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보름만이다. 쓰고 싶은 말도 해야할 말도 많았다. 하지만 이 말을 하지 않고서는 어느 말도 그저 세월 좋은 풍월에 불과하다. 그게 뭐냐면, 바로 '국군의 이라크 파병문제'다.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3월 18일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본 사이트도 그 시기,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일단 시간을 두고 다양한 입장과 고려사항을 점검하는 한편,  네티즌과 고발회원들의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오늘 현재시각까지 모두 123명이 투표했다. 그 결과 절반이 넘는 67명, 그러니까 54.5%가 한국군의 파병에 동의했다. 물론 전투병 보다는 비전투 지원병으로 제한하자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반면, 파병요청을 거부해야한다(39.8%)거나 금전적 지원방법으로 우회하자(2.4%)는 의견은 모두 42.2%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이 조사결과는 책임있는 기사작성을 위한 근거자료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본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자에게 회원들의 앙케이트 조사는 나름대로 생각의 발판으로 삼아볼 만한 최소한의 의미를 갖는다. 직관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비판적이라는 네티즌, 더구나 고발성 짙은 컨텐츠를 희구하는 고발회원들의 정향은 아무래도 이땅의 진보성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반 이상의 네티즌들이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파병이라는 형식을 통해 미국주도의 세계적 이해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되싶어볼 만한 대목이다. 공연히 여론조사 운운하며 비겁해지지 말자. 그렇다면 나는 파병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르겠다. 그게 지금까지 나의 결론이다. 다만 최종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논의과정이 보장되야하고, 그 결과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게 나의 바람이다. 여기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분은 솔직히 실망하셨을줄 안다. 저도 부끄럽다. 하지만 이 한마디를 하기 까지 지난 보름간 나는 열병아닌 열병에 시달렸다. 국회 앞에서, 도심 거리에서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았다. 고은 선생으로부터 시작해 신부, 목사님들, 그리고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의 얼굴도 보인다. '이분들 정도가 나섰으면 아직 확신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따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선택은 철저히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남의 피와 죽음을 매개로 우리의 평화를 논하지 말라'는 구호가 가슴을 찟는다. 알 자지라 티비에 나오는 부상당한 이라크 어린이들의 모습은 전쟁을 양산하는 패권적 자본주의 미국에 진한 회의를 품게 만든다. 비겁한자여 동참하라는 따가운 목소리도 들린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미국의 대북한 강격책에 무슨 근거로 반대하냐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티비 화면은 다시 해병대 복장을 한 일군의 노인들을 비춘다. 노병이지만 지금이라도 그곳에서 총을 잡겠다는 다짐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런가하면, 미국의 전쟁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 파병이 필요하다는 제도권 정치인들의 주장도 귓전을 때린다. 파병을 지지하는 것이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다소 어색한 변명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사실 지금 한미 공조는 사실상 역할을 상실한 상태다. 미국 관리들을 만나고 오는 대학교수들 마다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 한미 신뢰관계가 깨지면 남-북-미 3국간의 중재자로서 레버리지(지랫대)를 행사할 수 없게된다는 우려도 높다. 미국은 남과 북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남측이 어떻게 중재를 할 수 있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이쪽의 의견도 내게 설득력이 있다. 어려운 문제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지난 몇 년을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곤란한 선택을 강요받아온 적이 있었을까. 누구 보다 먼저 결의하고 그들 보다 반발짝 먼저 걷기 위해 애써왔다. 물론 잘못된 판단과 결행에 대한 책임은 순전히 나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모르겠다'는게 지금까지 나의 결론이다. 회색빛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더 이상 비겁하기 싫어 이렇게 나의 '무소신'을 이곳에 고백해 두기로 한다. 어떠한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안으면서 마치 대단한 자기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선을 떠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고, 혹시 그들중 한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나 자신을 사전에 고발하기 위함이다. 요즘 둘로 나뉜 국민여론을 주시하다 보면, 문득 찬탁, 반탁으로 갈렸던 해방직후 여론공간이 연상된다. 찬탁을 주장했던 사람도 반탁을 했던 사람도 모두 대한민국의 진정한 해방을 원했을 것이다. 다만 세계사적 인식과 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 뿐이다. 해방 이후의 사람들 역시 찬탁이냐 반탁이냐 사이에서 숱한 고민의 날을 보냈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며 찬탁과 반탁의 논리가 정치적 이슈로 경화되면서 권력투쟁 양상으로 변질됐지만 나는 또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어떤 입장 속에 살아갔을 것인가. 혼란스럽다. 파병을 둘러싸고 찬성, 반대로 나뉜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양측 입장이 모두 선하다. 한국의 국가이익과 안보에 어느 선택이 우선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평화를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실국제 정치의 틀 속에서 이성적 판단자로서 한국의 외교적 입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누가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지금의 혼란스러운 선택의 상황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기초하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과거 선거당시에 지지했으면 또 어떤가. 당시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그렇다면 노무현이 신이라서 지지했는가. 사안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이왕이면 내가 지지하는 정책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라고 기대해서 지지한 것 아닌가. 이번 상황은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하는 점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론이 얼마나 모아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어쩌면 이번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는 해방 이후 국민들 심성 안에 둘로 갈리워져있던 이념의 균열을 봉합시켜 줄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런 점에서 파병을 지지하는 의원들에 대한 '낙선 운동'을 거론한 시민단체의 입장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해당 의원들의 양심의 자유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 정유사나 군수산업체의 주주이거나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로비공작을 받았다면 모를 일이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세계관에 입각해 판단한 문제를 정치인들에게 가장 첨예한 낙선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아무래도 보기가 좋지 않다. 40을 바라 보는 나이에, 그것도 기자질을 하고 있는 놈이 특정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끄럽다. 전쟁을 반대한다고는 하지만 나라가 처한 절체절명의 운명에 갇혀 더 이상 한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참 딱하다. 하지만 파병과 관련해 이번 만은 '모르겠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인정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파병을 지지하건 반대하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주: 이 고백은 글쓴 시점에서의 결론이며 새로운 정보와 신념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최종 결론을 저의 고백이 전제하는 조건이 비겁한 것이라고 지적하신다면,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내린 판단의 조건들과 신념의 양상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지요. 그리하여 더 좋은 선택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파병 문제,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