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만이군요. 죄송합니다. 대충 짐작들 하셨겠습니다만 그간 무척 바쁘고 혼돈스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글쎄요.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화방송에는 간단치 않은 조직의 타성과 관행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난 보름간의 힘겨운 싸움은 그 얼굴없는 폭력과의 한판 승부였고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싸움'이라는 표현과 '관행' 운운하니.. 좀 거창한 느낌이 드는군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저는 그동안 <시사매거진 2580>에 배속돼 현장 보도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형식의 뉴스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는 일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도데체 어떤 내용이냐구요?  한마디로 기존의 권위적이고 매너리즘에 빠진 뉴스프로그램을 시청자 눈높이로 끌어내리기 위한 일종의 열린 뉴스를 위한 시도였습니다. <뉴스플러스>가 프로그램의 가제였구요 . <뉴스플러스>의 가장 중요한 코너는 한주일의 뉴스라운드-업. 한주간의 뉴스를 정리하면서 뉴스마다 시간과 형식 제한 때문에 보도하지 못하고 기자들의 취재수첩에 잠들어 있는 정보를 시청자에게 낱낱히 보고하는 코넙니다. 기자들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고급 정보를 원래 주인인 시청자에게 되돌리자는 것이었죠. 물론 보도방식도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포멧으로 개발했습니다. 그밖에 뉴스의 핵심인물을 '공격적'으로 만나 이른바 공급자 위주의 언론플레이를 봉쇄하는 직격 인터뷰 코너와 '뉴스 그 이후'를 시청자들의 알권리 차원에서 기존에 보도된 내용만을 전문적으로 뒤쫓아 보도하는 코너 등이 메인 메뉴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저만의 바람인가요? 여러분들도 진정 원하던 뉴스아닙니까? 신임 이긍희 사장은 이같은 프로그램의 취지를 보고받고 '만시지탄'이 있다며 찬사를 보내고 즉각 제작에 착수하라는 언질을 했습니다. '반개혁적'이라는 세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사장의 개혁적 프로그램 觀에 저희들은 박수를 보냈지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한달간의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저를 포함한 준비팀은 여러차례 예기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을 위해 이 프로그램은 꼭 관철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긍희 사장과 편성국의 이해하지 못할 처사 때문이었습니다. <미디어 비평>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아시다시피 <미디어 비평>은 문화방송의 대표적 공익 프로그램으로 방송사의 개혁성의 척도로 평가되는 프로지요. 하지만 사측은 <뉴스플러스>를 그런 <미디어 비평>을 '안락사' 시키기 위해 이용했던 것입니다. 분명 두 프로가 다른 목적하에 별도로 기획된 프로그램임에도 사측은 <뉴스플러스>를 <미디어 비평>과 합쳐서 제작할 것을 사실상 '종용'했고 이는 다름 아닌 <미디어 비평>의 안락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뉴스플러스>를 방송하기 위해서 <미디어 비평>을 폐지해야하는지.. 사측은 이렇다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뉴스플러스>나 <미디어 비평> 양측은 회사측의 '냄새나는' 합병 제의를 거부했지요. 문제는 그때부터 점점 복잡하게 빠져들어갔습니다. 물론 사측의 입장에도 외주에 따른 제반 문제 등 말 못할 고민이 많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런 제반 문제를 책임있는 정책으로 풀어내라고 문화방송의 이름으로 그 책임있는 자리에 올려드린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측은 모든 책임을 프로그램 제작과 취재에 몰두해야할 현업 종사자들이 전가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이긍희 사장과 편성측은 다른 한편으로 이번 <뉴스플러스>의 신규편성이 기존 <미디어 비평>을 '확대개편'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언론플레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개탄스럽더군요. 정작 무대 뒤에서는 프로그램을 죽이기 위한 '청부살인(?)'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멀쩡히 굴러가던 <미디어 비평>은 본의 아니게 시청자 위주의 개혁적 뉴스 프로그램을 준비해온 <뉴스플러스>팀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취임전부터 <미디어 비평>을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긍희 사장과 사측은 자신들의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두 프로그램을 갈등 구조에 편입시킴으로서 결국 두 프로그램의 공멸을 부추겼습니다. 방송프로그램의 공영성을 지키고 편성정책을 집행해야할 통수권자로서 책임 지기를 거부한 사측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물론 패배자는 알권리를 봉쇄당한 시청자일 뿐입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드리죠. <미디어 비평>은 적소 편성과 인력충원 등 그동안 요구해온 어떠한 추가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현재 그대로 또다시 '방치'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뉴스플러스>는 방송을 앞두고 유산되었구요. 함께 준비하던 팀들은 공중으로 분해되기 직전입니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미디어 비평> 존폐 문제에 쏠려 있는 사이 정작 MBC와 'MBC 뉴스'의 공영성 잣대가 될 <뉴스플러스>는 그렇게 우야무야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소동이 끝난뒤 이긍희 사장을 비롯한 사측은 '반개혁적 수구세력'이라는 의혹어린 이름표를 떼어 버릴 수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지난 보름동안 숱한 좌절을 겪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상호생각'은 한잔 술잔 속에 가라앉아 버렸고 희망은 술잔과 함께 쏟아져버렸습니다. 땅으로 스며든 아픈 소주잔이 언젠가 '거부의 꽃' 을 피워낼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나서 제게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알수 없지만 스스로와 약속한 운명이라면 걸어야겠지요. 정통뉴스의  평탄한 길을 벗어나 새로운 뉴스의 이정표를 세워보겠다며 걸어온 황톳길을 되돌아봅니다. 짧지만 길게 느껴지도록 힘겨웠던 날들을 뒤로하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흔들리는 마음을 조용히 다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