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8일 수요일 “선생님, 쌀알 모양으로 쑥을 마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럼, 쉽지 않지. 너무 단단하게 말면 탈 때 아프고, 너무 커도 흉터가 생기니 안 되지. 쌀알 반개 크기면 족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좋아하셨어요. 제가 뜸을 떠드렸거든요.” “아니, 네가 뜸을 떠드렸어? 대견하구나. 이제 진짜 침뜸 가족이 됐다.” 구당 선생 크게 기뻐한다. 장진영 씨도 의료법 위반‘공범’이 된 것이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비록 배우자나 가족을 위해 뜸을 떠주어도 불법이다. 구당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비영리 봉사 목적으로 이뤄지는 뜸 시술은 허용해주도록 하는 이른바‘뜸 자율화법’을 만들어달라고 오래전부터 탄원해 오고 있다. 물론 국회는 답이 없지만.     “잘 했다. 너도 낫고 부모님도 건강하게 해드려라.” “선생님, 오늘은 어제보다 덜 피곤한 것 같아요.” “그래.” “메스꺼운 것도 없구요. 그런데 눈은 좀 피로해요. 눈에 모래가 낀 것처럼 뻑뻑하고요. 졸음도 좀 오는 것 같아요.” 장진영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당 선생은 태충, 양릉천, 중완, 하완, 좌양문, 좌우활육문, 거궐, 지창, 동자료에 자침. 오늘은 수삼리에도 침이 추가된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뜸 다섯 장. 곤륜, 위중, 신유에 자침. 역시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에 심자. 궐음유, 격유, 풍지, 천주에 자침. 어제와 같은 자리에 뜸 다섯 장. 아픈 몸으로 어머니에게 뜸을 떠주었을 장진영. 그리고 그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내내 모녀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 - 앉은 자리에서, 딱 한 번 화장실 갈 때 빼놓고, 그대로 읽어내려갔다. 역시 이상호 기자는 내가 아는 기자 중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용기 있는 기자다. 누구도, 심지어 구당 선생의 침뜸으로 효과를 봤던 국회의원·정치인 등 힘있는 사람들도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는 일을 이상호 후배는 용감히 해냈다. 그게 지식이 많아서, 기자로서 경험이 많아서 가능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든 주저하지 않고 고발·폭로하며, 또 사내의 이상한 분위기를 요리조리 헤쳐 나가며(사실 이게 현실적으로 훨씬 어려운 문제다), 부정 비리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은 다른 자질보다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 용기에 있다고 믿는다.   이번에 책을 쓰게 된 것도 아마 같은 언론계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인 듯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동업자’에게서 마치 뭔가를 속이려 드는 사람처럼 치부되는 건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삼성 X파일’ 건이 그렇듯, 그가 침뜸의 효능과 구당 선생의 행적을 알리는 데 한마디라도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좋은 책을 써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고, 구당 선생, 또 후배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언론계 강호 제씨들로  ‘침뜸 알리기 모임’이라도 결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정일용 연합뉴스 기자(前 한국기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