 똥개는 더더구나 아니다. 동계動悸란 동맥이 ‘불뚤불뚝’뛰는 현상을 말하는데, 주로 허증을 나타내며 병적인 가슴 두근거림과 함께 수반되는 증상이다. “상호야, 여기를 만져 봐라. 불뚝불뚝 뛰는 게 느껴지지?” 아닌 게 아니라 배꼽 위 하완혈 부근을 눌러 보니 맥박의 대략 3배 크기로 동맥이 뛰고 있다. “네, 할아버지. 동계가 상당히 크네요.” “이제 위장의 부기는 가셨으니, 이 동계만 잡으면 진영이 암 치료도 이젠 안심이다.” 나와 구당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진영 씨가 끼어든다. “안 그래도 선생님께 여쭤 보려고 했어요.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쁜 현상이 나타나서 사실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왜 그런 거지요?” “응, 걱정할 필요 없다. 항암제 탓이거든. 심장에 부담이 가니까 숨이 가쁜 거야. 몸이 아픈게 아니라 약을 먹어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이제 이 동계만 잡으면 치료가 한결 수월해진다.” 위암 환자의 동계는 마치 삶을 갈망하는 환자의 절규처럼 강렬하게 느껴졌다. 내친김에 양 손목의 맥을 짚어 봤다. 우맥은 심한 부맥(손가락을 살짝 대기만 해도 느껴지는 맥)인 반면, 좌맥은 잦아드는 침맥(세게 눌러야만 느껴지는 맥)이었다. '왜 그럴까?' 태충, 삼음교, 양릉천, 중완, 하완, 음교, 좌양문, 거궐, 천추, 합곡, 지창, 동자료. 익숙한 솜씨로 재빠르지만 여유 있게 자리마다 하나하나 침이 꽂힌다. 자세히 보니 대자연의 리듬감이 느껴진다. 이어 같은 자리에 뜸 다섯 장씩. 늘 치료 현장을 말없이 지키던 장진영 씨의 매니저가 오늘은 무슨 일로 입을 연다.   “저, 죄송하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뭐든 물어 보세요.” 수줍음 잘 타는 여드름 청년은 잠시 쭈삣거리더니 어렵게 입을 연다. “저.. 구당 선생님 이렇게 뵈니 너무나 건강하신데, 혹시 성생활도 가능하십니까?” 생각해 보니 열흘 만에 서로들 부쩍 친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에 잠시 맘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기왕에 던져진 질문이다. 모두들 쫑긋 귀를 세운다. 솔직히 나 역시 궁금하다. “그게 궁금해요? 내가 120살에 새장가를 들 건데 그게 안 되면 안 되겠지요?” “하하” 빵- 터지고 말았다. 매니저도 웃고, 진영씨도 웃는다. 모두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는다. 꼭두새벽 말기암 환자의 치료실이 이처럼 즐거울 수 있을까. 잠시 취재수첩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둘러본다. 그림자처럼 장진영 씨를 지켜 주고 있는 여고 동창 김 모 이사도 웃는다. 진영 씨의 분신과도 같은 김 이사는 오랜 친구의 고통을 지켜보며 늘 말이 없고 어두운 기색이었다.    “자고로 여성은 생산이 가능한 최대 기한이 70대 초반까지고, 남자는 제한이 없다고 했어요. 사실 내가 그런 쪽의 이야기를 해줄 게 많이 있어요. 노인 환자들에게 배꼽 아래 관원과 기해에 뜸을 떠주면 얼마 지나 자기도 아이를 낳겠다고 찾아오곤 합니다. 정말 그래요.” 구당은 눈곱 만큼도 당황하거나 저어함이 없이 농지거리를 그대로 받아준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치료를 시작한다. 곤륜, 위중, 신유,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 천종, 천료, 도도, 격유에 침이 간다. 이어서 풍지, 천주에 자침하며 구당이 입을 연다. “물질은 오르고 정신은 내려가는 길목이 바로 이곳입니다. (목 뒤쪽 풍지, 천주혈을 가리키며) 육체와 정신을 함께 살리는 게 침뜸입니다. 서양의학은 기질은 살리되, 기능은 살리지 못합니다. 침뜸은 기능을 살립니다.” 다시 같은 자리에 뜸 다섯 장. 치료가 끝났다. 침뜸이 진영씨의 몸과 마음 모두를 살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알려드려요> - 영리병원을 반대하고 민중의학 침뜸을 알리기 위해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나무와 숲, 2010)를 매일 연재합니다.   - 장진영씨에 대한 치료는 2008년 9월28일부터 12월 25일까지 3개월간 매일 이뤄졌습니다. 연재 역시 2011년 9월28일부터 12월25일까지 이어집니다. - 우리의 오늘은, 3년전 장진영씨에게 그토록 절실했던 하루였답니다. 그녀와 구당의 대화를 통해, 당신의 하루가 더 근사해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