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걸음을 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홀로 걷는 걸음이라면 더욱 견디기 힘겹다. 이상호 기자는 혼자였다. '우드워드'에겐 '번스타인'이 있었건만, 그는 혼자서 외로운 그 길을 걸었다. “출세하고 싶어 보이는 게 없다"는 주위의 비아냥과 함께 식사를 할 동료도 없는 현실이 그가 가는 길에 쓰디쓴 눈물을 뿌리게 했다.  그래도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 고된 길의 끝자락에서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라는 두 개의 큰 결실을 볼 수 있었다. X-파일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정의는 결국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쪽의 손을 들어줬다. 헌법에 명문화 돼 있는 ‘사생활의 보호'보다 국민의 감정이 대한민국의 가슴이 가치 있음을 선언한 일대의 사건이었다. 권력과 거대자본에 휘둘려 좀처럼 제4부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던 우리 언론의 현실에 충격적인 경종을 울려주는 일 이었다. 그리고 일련의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한 젊은 기자에게 빚을 지게됐다. 그가 쓸쓸히 걷던 그 길은 이제 대한민국 사법부가 그리고 언론이 함께 걸어야만 하는 길이 됐다. 그것만이 그토록 외롭던 그를 달랠 수 있는, 또 그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잇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여정은 이제부터다. 이 기자가 찾아 낸 결실은 대한민국 정의의 종착지가 아닌 또 다른 출발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가시덤불이 펼쳐져 있을게다. '공화국 삼성'의 금화 보따리가 앞길을 막으려 할 테고, 정신 못 차린 보수 언론의 오지랖 넓은 권력에 대한 참견이 여전히 발목을 잡을 지도 모른다. 지금부턴 우리의 몫이다. 이제는 이 기자를 홀로 걷게 해서는 안 된다. 법조인들은 법복이 부끄럽지 않도록 예리한 칼 끝을 세워야 하고,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는 닉네임에 부합되도록 펜 끝에 힘을 줘야 한다. 政,經,言의 그 흉물스럽게 얽힌 실타래는 그렇게,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 풀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족 하나, 세기의 특종을 놓친 우리 언론인들에게 안타까움과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싶다. 특종을 위해 뛰고, 특종 하는 맛에 산다는 기자. 살인적인 업무와 박봉에도 언론인이 버틸 수 있는 건 바론 그 한가지 이유임을 부인할 자 누가 있을까. 확인을 거친다는 이유로, 어쩌면 내가 다칠 수 도 있을 거라는 소심함으로 인해 우리 언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특종을 놓쳐버렸다. 담대하지 못했던 그들이 이번 판결의 의미를 깊이 되 새겨야 하는 이유다.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에게도 기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멋진 직업인 듯 하다.  ‘그레고리 펙' 기자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 공주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레드포드'기자 역시 '워터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자'는 명배우가 거쳐야 할 필수 코스일 것이다.-과거에도, 미래에도 ‘슈퍼맨'의 주연배우는 변할지언정 그의 ‘기자'라는 직업은 여전할 테니.. - 21세기 대한민국은 명배우들의 귀감이 되는 ‘명 기자' , '굿 저널리스트'를 가지고 싶다. 지친 이상호 기자의 어깨를 ‘툭'쳐주고 함께 걷는 가슴 깊은 동반자를 보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