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아래는 11월 2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X파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재판정에서 발언한 최후진술 내용입니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사실관계를 다투는 최종 공판이었던 만큼 이날 법정은 뜨거웠습니다. 검찰은 원심대로 징역 1년을 구형했고, 저희는 무죄를 주장했지요. 늦었지만 지난 8월, 1심 무죄선고 이후 보내주신 '고발가족'들의 따뜻한 격려의 손길들에 대해 가슴 깊이 감사를 보냅니다. 열심히 재판받겠습니다. 선고 공판은 11월 23일입니다. 행복한 가을, 넉넉한 추억 남기시기 바랍니다.) 지난 8월 11일, 저는 본 서울지법 법정에서 너무도 감동스런 경험을 했습니다. 재판부의 판결 때문이었습니다. 헌법 정신과 건강한 상식에 입각한 재판부의 명철한 판결은 단연코 세상 어느 시, 수필 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진실을 담기위해 생긴 말과 글이 도리어 그 자체의 권위 때문에 진실을 담지 못하고, 심지어 진실을 가리고 있는 전도된 세상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짧지 않은 근, 현대사를 거치면서 수단이 목적을 뒤집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름답습니다. 1심 재판부의 판결로 앞뒤가 뒤바뀐 본 재판이 종결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강도는 잡지 않은 채, 강도를 신고한 행인만을 단죄하는 검찰의 시대적 해프닝이 2심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작금의 일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 기일, 검찰의 논고를 들으며 저는 기소를 책임지고 있는 검찰의 직무상 고초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행위가 담고 있는 의미보다는 드러난 그 자체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입장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무엇인가 1%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감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시대적 가치는 모두 변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느껴질지라도 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본질적 가치는 시대에 따라 오히려 강화됐습니다. 바로 인간적 가치가 그랬습니다. 인간적인 가치, 휴머니즘과 인간애는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것은 변하지 않고 진실은 감동적며 아름답습니다. 눈앞의 사건을 기계적으로 의율하려는 검찰의 모습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지키는 숙련된 엔지니어를 떠올립니다. 확실한 것은 헌법 수호와 국민 대중의 안녕을 추구하는 공복의 고뇌를 느끼기기에, 오늘 검사님의 행태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안을 번잡하게 할 뜻은 없으나, 굳이 몇말씀만 보태고자 합니다. 검찰은 우선, x파일의 내용이 알권리의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의 논리를 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삼성과 삼성가의 신문이 펼쳐온 주장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1심 재판부가 인정했듯, 저희가 보도한 x파일의 내용은, ‘민주헌정 질서를 심대히 저해한 것으로, 실제 그렇게 이뤄졌을 것으로 충분히 의심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또한 '충분히 그랬을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이란 단순한 사인간의 이익을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민주헌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매표, 매수 혐의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 필요가 없다면 그렇다면 국민은 주권자로서, 댜체 무엇을 알아야한다는 말입니까.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x파일 내용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던 이유를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찰은 x파일 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사생활의 본질적 부분’과 맞닿아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주장은 어디까지나 주장일 뿐입니다.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검찰의 도박에 맞서 무언가 걸기에는 그 부담이 너무 큽니다. 국민 대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권과 국민적 명예 나아가 생존권을 걸어야 할 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이건희 일가의 심기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에게 주권적 이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계신 검사께서는 자신의 그같은 주장을 위해, 무엇을 거셨는지요? 민주헌정 질서의 수호는 수많은 피를 쏟아붇고 확보한 절대적 명젭니다. 개인과 집단의 법 이론을 실험하기 위해 쉽사리 던질 수 있는 백불짜리 도박 칩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보도한 내용은 x파일 내용중 충분히 공적 영역의 것으로써, 헌정질서를 금권으로 교란하는 ‘쿠데타적 모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같은 모의를 듣고도 무시하는 것이 분명 책임있는 언론의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세번째로 검찰은 도청의 불법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검찰은 제가 도청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운영씨 등에 대한 수사를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도리어 저희는 국가기관을 통해 광범위하게 자행되온 도청 실태를 정면 고발한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저희 보도 이후 국민들은 도청의 공포에서 한층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검찰이 도청의 반사회성에 진정 관심이 있다면, 그러한 도청 실태를 고발한 mbc에게 감사장이라도 한 장 보내주시는게 도리가 아닐까요. 도청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온 저희였던 만큼, 녹음 테잎을 입수하고 제일 먼저 고민한 것이 테잎의 내용이었습니다. 테잎이 만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적 대화나 단순한 애정행각 따위나 담고 있었다면, 그 즉시 파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도청의 폐해를 고발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도청 테잎을 공개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판단을 저희는 부여받았고, 책임있는 언론으로서 헌법과 국민적 상식에 기초해, 또한 법원이 판단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신중하게 판단했던 보도였음을 다시 한번 명백히 밝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제보자에게 정당한 사례를 지급한 것을 다시 한번 문제 삼았습니다. 묻습니다. 검찰은 참고인에게 교통비는 물론 그들이 검찰 조사로 인해 입은 기회비용의 상실분을 보상해주고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검찰의 시각에서 보면, '정당한 제보자에게 감사의 표시로 사례를 지급한 것'이 어쩌면 범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검찰의 수사관행부터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희 언론의 취재관행도 돌아보겠습니다. 뉴스는 제보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뉴스에 나오는 단 한 가지 내용도 기자에 앞서서, 누군가 먼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술이 수사의 원천인 것 처럼, 제보는 보도의 원천입니다. 책임있는 언론사는 저마다 투명하게 뉴스 제보와 협조에 대해 사례를 지급하도록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당시 박인회씨는 심장개복 수술을 마친 환자였습니다. 그런 박인회씨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주일 가까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x파일의 보도를 적극 도왔습니다. 그 알량한 사례가 천불, 단돈 백만원에도 못미치는 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저는 공익제보자 박인회씨에 대해 깊은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가 한때 삼성과 통하며 돈을 생각했는지 몰라도, 제보는 그 일이 있고 6년이 지난 시점에 순수하게 공익만을 위해 이뤄진 것입니다. 만일 취재과정에서 제보자의 부정한 의도가 느껴졌다면 저는 단연코 취재를 접었을 것입니다. 검찰도 이젠 청부수사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목숨을 걸고 공익을 추구하려한 한 기자에게, 제보의 대가성 운운하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역사 속 진실은 단 한번도 스스로 소리를 낸 적이 없습니다. 진실의 말 값은 늘 비쌌습니다. 궁형을 당하거나 참형을 당한 사나이들도 많았고, 사랑이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른 청춘도 했습니다. 힘들게 퍼져 나온 1심 재판부의 올곧은 판결이 다시 법원 전체를 휘감는 진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고생하신 검사님, 그리고 변호사님 모두에게 이 가을의 평안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