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일 목요일 구당 선생이 침술원 문을 닫자 전국 30여 곳에 있는 침뜸 봉사실도 일제히 봉사 활동을 중단했다. 뜸 없이 침 만으로는 좋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필 장진영 씨의 공개 치료가 시작되자 마자 이런 일이 생겨서 구당이나 환자측 모두 입장이 곤란해졌다. 심기가 불편해진 구당은 침술원 내에서는 가급적 침을 잡지 않겠다고 한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장진영씨도 침술원의 많은 환자들을 부담스러워 했다. 보다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예당측과 협의하니 밴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전투 상황도 아니고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오늘 진료는 장진영 씨가 타고 온 대형 밴 안에서 이뤄지게 되었다. 차 뒷좌석을 눞히니 그럴듯한 침상이 만들어졌다. 홍대 앞 주차장 골목에 주차한 밴 안에서 구당과 장진영 씨가 접선하듯 만났다. 전장의 야전병원 그 자체였다. 불통의 시대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그림. 죄를 짓듯 숨어서 치료를 해야하는 현실이 암흑기 중세의 해질녁 그림 처럼 아득하게 마음을 저리게 한다. 치료가 시작됐다. 장진영 씨를 마주한 구당 선생의 얼굴이 밝다. “이제 네 얼굴 보니 다 나았다.” “네, 할아버지. 이렇게 입술 혈색도 돌아왔어요.” 사흘 전만 해도 장진영 씨의 입술은 진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입술 주변도 부르터 보기에 딱할 지경이었다. “할아버지, 입술 튼 것도 없어졌어요. 이것 보세요. 깨끗해졌어요.” 진짜 그랬다. 병색이 완연히 걷혀 있었다. “그래, 어젠 뭐 했니?” “영화 봤어요.” “맛난 것도 많이 먹어라.” 아랫배를 손끝으로 여기저기 눌러 보던 구당 선생. 뭔가 발견한 표정이다. “종양이 벌써 줄고 있어.” “네? 정말요?” “어제 집에 돌아가서 별일 없었니?” “침뜸을 하고 집에 왔는데, 배에 가스가 많이 찼었거든요.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오니까 속이 정말 편해졌어요.” “그래…… 이제 잘 됐다.” 중완에 자침, 뜸 다섯 장. 거궐, 좌양문, 이어 우활육문에 자침. “우활육문에 자침하시는군요?” 나지막한 소리로 내가 물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역시 조용히 답한다. “십이지장을 자극해 주기 위한 거란다.” 나는 적었다. 구당의 일거수일투족을 그저 적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침 하나하나의 자침 목적과 효능을 같이 기록해야 환자의 증상이 실제 개선되었는지 비교할 수 있기에, 제한적인 수준의 임상 기록이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치료의 맥을 끊지 않는 선에서 나는 최대한 구당에게 묻고 또 그 답을 적어 나갔다. 5%의 생존 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기 암환자 장진영. 병원이 내린 진단과 구당 선생의 낙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너무도 크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불안하기 그지없다. 구당의 말대로 정말 장진영 씨는 지금 빠른 속도로 암과 싸워 이기고 있는 것일까. 일찍이 구당을 취재하며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좋아지는 것을 목격했지만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놀라울 뿐, 확신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곤륜에서 위중, 신유,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에 심자, 뜸 다섯 장. 궐음유, 천종, 격유, 천주, 풍지, 지창, 동자료에 자침. ‘위암 환자에게 왠 궐음유일까?’ 그래서 물었다.   “심장에 관계된 궐음유에는 왜 자침하시나요?” “여기? 응.. 혹시 항암제가 심장을 상하게 할까봐 자극해준 거란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침뜸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남몰래 넣어 주는 연애편지 같은거라고. 장진영씨에게나 구당에게나,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