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4일 토요일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깊다. 장진영, 그녀가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인다. 치료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조심스레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것으로 기자의 임상 취재는 시작된다.   “선생님, 오늘도 새벽에 깼어요.” “몇 시에 일어났는데?” “4시 반요.” “걱정마라, 괜찮다. 나도 매일 그 시간에 일어나. 뜸을 뜨면 잠을 많이 자지 않아도, 낮에 잠깐만 자도 피로가 사라져. 멀쩡해지지.”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시면 뭘 하세요?” “진료 준비하고, 5시 반에 세면하고 6시에 꼭 밥을 먹는다. 치료를 위해서 식사는 반드시 5분 이내로 해. 6시 5분이면 침술원에 내려가는 게 습관이 됐단다.” “아…… 참 부지런하시네요.” “난 벼슬도 돈도 필요 없어. 그저 남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지. 그게 인생이야. 나를 위해서 남에게 잘 하는 거지.” “나를 위해 남에게 잘 하는거다?” “그래. 다들 잠자는 걸 얘기하는데, 잠도 많이 잘 필요가 없어. 대뇌와 소뇌가 쉬는 게 잠인데, 각각 육체와 정신을 관장하지. 소뇌가 안 쉬면 자면서도 꿈을 많이 꾸게 돼. 뜸 뜨는 사람은 밤새 잠을 안 자도 낮에 잠깐만 자도 멀쩡해.” “뜸이라는 게 정말 신비롭네요.” “아프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모든 게 귀찮아지지. 내가 건강할 때, 남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거지. 그러니 꼭 뜸을 해라.” “아프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장진영이 어린 아이처럼 자꾸 구당의 말을 되뇌인다. “정말 그래요.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신나지 않아요.” “의료인의 목적이 뭔지 아니?” “…….”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환자를 안 아프게 하는 게 의사란다. 환자를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환자를 안 아프게 한다. 정말 그게 의사지요. 그런데... 참” 오늘 두 사람이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구당의 침뜸 의학 이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아마도 장진영 씨에게 치료의 논리를 이해시킴으로써 확신을 북돋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람은 참으로 비논리적인 존재이면서도, 많은 경우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상한 존재니까. 구당이 다시 장진영 씨의 몸 상태를 묻는다. “지금 뱃속 상태가 어떤 것 같니?” “먹고 나면 포만감이 커요. 식사를 하고 나면 물도 못 마실 지경이에요.” “응, 포만감은 위도 문제지만 주로 간 때문이다. 위도 만져 보니까 조금 부어 있구나. 하지만 딱딱한 게 많이 물러지고 또 그 크기도 작아지고 있어.” “아…… 그래요?” “우리 동양의학은 살리는 것이야. 서양의학은 자르고 죽이지. 서양 의사들과 협조해야 더 많이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침뜸을 몰라도 너무 모르지 않니?” 진맥과 촉진을 마친 뒤, 구당의 자침이 시작된다. 피를 만드는 데 좋다는 족궐음간경의 태충으로부터 시작해, 족소양담경의 양릉천, 수양명대장경의 합곡혈에 이어, 치료의 포인트인 임맥 상의 중완에 침이 꽂힌다. 역시 중완은 오늘도 심자한다. 장진영 씨가 ‘오늘은 중완에 들어온 침 끝이 뻐근하지 않다’고 한다. “침뜸이 재미있는 건 아픈 사람 살아나는 재미가 있어서란다. 어제도 50년 만에 환자가 찾아왔어. 날 텔레비전에서 봤대.” 치료 중에도 구당은 환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오래된 A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이야기처럼 구수한 그의 말을 좇다 보면 치료 분위기가 훨씬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구당의 이 같은 ‘대화 전략’은 치료에 따른 환자의 공포와 부담을 덜어 주는 한편, 환자와 술자 사이의 친밀도와 상호 신뢰를 높여 궁극적으로 치료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구당의 유머는 수준급이다. 아픈 환자가 침을 맞으며 계속 깔깔 웃는다. 진영 씨도 늘 웃는다. 치료실이 봄날 같다. 동양의학에서 최고의 경지로 쳐주는 ‘손을 대지 않고도 치료한다’는 심의心醫라는 게 혹시 이런 경지에 오른 치료자를 말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구당의 침뜸의학에 있어 대화는 그만큼 중요한 요소인 게 분명하다. 좌양문에 침이 꽂힌다. 구당에게 살짝 물으니 ‘영양에 필수적인 자리’라고 한다. 하지만 장진영 씨가 통증을 호소한다. 즉시 발침한다. 그러고는 다시 얕게 꽂는다. 천자다. 배꼽 양옆 천추에 자침. 음교와 중완까지 이어진다. 오늘은 복부, 정확하게는 위장 부위에 침이 집중된다. 이어 족양명위경의 지창과 족소양담경의 동자료에 이르러 침이 꽂힌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뜸이 다섯 장씩 들어간다. 구당의 침뜸 개론 강의는 그 사이에도 계속된다. “서양의학은 세균을 죽이지만, 우리는 쫓아내. 세균도 몸에 필요한 거야. 입 안에 세균이 500종 있는데, 그 세균 중 하나만 약해져도 문제가 생기지. 체하는 것도 왜 그런지 아니?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음식을 소화시키는 기운에 문제가 생긴 것이지. 며칠씩 소화가 안 된 음식이 밖으로 나와서 보면 그대로 있어. 소화시키는 것보다 소화시키지 못한 이유를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하단다.” “그렇군요.” “안타깝다. 서양 의사들이 빨리 침을 배워야 하는데 참 아쉽구나. 이를테면 헌데가 침으로 잘 낫거든. 헌 상처 중 가장 심한 게 뭐니? 바로 화상이다. 그런데 화상이 침으로 아주 깨끗이 나아 버려. 화상이 침으로 낫는데 무슨 상처인들 안 낫겠니?” 오늘은 신유에 뜸이 추가된다. 따지고 보면 모두 피의 생성과 관계있는 혈자리들이다. 뜸 다섯 장을 뜬다. 이어 족태양방광경의 곤륜, 위중에 자침, 역시 같은 족태양방광경의 신유에 천자한다. 독맥의 지양과 족태양방광경의 격유에도 자침한다. 신주와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에 심자한다. 그리고 족태양방광경의 고황과 수소양삼초경의 천료에도 자침한다. 오늘은 족태양방광경의 천주와 족소양담경의 풍지에도 자침한다. “내 정신이 침을 타고 너에게 들어가는 거야. 뇌에서 나온 기운이 침구멍을 통해 들어가지. 배우가 연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 아니니?” “선생님, 연기 이론에도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장진영 씨가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궁하면 통하지. 뭔가 잘하는 사람은 모두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지 않니?” 나를 돌아보며 구당이 말한다. “상호야, 여길 보렴. 신주에서 신도까지 이 부분이 파랗지? 파랗다는 것은 뭘 의미하겠니? 무언가에 눌린 거야. 뜸을 뜨면 파란 기운이 없어진다. 살결이 다시 하얘진단다.” 구당의 손가락 끝이 장진영씨의 등판 윗부분을 가리킨다. “아…… 네.” 나의 눈은 구당과 장진영 씨의 등을 재빨리 오가고 있지만 손은 구당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고 있다.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적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벌써 치료가 시작된지 약 삼사십분. 이쯤 되면 펜을 쥔 손가락이 쑤셔 온다.   “진영아, 치료 중 아픈 게 나오면 빨리 얘기해 줘. 사실, 정상은 모르는 게 정상이란다. 자신이 정상인 것조차 모르는 게 진짜 정상이다. 뭔가 감지되면 신체는 이미 비정상인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게 정상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게 정상이다. 선생님, 참 멋진 말씀인 것 같아요.” 장진영 씨가 거든다. “과로해서 피곤하다? 그럼 쉬면 없어져요. 그게 정상이야. 힘들면 조금 앉아 있으면 나아. 그게 정상이야. 힘을 많이 쓰면 당연히 피로한 거야. 모르는 사이에 빨리 회복되는 게 정상이야. 다시 말하지만 정상이란 모르는 거야.” “저도 어서 모르게 됐으면 좋겠어요.” “뜸을 하고 나서 뭔가 안 맞는 걸 먹잖아? 그럼 배가 막 아파. 화장실에 세 번 정도 가서 배설하고 나면 그냥 나아. 인체는 입入·출出을 자동으로 통제하지. 입력과 출력, 그게 바로 음陰과 양陽의 이치야. 너무 어렵게 이해할 필요가 없단다. 입과 코로 들어오고, 오줌과 똥으로 나가는 것, 바로 그거란다. 입력되면 출력되는 거지. 들어온 게 안 나가면 병이 생기지. 컴퓨터는 바로 우리 몸의 음양의 원리를 적용해 만들어 낸 기계야. 이렇듯 침뜸은 이치理致 의학이란다.” 구당 선생은 어제 조계사와 명동성당에서 동시에 강연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원불교와 개신교에서도 같은 요청이 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 헬기 사고를 당한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 부부를 위해 왕진을 다녀왔다고도 했다. 마침 치료실에 들른 조건원 ‘뜸사랑’사무처장에게 물었더니 자신도 함께 다녀왔다고 한다. 만일 구당이 스타나 유명인을 통한 마케팅에 나선다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많을지 오랜 시간 구당을 취재해온 나는 알고 있다. 1,000명에 달하는 역대 국회의원들과 헌법기관장들의 면면 또한 잘 알고 있다. 많은 경우 구당 선생과 동행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인사들의 이름과 진료 자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단 한 차례도 발설한 적이 없다. 구당이 자신에 대한 비난에 대응하지 않으니 나 역시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침구원 영업 정지를 먹고도 구당은 “우리나라 사람만 사람인가? 전 인류를 낫게 해야겠다”며 마치 환자에 대한 치료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 열정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구당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뜸의 힘일 것이다. 혹시 구당과 뜸의 의지가 전달된 것인가. 한시간 전만해도 피곤 일색이었던 환자 얼굴이 제법 밝아졌다. 여배우의 끔찍한 임종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병마와 싸워 이긴 승리의 투병기가 될 것인지 아직은 온통 두려움 뿐이지만 기록하는 자의 저려오는 손끝에도 서서히 힘이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