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허진호 감독의 최근작이 흥행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러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씁쓸한 문화현상이다. 아래 기사는 미스-캐스팅을 지적하는 통신 기사다. 발군이다. 이문원 기자는 매우 뛰어난 대중문화 기자다.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기사를 읽는 감독은 고통스럽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든게 문화다. 흥행 참패도, 그걸 기록하는 기사도, 그리고 그 풍경을 읽어내려가는 우리들도 그 속에서 주인공이 된다. 아주 근사한 문화다. 허진호 형의 다음 작품에 대박을 기원한다. 멋진 캐스팅이 이뤄진, 로맨틱 코메디를 기다리며...애틀란타에서) 지지부진 '호우시절', 정우성 나이 탓이다 2009-10-18 08:50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 허진호 감독, 정우성 주연 영화 ‘호우시절’이 실망스런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다. 실망이라기보다 참패에 가깝다. 10월8일 개봉한 ‘호우시절’은 개봉 첫 주말 11만5734명을 동원, 주간 흥행 5위에 올랐다. 1, 2위는 개봉한지 3주가 지난 ‘내 사랑 내 곁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 3위는 단독주연 영화가 좀처럼 흥행한 일이 없는 이범수 주연 ‘정승필 실종사건’이었다.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문제는 ‘호우시절’에 별다른 실패요인이 없다는 점이다. 허진호 영화는 본래 가을에 강했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 개봉 전부터 중국 여배우 고원원의 미모가 화제가 됐다. 되레 지난 허진호 영화들보다 개봉 전 상황은 나은 편이었다. 결국 ‘패전책임’은 허진호가 아닌 주연배우 정우성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우성의 저주’라는 것이다. 정우성의 전성기는 1997년부터 2004년 사이, 영화로 따지면 ‘비트’부터 ‘내 머리 속의 지우개’까지다. 이 8년 간 정우성 영화는 대부분 다 ‘됐다.’ 애초 상업영화라 보기 힘들었던 옴니버스 ‘모텔 선인장’을 제외하면 모두 중박은 넘었다. 그러다 2005년 ‘새드무비’부터 안 풀려나갔다. 지난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성공하긴 했지만, 상당부분 김지운 감독과 공동주연 송강호에 공이 돌아가고 있다. 그 외에는 꾸준히 실패의 연속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단순히 보면 출연작 선정, 또는 개봉시기 선정의 실패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시야를 확장시켜 보면, 정우성 나이 또래 남자배우들이 요즘 대부분 다 잘 안 풀리고 있다. 당장 정우성과 어깨를 견줬던 이정재도 정우성과 유사한 패턴을 그리고 있다. 그의 전성기는 1998년에서 2003년 정도까지다. 그 동안에도 비상업적 프로젝트를 즐겨 선택해 흥행성적은 오락가락했지만, ‘태양은 없다’ ‘시월애’ ‘선물’ ‘오! 브라더스’ 등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장동건도 비슷하다. 초기 영화선택에 문제가 있었지만, 2001년 ‘친구’로 급반등했다. 이후 ‘2009 로스트 메모리스’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히트시키다가 2004년 이정재와의 공동주연작 ‘태풍’이 기대 이하 반응을 보인 뒤로 이듬해 ‘무극’도 대실패했다. 이외에도 많다. 2001년 ‘두사부일체’로 뜬 정준호는 2006년 그 속편 ‘투사부일체’까지 성공시킨 후 하락세를 겪고 있다. 이병헌 역시 1999년 ‘내 마음의 풍금’ 이후 승승장구하다 급하락했다. 신하균도 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 이후 큰 재미를 본 일이 없다. 차승원도 같은 영화 이후 성공률이 지극히 낮아지고 있다. 이들의 연령대는 1970년생에서 1974년생 사이, 사실상 같은 세대다. 흔히 ‘X세대’라 통칭되던 386 이후 5년 세대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일정 연령, 정확히는 30대 초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모조리 안 풀리고 있는 걸까. 연령대에 맞는 캐릭터가 애매하다는 분석은 일단 틀렸다. 30대 초중반 남성배우는 과거 가장 인기 있는 나이대의 상품이었다. 최민수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나이대가 30대 초반에서 중후반까지였다. 박중훈도 30대 후반까지 잘 풀렸다. 돌아보면 안성기의 최전성기는 28~40세 사이였다. 대중문화 주 소비계층이 세대교체됨에 따라 그보다 젊은 배우로 대중의 관심이 넘어왔다는 분석도 사실과 다르다. 미디어 노출도는 높을지 몰라도 티켓파워를 발휘하는 건 오히려 그보다 나이가 많은 386세대다. 43세 송강호, 42세 설경구, 43세 김윤석 등이 팔린다. 30대 이하에서는 사실상 티켓파워 남자배우랄 게 없다. 결국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세대의 문제, 세대에 대한 대중인식의 문제, 그리고 세대의 대중문화 소비욕구 차이 등 전반적 세대문제로 파악해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왜 386세대만 대중적 인기도를 유지하고 있는 지다. 먼저 대중문화 주 유료소비계층의 면면을 알아보자. 20~30대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40대 이상은 어느 문화권에서건 필연적으로 대중문화 관심도가 떨어진다. 10대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여기에 더 붙이자면, 20~30대 여성층이 유료소비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영화관람의 데이트 무비화 개념에서 봐도 그런 분석이 맞다. 그렇다면 결국 20~30대 여성이 20~30대 남자배우에게 큰 매력을 못 느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보다 위인 386세대 남자배우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왜 그럴까. 단순하다. 20~30대 여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만한 요건을 실제 20~30대 남성층이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 30대 중반 배우들의 전성기를 돌아보면 그렇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런 요소가 떨어져 나갔다. 21세기 들어 경제불황이 장기화되면서부터다. 장기화된 경제불황은 당연히 여성층의 의식도 일정부분 보수화시킨다. ‘강한 남성’ ‘여성을 책임져 주는 남성’에 대한 동경이 강해진다. 마초이즘에 대한 환상도 생긴다. 그러나 현재 30대 중후반 남자배우들은 1990년대 중반, 버블경제의 극치일 때 발굴된 케이스다. 당시는 호황정서답게 ‘부드러운 남성’이 인기를 끌었다. 한석규로 대표된다. 정우성도 바로 그 케이스다. 그나마 도중에 남성성 부각으로 이미지 메이킹 방향을 선회했던 장동건, 이병헌 등이 좀 더 갔다. 그래도 여전히 ‘꽃미남’ 이미지는 떨쳐버리기 힘들다. 젊은 남자배우들 중 그나마 티켓파워를 낼 수 있는 1978년생 하정우 역시 기본적으로 터프한 이미지임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세대 자체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있을 수 있다. 현재 30대 남성은 모두 IMF 직격탄을 맞은 세대다. 취직도 안 되고 자기사업의 꿈도 벤처 거품이 꺼진 후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아 소위 ‘능력남’이 되기 힘들다. 그런 현실을 지켜보던 여성이라면 스크린에서 같은 세대 남성을 보며 판타지로 바로 이동되기 쉽지 않다. 현실과의 괴리 탓에 믿겨지지도 않고, 그 나이 또래 자체가 그다지 멋있어 보이질 않는다. 차라리 나이를 확 줄여 100% 판타지형 구준표로 가든가, 아니면 실질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386세대로 호감이 넘어가게 된다. 물론 구준표를 좋아하는 10~20대 초반 여성의 경우, 경제력이 떨어져 유료상품 소비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30대 남자배우들이 ‘카리스마적인 역할’을 맡았을 때 효과가 안 생긴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중에게서 공감대를 얻어내기 힘들다. 이 세대 중 그나마 생명력이 긴 게 망가지는 코미디 배우들이다. 임창정 등이 오래갔다. 또한 불행한 배역의 기본형인 ‘병을 앓는 역할’에는 30대 남자배우들이 효과를 낸다. 당장 ‘내 사랑 내 곁에’의 1972년생 김명민이 있다. 카리스마적 역할을 맡았던 ‘리턴’ ‘무방비도시’는 모두 실패했다. 1980년생 조승우는 자폐증 환자로 한 번(말아톤), 터프한 역으로 한 번(타짜) 성공했다. 다시 ‘호우시절’로 돌아가 보자. 이런 맥락에서라면 ‘호우시절’은 단연 실패할 만한 했다. 주인공 박동하(정우성 분)는 건설 중장비회사 팀장이다. 나이는 정우성과 동일한 37세로 보는 게 타당하다. 37세면 정상적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 1999년이 된다. 경제불황 체감도가 한창 높아지고 기업이 신규채용을 확 줄여 나갔던 시기다. 박동하 정도면 꽤나 독보적인 세대의 성공자다. 그러니 캐릭터 설정에 대한 공감대가 떨어진다. 그 세대의 모습을 한 정우성이 그 역을 맡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멋있는 배역임에도 멋있어 보이질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판매에 있어 세대의 소비의식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극예술 장르에서는 개념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현실과 어느 정도 매칭이 되고 있으며, 또 어느 정도 매칭을 넘어선 판타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세대인식’의 문제가 고려돼야 한다. 미국 대공황기의 스타는 코미디배우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이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험왕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는 대공황이 막 닥쳤을 무렵 36세로 당시 기준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은 세대’였다. 이 같은 해외 예시 등을 통해 대중문화 전략을 새롭게 재편해볼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