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선 전두환씨를 보았다. 그 옆으로 최규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함께 앉아 있었다. 방송 사회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해 '무려 5명에 달하는 전직 대통령을 가진 우리도 이제는 민주적 헌정국가로서의 전통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흥분했다. 과연 그럴까? 5명이나 되는 전직 대통령이 단상위에 올라왔다는 것은 두가지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 정권 상호간에 그동안 평화적 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이고, 어느 누구 장기집권 사람은 없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민주적 헌정질서'의 기본이 갖추어졌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싶은 사람을 막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전두환씨를 만난건 재작년 봄. 그의 집 앞에서였다. 보도국 외교부에서 보도제작국 시사매거진 2580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소위 원칙과 상식회복을 지향하는 심층고발 아이템 제작에 열중했다. 전두환씨를 만나러 간건 그가 받은 수십종의 국가훈장을 반납할 의사가 없는지 묻지 위해서였다. '원칙적으로' 그가 받은 대부분의 훈장은 불법이다.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자기손으로 대한민국의 국부에게 수여하게 돼있는 건국훈장까지 목에 걸었다. 김구와 이승만 등 대한민국 국부들에게만 주어지는 훈장이 바로 건국훈장이다. 훈장은 국가 명예를 상징하는 표상이기에 반명예적 죄를 지어 형이 확정되면 예외없이 훈장을 국가에 반환해야하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는 훈장을 되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고 전두환씨는 그런 행자부와 국민을 비웃듯 아직도 그 많은 훈장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씨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일정은 보안사항이란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그에게 몇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의 집 앞에서 진을 쳤다. 이른바 '하리코미'가 시작된 것이다. 반나절 만에 그는 검은 승용차 군단의 호위를 받으며 연희동 집에 도착했다. '훈장을 돌려줄 의사가 없냐고' 그 한마디를 위해 반나절을 기다렸건만 감색 양복의 경호원들은 완강했다. 전두환씨 50보 앞에서 접근이 차단됐다. 그들은 나의 목과 팔이 꺽었다. 대문으로 들어가는 전두환씨에게 들리도록 외쳤다. '훈자...앙....퀙...훈..장...' 집앞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전두환씨는 경호원들을 거뒀다. 그리고 만신창이가된 나를 자신의 앞으로 모시라고 했다. '대인'다운 풍모였다. 나는 전두환씨 10보 앞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장예모의 무협 영화 '영웅'에서 나오는 진시황 처럼 전두환은 거기에 그렇게 당당하게 서있었다. 나는 그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순간 긴장감이 엄습했다. 80년대 대학시절 전두환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나이가 먹었지만 그는 한때 자신의 이름앞에 '살인마'라는 수식으로 불리던 사람아니었던가. 준비는 했지만 막상 입이 열리지 않았다. 1초, 2초 순간이 영원처럼 스껴졌다. 부쩍 희여진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예의 그 '인자한' 미소.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는 과거 정부에서 받으신 훈장을 반환할 의사가 없으십니까. 훈장반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허허... 그런 이야기라면 절차를 거쳐서 비서관을 거쳐야지. 기자가 예의가 있어야지 말이야. 참 요즘 기자들...흐흠...' 오늘도 나는 별 수 없이 '예의 없는' 기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추상 같은 그의 말에서 나는 깨달았다. 전두환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는 아직도 대통령이었다. 그의 집안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국민의 훈장을 빼앗아 오지 않는 이상 그는 아직도 대통령인 것이다. 왜 나는 훈장에 집착할까. 그것은 훈장이 반영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맥락 때문이다. 훈장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명예의 총화다. 국가가 윤리자산의 분배자로서 일반대중의 윤리를 지도창달 하기 위해 나눠주는 것이 훈장이다. 때문에 훈장에는 국가와 수상 당사자간의 관계가 녹아들어가 있다. 대통령 재임기간중 챙긴 훈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이상, 전두환은 과거 불온한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본다. 나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지금 연희동으로 가보라. 그의 집을 둘러싼 인근에는 주민이 살지 않는다. 시경에서 그의 경호를 위해 구입했다.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다. 전두환은 국기를 흔든 범법자고 무고한 국민생명을 살해한 살인자다. 정치적으로 사면, 복권이 되었는지는 둘째 문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취소됐고 최소한의 경호기간도 만료됐다. 하지만 아직도 연희동은 작은 청와대다. 며칠전 검찰이 2천억원이 넘는 전두환씨의 추징금을 받기 위해 재산명시 신청을 통해, 전씨의 재산을  확인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10년이 다되도록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씨의 추징금을 꼭 받아내겠다며 수선을 떨었지만 실제 성과는 미비했다. 10% 조금 넘는 3백억원 정도를 걷는데 그쳤다. 이제 재산확인을 한다면 역설적으로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아직 재산확인 과정 조차 종료하지 않은 채 돈을 받아내겠다고 립서비스를 해온 것 아닌가. 물론 과거에는 민사소송법에 해당 조항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어딘지 군색해보인다. 돈을 받아내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고발을 감행하면서 나는 항상 묻는다. 나는 지금 정의로운가. 지금 나의 관점은 옳은 것인가. 나의 문제제기는 보편타당한 것인가. 그래서 다시 묻는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종료됐는가. 우린 전두환을 용서했는가. 하지만 아니다. 전두환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논하기 전에 그에 대한 부당한 명예와 지원을 원점으로 돌려야한다. 그래야 거기서부터, 아니 그 과정에서 부터 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개입할 여력이 생긴다. 정당한 평가 없이 함부러 얹는 모든 평가는 독이다.     지난주 일요일. 에스비에의 세븐데이즈라는 시사,교양,뉴스,예능,정보,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또 다시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대통령의 얼굴'이라는 꼭지에서 역대 대통령을 조명하는 순서가 있었다. 사회자는 전두환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고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비판적인 코멘트는 자제했다. 그리고 노태우씨의 순서로 넘어가기 전, 사회자는 나의 귀를 의심해야할 만한 멘트를 토해내고 있었다. '역사가 전두환씨의 공적을 평가해줄것'이라고...   같은 하늘아래 여러개의 역사가 있다. 어쩌면 사람 마음마다에 하나씩 고유한 역사가 흐른다. 혼백의 합이 역사라고 신채호 선생이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남들이 어떤 역사관을 갖든 개인적 자유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전두환은 아직 역사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엄연한 현실이다. 그를 역사적 사료로 재가공하기 위한 정상화(normalization)의 과정을 기대한다. 용서는 그 다음의 문제다. 용서는 역사책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