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일 금요일 구당 오늘부터 부쩍 침 사용을 늘린다. 아시혈에 대한 1차 공략을 통해 성과가 확인되자 이제 몸 전체로 치료범위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아시혈’이란 환자의 통증이 심한 자리로 통증 부위를 눌러 주면 그 자리가 곧바로 편해지거나 아니면 환자가 아픔을 느끼고 곧 ‘아시’〔阿是 : 아! 거기가 맞다〕라고 호소하는 곳을 의미한다. 치료는 바야흐로 아시혈을 벗어나 전신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치료에 응하는 장진영 씨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반신반의하던 초기의 모습과 달리, 이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들이고 있다. 장진영 씨는 침뜸의 효과를 몸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잘 잤니?” “네, 할아버지. 일찌감치 푹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잠을 못 잤어요.” “그래 괜찮다. 그저 잘 먹어. 생명은 안 먹으면 죽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위암 환자의 9할이 결국 먹지 못해 사망에 이르고 있지 않던가.   “할아버지, 컨디션이 예전 처럼 좋아요. 평상시와 다름이 없어요.” “그래, 고맙다. 치료를 받아 줘서…….” 치료가 시작됐다. 구당은 침자리와 함께 뜸자리도 늘렸다. 좌양문과 거궐에 각각 뜸자리가 추가됐다. 침을 꽂아 놓는 시간, 이른바 유침留鍼(침을 놓은 후 꽂아 놓는 시간)도 20분 남짓 충분히 이뤄졌다. 장진영 씨의 얼굴빛이 확실히 좋아 보인다. 아랫배가 첫날에 비해 눈에 띄게 꺼져 있다. “식사 후 헛배 부르는 증상이 있지?” “네, 빵빵한 느낌이 있어요. 가스가 심하게 차요.” “그 느낌이 얼마나 지속되지?” “한 30분 정도요.” “음…… 아직 위장이 부어 있어.” 곤륜에서 위중, 신유로 침이 이어진다.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에 심자. 뜸 다섯 장. 궐음유, 천종에도. 비장 쪽이 안 좋다며 격유, 천주와 풍지에도 자침. 지창, 동자료에 자침. 양백에는 자침 후 즉시 발침. “할아버지, 양백에 자극을 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구당의 귓가에 조심스레 물었다. 그 역시 조용히 답한다. “진영이가 잠을 잘 못 잤다고 하지 않았니? 혹시 어지럽지나 않을까 해서 속자속발(침을 꽂았다 곧 뺌)해 준 게다.” ‘새벽에 일어나 잠을 못잤다’는 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잊고 있었는데 구당은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어김없이 시술에 반영한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가 참 많았다. 구당은 환자와의 문진 내용을 흘려듣는 법이 없었다. 머잖아 백세가 되실 노인에게 이것은 분명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문진 내용을 기록해둔 것도 아니고 맥진이나 자침 등 치료행위를 하며 나눈 수십분 전의 이야기를 모조리 기억해 두었다가 꼼꼼하게 모두 치료에 반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같은 일을 평생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일의 효율이 증가하는 경우가 있다.’ 신화학자 고故 이윤기 선생께서 생전에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효율의 폭발적 증가?’ 그렇다. 어쩌면 지금 구당은 마치 피아니스트가 악보에 연연하지 않고 체화된 감으로 쇼팽을 연주하듯, 손끝으로 환자의 몸과 직접 소통하며 그때그때 자동적으로 필요한 치료로 반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랜 수련으로 인해 환자와 치료자의 경계가 최대한 무너진 상태. 물이 흐르듯 그것이 자연스럽게 구현되고 있는 게 구당의 시술이 보이는 현상적 모습이 아닌가 여겨진다. 양릉천, 합곡도 자침. 좌양문과 거궐에 뜸 추가, 다섯 장씩이다. 중완에도 뜸 다섯 장. 우활육문에 자침하여 십이지장을 자극하니 진영 씨가 ‘뻐근한 감이 있다’ 호소한다. 곧 발침한다. 좌양문에 뜸을 추가한 것도 그렇지만, 어제에 이어 우활육문을 자극한 것도 관심가는 대목이다. 발바닥의 티눈 하나도 전략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구당. 일반 환자도 아니고 말기 암환자를. 지금 구당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모든 치료가 기록되고 있는 공개 임상이다. 얼마나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할까. 느끼기에 구당은 지금 암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입버릇 처럼 뿌리에 대한 치료인 ‘본치’ 즉 ‘근본 치료’를 중시해온 구당. 그는 지금 무엇을,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장진영씨의 몸에 암 이란 놈의 씨앗을 뿌렸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