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종군기자 신청받습니다.' 보도국 게시판에 낯선 공고가 나붙었다. '종군기자라!' 직업이 기자인 사람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고 한때 기자를 꿈꿔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꿈꿔보았음직한 기회 아닌가. 미군에 종군해 전황브리핑을 아침 저녁으로 듣고 시시각각 전쟁진행 소식을 본국으로 송출하는 그야말로 전장의 종군기자를 뽑는다는 것이다.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우선, 전세계 양심세력의 반대속에 그들만의 전쟁을 고집하고 있는 미군쪽을 '종군'한다는 점이 찝찝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그건 어느쪽이어도 좋았다. 그곳이 전장이라면 말이다. 이번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세계사의 '주역'으로 군림해온 절대강국 미국이 벌이는 '마지막' 전쟁이다. 왜 마지막 전쟁이냐구? 그건 이 전쟁의 시발과 그 결과가 증언할 것이다. 어찌됐든 이번 전쟁을 종군한다는 것은 광폭한 절대권력의 음흉한 얼굴과 또 그 앞에서 스러져갈 제3세계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 여겨진다.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를 이미 넘어선 자본의 논리, 그 어느 것도 인간의 존엄을 침해할 수 없다는 모든 전쟁의 교훈을 현장에서 퍼오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 먼곳의 전쟁이 남의 것이 아니며 미국과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순간 바로 그곳이 미국의 폭탄이 떨어질 자리임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종군의 이유였다. 마음의 각오가 섰지만 선듯 내키지가 않았다. 가족 때문이었다.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본론은 말도 못 꺼내고 말았다. 보도국 로비에서 퇴근길 이진숙 선배를 만났다. 이진숙 선배는 지난 91년 걸프전때도 아시아 국가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바그다드 취재를 벌였던 국제문제 전문기자다. 후세인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이 선배를 흡모했다나 뭐래나 아무튼 그런 얘기까지도 들렸었지 않는가. 이진숙 선배에게 못난 후배의 고민을 말씀드렸다. 힘들게 이룬 가정에 평화를 깨기 저어하는 후배에게 선배는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도 가정이 최우선이라며 후배를 위로해주었다. 가정이 최우선이라고 하는 이선배는 얼마전 늦둥이를 본 아이 엄마.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선배의 뒷모습에 물었다. "이 선배, 이번에도 가시나요?" 가정이 최우선이라던 아이 엄마는 멋쩍게 내게 말했다. "아.. 가지. 가. 아마 바그다드로 가게 될꺼야..." 순간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움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후배가 고작 공격 미군의 후방에서 종군 여부에 흔들리고 있는 사이, 선배는 폭탄이 떨어질 바로 그 땅 '바그다드' 행을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늦은 퇴근길 집 앞에서 소주를 한잔을 들이켰다. 난 어떤 기자인가, 기자가 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운명의 잔을 다잡았다. 얼큰한 몸이 되어 집안에 찾아들었을 때 집안은 조용하였다. 사내 아이 둘이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고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거실 쇼파 위에 가지런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소주 한잔에 결심을 곧추세운 낯선 사내는, 잠든 아이들을 보며 저 먼 사막의 전투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빠이기 보다 기자이기를 먼저 택한 이 남자는 달빛 고요히 내려앉은 두 아이의 볼타구니에서 피덩이보다 더 뭉클한 사랑을 느꼈다. 그 순간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할 종군기자의 운명이 서러워 소주맛 지릿한 눈물이 왈칵 솟아났다. 몇 년을 변변히 놀아주지도 못한 애비에게 그곳에 누워있던 아이들의 모습은 실로 놀라우리 만큼 아름답고 천진스런 광경이었다. 인생이란 떠날 날을 아는 자만이 존재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인생은 비극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얼마 동안이었을까. 낯선 사내에서 행복한 아빠의 모습으로 나는 아이들 속에 섞여 잠들었다.   아침 식사를 내놓던 아내는 어제 밤 왜 울었냐고 물었다. 아내는 짐짓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이라크 얘기를 꺼냈다. 왜 종군해야하는지 이유를 말했다. 반응은 여의치 않았다. 당신은 내가 기자인 사실을 알고 결혼했으니 이미 암묵적으로 나의 종군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되지도 않는 논리까지 동원했다. 나의 각오를 확인한 아내는 그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선배 접니다. 이상홉니다. 저..." "네. 얘기하세요." "저.. 어제 선배 만나 뵙고 밤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후배로써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선배 저.. 종군기자 신청하겠습니다." "이상호씨 생각보다 좀 세심한 면이 있군. 호호." "아니 그게 아니라. 선배께서..." "이상호씨. 여하튼 힘들게 결정했는데 이걸 어쩌지?" "무슨 말씀?" "종군기자 신청이 마감됐어. 사실 어제 까지 였거든" 통사정을 해봤지만 이미 명단을 미 국방성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불철저한 고민과 게으름으로 종군기자 기회를 놓친 나는 결국 하루밤의 종군기자로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기자에게는 모든 곳이 전장터라는 사실을... 고발기자에게 PEACE TIME은 없다. 추신: 이글을 쓰고 나서 사람 방패가 되기 위해 이라크로 출발한다는 시민운동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오마이 뉴스에서 읽었다. 모든 부끄러움 속에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