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가 전국으로 타전되기 직전, 나는 극장에 있었다. 첸 카이커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시사하기 하기 위해였다. 영화 제목은 <투게더>... 작품수준은 '오케이'였다. 감독은 성공 보다는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내게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씬 이 압권이었는데 나는 여기서 감독의 소원대로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서구화와 자본화. 첸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기자회견에서 아마 중국의 이같은 변화추세에 경종을 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의 영화는 공평하다. 일찌기 <패왕별희>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서구의 영화기술을 들여왔지만 철저하게 그는 중국적인 보편성을 스크린에 구현해내왔다. 이번 영화 역시 부분적로 과도한 중국식 영상문법이 묻어 나온다. 그러나 나는 그가 영화에 있어 하나된 기준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었다. 서구적 영화의 틀 속에 중국된 것들을 온전히 담아주었다. 그에 있어 이중잣대는 없었다. 왠 영화이야기냐고? 혹자는 팔자 좋은 기자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고발기자도 영화는 본다. 하지만 사연이 있었다. 첸 카이커 감독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중국 영화의 현재를 취재해 볼 요량으로 약속을 잡아놓은 것이다. 영화시사 참여는 그를 만나기 위한 기자놈의 최소한의 예의였다. 극장을 나와보니 대구에서 큰 참사가 발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순간 망연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후진국형 사고가 날 수 있는지. 죽어간 대구의 시민들이 한없이 가슴 저렸다. 당연히 이날 첸 카이커와의 저녁 식사는 별 재미 없었다. 분노가 수그러들면서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관사와 역무원들 사이의 소통차단, 위기관리 부재, 내연/내화재 사용 무시, 환기 문제, 역사설계 문제, 비상등/대피조명 문제 등 이제보니 대형사고가 날 만한 요소들이 총집합 되어 있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실제 지적하기도 했고 바꿔보려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넘을 수 없는 우리사회의 두터운 비이성의 장벽이 있었다. '겪어보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아니 겪어나서도 곧 잊어버리는 비이성의 장벽.' 나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넘지못한 원칙을 무시하는 현실이었다. 나와 남에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이중잣대' 말이다. 외국으로 수출하는 전동차 객차는 모두 불연/내장재로 설계 시공해 판매하면서 왜 우리는 그 따위 전동차를 태웠냐 말이다. 왜 대구시민들은 발화 1분도 안돼 사방이 매퀘해지는 그 따위 전동차 안에 갇혀 죽어야 했냐는 말이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도 이중잣대가 있었다. 우리네는 헐벗고(?) 배를 주리다가도 손님네가 오면 못 보던 반찬이 올라오는 것이다. 찾아볼 수 없던  인심이 밥상에 그득하였다. 이중잣대에 대한 유년시절의 피해의식은 이후 성장해서도 계속됐다. 아니 더 심각했다. 이중잣대의 만연은 단지 가정과 사회를 넘어 국가적으로 통용되는 새로운 잣대임도 알게 되었다. 주인집에는 최상품을 상납하고 스스로는 최하품에 만족하는 노예근성, 스스로 낙인찍힌 2등 신민 - 그것은 이제는 극복해야할 망국적 이중잣대의 결과였다. 해외로 나가는 수출차와 내수용 차량의 차이는 과거 하늘과 땅이었다. 차체 강판의 종류 부터 달랐으니까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 차이 만큼이 내국민이 겪어야하는 피해의식의 폭이다. 가전제품의 안전기준도 다르다. 해당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안전사고가 나도 어쩔수 없다고? 그런 물건을 사주지 않는 정부와 소비자의 책임이라고?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모두를 미필적으로 죽이고 있는 것이다. 안전불감증과 인권무시, 생산성과 효율 중시라는 가치의 일방적 적용 -  이중적용이 만연하는 사이 우리 모두가 미필적 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잘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자본의 논리를 수입하는데는 세계 1위인 국가. 덕분에 IMF의 모범생이 됐다니 반갑다. 그럼 이제 다른 쪽으로도 눈을 돌려주기 바란다. 잘난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원칙을 우리들에게도 적용시켜달라. 우리사회 낙후된 안전실태와 인권수준도 외국의 그것들로 벤치마킹해달라. 88 올림픽도 했고 월드컵도 했다. 축구는 4강 먹었고 GNP도 손발가락 합친 등수에 든다. 독재도 졸업했고 민주화도 상당히 진척했다. 이제 우리밥상에도 손님상에 올린 조기구이와 달걀 후라이를 올려다오. 우린 더 이상 이중잣대가 싫다. 열등감의 발로라고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기억하라. 언젠가 밥상 차는 수가 생긴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