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어제 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습니다. 전날 술자리 때문이었습니다. mbc 신입기자들인 34기 후배들을 위한 28기 동기들의 술모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똘망거리는 후배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속 진한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선배들이 잘하면 mbc 뉴스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덕분에 술좀 했습니다. 소주, 맥주로 이어진 끝에 3차는 mbc 분수대로 정했습니다. 춥더군요. 그래서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차를 마시며 치기어린 불장난도 좀 했습니다. 춥다는건 사실 핑계였습니다.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회사 관계자분께는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20장 가지고 나온 명함을 다 써버렸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얼굴이 둘 있었습니다. 저녁 8시50분. 시청앞 지하보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거리 선교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엔 기호 5번 어깨띠를 두른 선거운동원이 혼자 서 있더군요. 그냥 지나갈까 순간 고민하다가 아무도 없는 지하도에서 목소리를 높히고 있는 그가 안스러워 잠시 그의 앞에 서있기로 했습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검은 뿔테안경 너머로 선해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외친 말은 대강 이랬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보수정객들이 과연 무엇을 바꿨나요. 이제는 사회주의입니다. 화려하고 광택나는 시대의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노동의 대가를 착취하는 독점자본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계급제하의 양반들이 착취했죠, 지금은 독점자본입니다. 자본주의가 과연 자유로운 사회를 열어줄까요? 이제는 사회주의입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문득 16년전 길위에서 외치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외치고 있나. 그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냈습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렸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공기업에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 때문에 퇴근후 7시반부터 9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를 따뜻한 가정이나 친구들과의 한잔 술이 있는 포장마차가 아닌 무심한 시청앞 지하도로 내몬 시대의 당위는 무엇일까요? 그가 등에 인 십자가는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저는 이번 대선에 사회주의 후보를 냈다는것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우리사회 공적영역의 논의 스팩트럼을 넓게 해줄겁니다. 향후 세계 단일자본시장의 폐해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인 대안을 보다 넓고 힘있게 고민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건강성을 제고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시민들의 반응이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멋쩍게 웃음을 보였습니다. 순간 희게 부르튼 그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80년대식 투쟁방식을 싫어하는 50대는 오히려 사회당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것 같아요. 제가 소리를 지르는 그 자체를 말이죠..."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30-40대는 반응이 옵니다.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제는 한분이 명함을 건네더군요. 한번 모이자고 했습니다." 더 이상 그의 시간을 빼앗을 수 없어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지하도를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순간 뉴스데스크 오프닝 시그널 음악이 지하도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9시였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금새 파묻혔습니다. 어떻게 감상해야할지 모를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효자 되십시요.' 불쑥 눈앞에 영화배우 송강호씨가 다가섰습니다. 지하도 벽면을 메운 lotto 복권의 광고판이었습니다. 그 속에 그가 웃고 있었습니다. 복권 당첨금 가지고 부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그 돈으로 부모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라는 광고 문구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우리시대의 지하도를 겨우 걸어나왔습니다. 9시10분. 덕수궁 마당 세실극장에는 정태춘씨의 콘서트가 한창이었습니다. 이곳에 들른 이유는 콘서트가 아니라 아름다운 재단에 근무하는 탁현민 간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탁 간사 역시 시대의 십자가를 메고 가는 사람입니다. 심성이 아름다운 그는 지금 '아름다운 재단'의 살림을 맡고 있습니다. 그와 공익재단의 발전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천인야화'의 인터뷰 주인공으로 그를 한번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그리 오래 못갔습니다. 정태춘, 박은옥씨의 노래소리에 이끌여 나도몰래 도둑청중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녁해는 기울고 뜰엔 빨간 분꽃이 피고 들녘나간 사람들 노을지고 돌아올시간...                                                                    (수진이의 강) 오늘 만난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내일은 오늘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