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일요일, 맑음 “선생님, 저 마치 정상인이 된 것 같아요.” 장진영 씨가 오늘은 웃으며 먼저 말문을 연다. “내일모레가 1차 항암 치료가 끝나는 날이거든요.” 오늘은 장진영 씨가 지난 9월 25일 1차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딱 열흘째 되는 날이다. 가장 힘들다는 첫 관문을 넘어선 것이다. “근데 저 하나도 안 힘들어요.” “원래 뜸을 하면 그렇단다. 그래도 용케 잘 견디는구나. 밥도 잘 먹지?” 구당이 큼지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묻는다. “네, 밥도 잘 먹고요. 메스껍지도 않아요. 처음 항암 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뜸 뜨기 전 4~5일 동안은 메스껍고 아주 죽겠더라고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병원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 들어오면 더 겁을 준다고 하더라. 그러니 환자가 스스로 확신을 갖는 수밖에 없단다.” “어쩜…….” “나는 의사를 ‘병원 폐문방지기閉門防止器’라고 부른단다. 모두들 듣기 싫어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니? 아무도 항의 못 해. 암도 그렇다. 내 눈에는 병원들이 웬만한 병을 죄다 암이라고 진단해 놓고는 다 고쳤다며 치료 효과를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느껴질 때가 있어. 원래 암은 그렇게 흔치 않은 병이거든.” 조금은 도발적인 구당의 암 강의가 이어진다. “세상 모든 의술이 사라져도 남는 건 침뜸 하나란다. 이건 영원해. 바꿀 수가 없어. 금속침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걸(침) 통해 여기(혈자리)로 전기를 전달하는 거지.” 혹시 장진영 씨가 지루해할까 봐 서둘러 강의를 접는다. 오늘도 결론은 침뜸이다. 한세기를 이어온 구당의 지론이다. 오늘은 일요일. 매일 이른 새벽에 마주하다, 오늘은 여유 있는 오전 시간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오가는 말들이 추석처럼 넉넉하다. 온갖 인연과 배경을 동원해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 지친 구당. 그는 장진영 씨 역시 자신을 뒤쫓는 기자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걸 ‘어제’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장진영 씨가 누구인지, 얼마나 유명한 배우인지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구당은 과거 군 장성들을 상대로 이른바‘몰래침’을 놓고 다니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숨어서 치료하고 숨어서 치료받는 신세가 진영이나 내가 서로 같네. ‘몰래침이 또 나왔구나’ 속으로 생각했지. 예전에 군 장성들 차 안에서 치료했었어. 내가 왔다 간 사실을 알게 되면 ‘저 장군이 어디가 안 좋은가 보다’ 하는 얘기가 나오니까 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거지. 장군만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그래.” “몰래침, 그러니까 저도 지금 몰래침을 맞고 있는 거군요.” “모든 여자는 어머니야. 나이가 상관없어. 어머니는 약하면서도 강해. 어머니는 자연이지. 침뜸도 자연이야. 써도 그대로 남아 있어. 몸 전체를 상대로 하는 거고. 서양의학은 죽이면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잘라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냐구. 하지만 우리는 모든 걸 그대로 놔둔단다.” “침뜸은 그대로 놔둔다…… 제발 절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어요.” “그래, 한번 해보자꾸나. 항암 치료는 1차가 더 힘들다던데 잘 견뎌 줘서 고맙다.” “침뜸 하기 이전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정말 감쪽같아요. 제가 정말 정상인이 된 것 같아요.” 장진영 씨 어느새 구당과의 대화에 푹 빠져 버린 듯하다. 구당은 전 세계 의학 중 미답의 영역은 이제 침뜸밖에 남지 않았다며, 침뜸을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어 세계에 내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마다 침뜸술을 익혀 건강을 도모하고, 뜻이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 봉사를 하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다. 실제 구당은 늘 주위 사람들에게 ‘침뜸으로 대한민국이 인류 역사에 기여하는 걸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해 왔다. “우리가 세상을 뒤집어놓자. 아픈 사람들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 꼭 나아라. 하루 일기도 변화한단다. 바람 불었다가 구름이 몰려왔다가 또 맑게 개기도 하고. 우리 인간도 소우주야. 건강하다가도 아프게 마련이지. 아프다고 꼭 죽는 게 아니야. 병원은 운영비 때문에 힘들지. 큰 병원은 모두 적자야. 어쩌면 병원은 병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지.” “아프다고 꼭 죽는 게 아니라고요?” 여배우 장진영의 얼굴에서 실낱 같은 안도가 스쳐지나간다. “이제 본인이 치료받을 각오가 됐으니 오늘부터 족삼리와 곡지에도 다 뜨자.” 족삼리와 곡지는 그동안 뜸을 뜨지 않았던 자리다. 다른 부위와 달리 두 혈자리는 무릎과 팔뚝 부위에 위치해 짧은 옷을 입을 경우 흔적이 밖으로 드러나기 쉬운 자리다. 여배우인 장진영씨의 심리적 상태를 고려해 구당 침뜸에 있어 중요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료 개시 만 6일 만에 장진영 씨에 대한 침뜸 치료 구도가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충을 시작으로 삼음교, 양릉천, 합곡에 각각 자침한다. “내가 봐도 무서울 정도의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낫는 걸 보면 신기하단다. 그래서 ‘정말 이 침뜸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악을 쓰는 거야.” 침을 놓으면서 구당은 환자에게 기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다. 어느새 음교에도 침과 뜸이 추가된다. 빈혈이 있는 여성 환자들에게 구당이 종종 쓰는 혈자리다. 중완, 좌우 양문, 거궐, 지창, 동자료에 침뜸. “선생님, 이렇게 뜸을 뜨고 있으니까 제가 마치 인도의 고행승처럼 느껴져요.”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침을 꽂고 뜸을 뜨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영락없이 수행 중인 승려의 모습이다. 여배우 장진영 씨는 지금 연약한 피부에 비록 깨알 크기지만 따끔한 뜸을 태우며 인생의 고행 길을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길의 끝에서 희망을 얻었다. 그녀에게도 작은 기적이 허락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바삐 적는다. 다시 환자의 몸을 돌려 곤륜, 위중, 신유, 양관에 자침한다. 신유엔 뜸 다섯 장이다.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에 심자가 이뤄진다. 장진영 씨가 신주와 흉추 4번 극돌기 하 부위가 뻐근하다고 강한 침감을 호소한다. “뻐근하면 뻐근하지 않게 해줄 수가 있지.” 구당은 민첩한 손놀림으로 깊이 박혀 있던 침을 뽑아내 얕게 박아 둔다. 발침 후 천자. 이어 격유, 궐음유, 천료, 풍지에 자침이 이뤄진다. 두 사람의 ‘몰래침’이 끝났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몰래침’을 기록하고 있는 ‘몰래기자’가 있다. 모두를 위해 필요한 진실이라면 더 이상 밀실에 가두지 않으리. 출입구와 창문을 막고 커튼까지 친 작은 치료실. 쑥과 향 냄새 까지 어울어져 마치 사우나 처럼 후텁지근하다. 첫 번째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