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씨 치료 첫날부터 난관은 시작되고..>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장진영씨가 치료 받기를 결심하자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구당의 면허가 문제됐다. “구당이 침사 면허는 있지만 뜸사 면허가 없으므로 뜸을 뜨지 말라”고 서울시가 통보해 온 것이었다. 한의사 단체의 집중적인 고발이 끝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법리적으로 서울시의 통보는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호를 뜸 ‘구灸’에 집 ‘당堂’즉‘뜸 뜨는 집’으로 정하고 평생 뜸을 떠온 구당에게 뜸을 뜨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임이 분명했다. 침과 뜸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상보적인 관계다. 조선조 최고의 침구사인 허임許任은 명저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에서 침과 뜸을 병행하여 치료할 것을 강조하였고, 그러기에 치료법을 ‘침’방이나 ‘구’방이라 하지 않고‘침구’방이라 했다. 평생을 침과 뜸을 함께 이용해 환자를 치료해온 구당에게 뜸을 포기하라는 것은 더 이상 환자를 치료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 였다. 통고서를 받자 구당은 제 손으로 침술원의 문을 닫았다. 침술원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많은 어려움을 예상했으나 장진영씨의 공개 치료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침 치료는 문제가 없겠지만 뜸 치료가 법리적으로 가능할지 고민이었다. 주변의 변호사들과 상의 했다. 그 결과‘형식적으로는 불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처벌하기는 곤란할 것’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기자의 상식으로도 돈이 목적이 아니라 후세에 의학적 자료를 남기기 위한 연구 목적의 공개 치료인 만큼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많은 환자들에게 침뜸의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해줌으로써 희망을 나눠 준다는 공익적 목적도 분명하지 않은가. 더구나 장진영 씨 본인이 치료를 원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비록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치료 전반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몫을 다하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이른 새벽 찾은 침술원 주변은 시당국의 ‘뜸 시술 금지’ 조치로 치료 기회를 빼앗기게된 환자들이 수십명이 모여들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침술원 뒤쪽 영휘원 주차장 부근에서 장진영 씨를 만났다. 다시  007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침술원 2층까지 올라가는 길이 지난번 보다 험난했다. 얼핏 바라본 장진영 씨는 이틀 전보다 안색이 조금 밝아진 듯했다. 장진영 씨를 호위하고 계단을 오르는데 진료실 바로 앞까지 환자들이 들어차 있었다. 혹시 들키면 어쩌지? 3류 배우는 초조하기 그지없다.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작심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구당이 장진영 씨를 반갑게 맞는다. “잘 지냈니?” 구당이 작정을 한 듯 말을 놓는다. 평소 아랫사람에게 쉽사리 말을 놓지 않는 구당이다. 환자와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읽힌다. “네…… 선생님, 저 사실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밤마다 깊은 잠을 못 잤는데 엊그제는 글쎄 한 번도 안 깨고 잘 잤어요.” “그래, 다행이다. 얼굴도 좋아졌어.” “사실 일주일 전부터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고 몸이 꺼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느낌도 없었어요.” “차도가 있는 것 같으면 한번 치료를 받아 볼 테야?” “네, 저 치료를 받아 보고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와 회사 관계자를 따라왔던 장진영 씨. 이틀 만에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변화를 느낀 그녀가 불확실성 속에서 어려운 판단을 내려주었다. 그녀의 선택이 그녀는 물론 침뜸을 알지 못하고 고통받는 수 많은 환자들에게 축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작은 보람을 느꼈다. 장진영 씨를 병상에 눕힌 구당은 티셔츠를 말아 올리고 배를 촉진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하는 구당은 여성의 속옷이 드러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장진영 씨에게도 그랬다. 불과 이틀 만에 크게 부풀어 올랐던 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구당 선생의 얼굴이 밝아진다. “자, 침을 놓자.” 구당이 어느새 침을 잡았다. 첫 혈자리는 중완. 오늘도 역시 심자다. 뜸은 첫날보다 두 장이 늘어난 다섯 장을 뜬다. 장진영 씨의 발목 안쪽 복숭아뼈 윗부분(삼음교)에 침이 꽂히고, 무릎뼈 바깥쪽(양릉천)에도 침이 꽂힌다. 배꼽 양옆(천추)과 중완 위쪽(거궐), 중완 왼쪽(좌양문)에도 각각 침이 꽂힌다. 입술 옆(지창) 양쪽에도 자침. 이제 등을 본다. 구당이 첫날 치료의 포인트라 지목했던 흉추 3· 4·5번 주변이 여전히 봉긋 솟아 올라 있다.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혈에 각각 심자. 4번의 양옆(궐음유)에 자침. 흉추 1번 아래 도도혈과 어깨 부근(천료)에도 자침. 신주, 흉추 4번 극돌기 하, 신도에는 지난번과 달리 다섯 장의 뜸을 뜬다. 구당과 장진영 씨 두 사람 사이의 긴 대화가 시작됐다. 시대와 문명을 뛰어넘은 소중한 대화다. 너무 작아 두 귀를 쫑긋 세워야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 기자는 작은 목소리를 담아 광장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비록 의학 기자도 아닌 일개 천덕꾸러기 고발 기자에 불과하지만, 지금 여기 나 말고 달리 그 소명을 감당할 자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두려운 마음으로 그저 기록할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