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초대석> 92세 '슈퍼 노인' 김남수 옹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07-09 07:02   매주 7일 곳곳 돌며 노약자에게 침뜸 봉사 4월 중국, 5월엔 미국 출장가 노익장 과시 "배워서 남 줘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거죠" "환자의 고통 덜어주는 게 의료인이 할 일"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장수시대라지만 90세 넘게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이까지 건강하게 사는 건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이에 남에게 봉사하며 사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만 92세의 구당(灸堂) 김남수(金南洙) 옹. 김옹은 100세를 눈앞에 둔 노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건강을 바탕으로 남에게 봉사하며 행복하고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 보면 숨이 가쁠 정도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깨어 있는 시간은 자신이 가진 재주인 침과 뜸으로 환자들을 치유하는 데 온전히 보낸다. 또 봉사단체인 뜸사랑과 남수침술원 등의 업무를 직접 챙기고, 틈틈이 강의도 나간다. "건강 비결이 뭐냐고 자주들 묻는데, 특별한 거 없어요. 평생 동안 침을 맞고 뜸을 떠서 그렇게 된 것이죠. 그리고 환자의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저절로 건강해진 겁니다. 그렇다고 강골로 태어난 것도 아니지요." 김옹의 기억력은 비상하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굵직한 일에 대해서는 사람의 이름과 날짜까지 정확히 떠올리며 3시간짜리 강의도 가볍게 이끌어간다. 청력과 시력 또한 대단해 보청기나 안경의 도움 없이 대화하거나 신문과 TV를 본다. 음성은 부드럽고 또렷하며 얼굴엔 늘 환한 웃음을 올리며 산다. 농담은 기본이다. 그의 일과를 좀더 자세히 살펴 보자. 식사는 아침 6시와 낮 12시, 오후 6시에 규칙적으로 한다. 시간은 각 15분 정도. 야채 위주이며 밥은 정확히 한 공기다. 술ㆍ담배는 물론 간식은 일체 안한다. 아침 6시 30분에 첫 진료에 들어가고 9시에는 자신이 뜸을 뜨는데, 이때 10여 분 가량 토막잠을 잔다. 그리고 다시 진료에 들어가 쉴새없이 환자를 만난다. 식후에 쉬는 시간은 없다. 오후 진료가 끝날 때가 5시 무렵. 저녁식사 후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받고 지시하거나 교육장에서 강의를 한다. 밤 10시께 집에 들어가 신문과 TV를 보며 역시 고령인 아내와 함께 홀가분한 시간을 보낸다. 김옹의 침뜸 진료는 서울 청량리2동에 있는 자신의 뜸사랑 사무실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설치된 봉사실에서 돌아가며 이뤄진다. 월ㆍ수ㆍ금요일은 사무실 건물에 있는 침술원에서 하고, 화ㆍ목요일은 국회와 KBS, 감사원으로 출장나간다. 토ㆍ일요일은 창신동 등 서울은 물론 지방의 봉사실도 찾는다. 4월 말에는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5월 말에는 5박6일로 미국을 다녀왔다. "나의 신조는 '배워서 남 주자'입니다. 우리 뜸사랑의 행동지침이기도 하죠. 내가 배운 재주가 수천년을 이어온 민족 전통의학인 침과 뜸이니 이걸로 세상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하는 겁니다. 오로지 봉사정신 하나로 살고자 하며 이 봉사는 일종의 데모(시위)이기도 합니다. 나만을 위한 삶에서 질병 없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지요." 그가 말하는 침과 뜸이란 전통의술인 침구(鍼灸)를 뜻한다. 쇠바늘과 쑥뜸을 경혈(뜸자리)에 놓아 인체의 자가치유능력을 되살림으로써 진통을 없애고 질병을 몰아내고자 한다. 김옹은 전통 침구학에 기혈과 음양오행의 평형 원리를 원용한 '무극보양뜸'을 창안해 임상에 적용시키고 있다. 쌀알 반 크기의 마른 쑥을 곳곳의 뜸자리 피부에 올려 놓고 불을 지펴 60도 가량의 열로 1초 남짓 자극하는 것을 '뜸을 뜬다'고 한다. 1915년에 태어난 김옹은 선친에게서 침구학을 전수받았고, 1943년에는 남수침술원을 개원해 본격 진료에 나섰다. 즉, 임상경험이 무려 70년 정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임상경험을 갖고 90세가 넘도록 일선에서 진료하는 경우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의료계는 말한다. "11살 때부터 어깨 너머로 아버지의 침과 뜸을 배웠습니다. 침술원을 열어 침을 놓고 뜸을 떠주곤 했는데, 효험이 좋았는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그러면서 우리집을 '뜸집'이라고 불렀지요. 내 호(구당ㆍ灸堂)는 그래서 생긴 거예요." 김옹이 '뜸이야말로 최고의 의학'이라고 자신있게 외치는 데는 가슴 아픈 지난날이 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없애 버린 침구사 양성제도를 되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끝에 그 희망의 끈이 보이는 순간 극도의 통증을 가슴에 느끼며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에게 즐거운 '쇼크'를 안겨준 사람은 천명기 보사부장관. 천 장관은 1980년 10월, 침구사양성제도를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희소식을 듣자마자 폐지 18년 만에 호기를 맞았다며 감격해하다 그만 절명 위기에 빠진 것이다. 김옹은 죽음의 순간에 가족들에게 침과 뜸을 놓도록 해 겨우 고비를 넘겼다. 이후 40일 동안 산소마스크 신세를 지고, 다시 6개월 동안 심근경색 치료를 받은 후에야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제2의 생을 찾은 그는 침뜸으로 다른 노약자와 환자들에게도 건강을 회복시켜주자며 봉사의 길을 나선다. 김옹이 설명하는 침과 뜸의 이치는 간단하다. 전기가 음양이 만나 흐르는 것처럼 우리 몸도 음양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피로나 질병은 그 음양이 제대로 흐르지 못할 때 생기는 것. 바로 그 끊긴 자리인 경혈에 침을 놓음으로써 기운이 소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뜸 역시 쉬운 이치다. 우리 몸이 약창고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체가 갖고 있는 자연치유력을 회복시키고 강화시켜 스스로 낫게 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에서 약을 투입하는 다른 의학과 다른 점이다. 즉, 인체가 본시 갖고 있는 약창고의 열쇠인 침과 뜸으로 닫힌 문을 다시 열어 건강을 유지케 한다. "침과 뜸은 장점이 하나둘이 아니에요. 누구든지 쉽게 배워 언제 어디서든지 활용할 수 있거든요. 재료가 간단하고 돈도 거의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부작용 또한 전혀 없어요. 침구통 하나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뜸만 뜰 경우 15분이면 충분해요. 침까지 놔도 1시간이면 되구요." 김옹은 현대의학이 세균을 약물을 투입해 죽이고, 난치부위를 잘라 내거나 바꿔끼우는 것이라면, 침구의술은 고장난 몸을 고쳐 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체 내의 균형과 조화가 깨졌을 때 질병이 발생해 악화하므로 그 요처를 자극해 잃어버린 균형과 조화를 되찾게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건강의 핵심은 병이 아니라 인체의 치유능력이라고 그는 본다. 그렇다고 현대의학을 저평가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마찬가지로 전통의술의 효능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김옹은 역설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전통의술과 상호 보완하고 상대의 한계를 극복하며 기능할 때 궁극적으로 노약자와 환자들의 고통을 좀더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침구사제도는 1962년에 없어져 현재 법적 후진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에 따르면, 김옹처럼 폐지 이전에 면허를 취득한 침구사가 43명(지난해 8월 기준)이나 대부분 연로해 일선에서 진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 2만여 명에 이르는 한의사들이 침뜸을 적용하고 있으나 제도 자체가 없어진 터라 제대로 된 교육과 임상이 힘들다고 김옹은 안타까워한다. 이는 일본, 중국, 미국, 북한 등 다른 나라의 동향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와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80개소의 침구전문대에서 연간 4천 명의 침구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북한도 침뜸을 포함한 전통의술로 대부분의 질병을 치료한다. WHO 역시 침뜸으로 300여 개의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효과를 인정했다. 국내에서는 침구사제도가 폐지된 가운데 김옹이 중심이 된 민간차원에서 요법사를 양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봉사원은 1천200여 명. 이들로부터 침뜸무료봉사를 받는 노약자와 환자는 연간 약 13만 명에 이른다. 김옹이 회장으로 있는 뜸사랑은 서울 18개소를 비롯해 전국에 31개의 봉사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옹의 침구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이들은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명사들이 많다. 전직 대통령은 물론 관계, 재계, 법조계, 군 등에서 명성이 높은 고위급 인사들이 침뜸의 효험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침구사제도가 없어 대부분의 요법사들이 '봉사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다시 말하지만 의료인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있습니다. 이는 양의사나 한의사도 모두 동의할 겁니다. 부당하게 맥이 끊긴 침구사제도를 언제까지 내버려둘 건지 정말 안타까워요. 내 재주로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그 역할을 하도록 해야지요. 게다가 장수시대를 맞아 침구치료를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김옹은 의료계의 영역다툼은 환자들과 노약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한다. 의료수요자인 국민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좋은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료인은 물론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침구사양성제도 부활을 줄기차게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침뜸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 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이와 함께 국제화시대를 맞아 한국의 침과 뜸이 국익에도 보탬이 되게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침구의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이를 활용하게 하고,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외국으로 진출토록 하자는 것이다. 침구통 하나만 들고 비행기에 오르면 된다는 것이다. "뜸은 누구에게나 좋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듯이 계속 떠야 합니다. 하다 말면 둘 다 손해예요. 노약자나 환자는 몸이 나빠져서 손해고, 나는 침뜸으로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해놓고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니 손해고요. 눈을 감는 날까지 이렇게 봉사하며 살 겁니다. 주도권같은 건 관심도 없어요. 침 놓고 뜸 떠주는 사람으로서 환자의 고통만 덜어주면 그만입니다. 판단은 환자들이 하는 거고요." ido@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