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오늘 오후 4시반부터 6시반까지 서울중앙지법 423호 법정에서 X파일 공판이 있었습니다. 불과 두세명의 기자들만이 방청석을 지킨 가운데 진행된 재판이었지만, 식어가는 X파일의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했습니다. 오늘 재판에서는 1) 녹음 테잎 검증과 2) 위헌법률 심판재청을 각각 신청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 이전에 두 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다음 공판은 5월 17일 입니다. 아래는 오늘 인정신문에 이어 재판부를 상대로 밝힌 저의 '모두 발언'입니다.) 현대차 그룹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사가 길어지면 나올게 더 많다’는 검찰의 한마디에, 해외로 나갔던 그룹 총수가 급거 귀국했습니다. 출국금지가 내려진 그룹 총수의 아들도, 이제나 저제나 검찰 소환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검찰이 오랜만에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현대를 현대로만 볼 수가 없습니다. 자꾸만 삼성이 눈에 어른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수를 치는 손에 자꾸 힘이 빠집니다. 현대를 수사하는 주체가, 천문학적 정치자금을 동원해 국정을 농간한 삼성 일가에 대해 압수수색은 물론이고 당사자 소환 조차 하지 않았던, 바로 그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X파일 사건을 보도한 죄로 저는 지금 이 법정에 서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비밀을 보도했다고 하지만, 현대차 사건 역시 비밀에서 출발했습니다. 비밀을 알린 제보자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비밀을 알린 제보자는 처벌대신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 역시, 당사자들은 싫어할 내용을 테잎이 아닌 머리에 녹음해 두었다가 검찰에 틀어준 사람 아닙니까. 쑥쭉날쑥한 원칙에 국민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보도 이후, 저는 여기 계신 김병헌 검사님께서 주도하셨던 X파일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진술했습니다. 그것은 검찰청에 출두하면서 밝혔던 데로, ‘검찰이 삼성의 로비 몸통을 수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민주헌정 수호와 국민의 알권리를 중시해 보도한 기자가, 왜 죄인처럼 검찰 조사를 받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검찰은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해외에 머물렀던 총수 일가 등에게 모조리 면죄부를 주고 말았습니다. 대신 검찰 수사에 협조한 저만 당랑 기소한 것입니다. 저에 대한 기소를 두고 천정배 법무장관께서는 이렇게 언론에 밝히셨습니다. 즉, “언론인이 적극 가담했다면 모르지만, 이미 남들이한 행위를 보도했다면, 형법적으로 비난할 수 없고 처벌하지 말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장관은 그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지금이라도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제게 제기한 공소를 철회하여주실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재판부에 대해서는, 사법정의 수호의 보루로서 국민의 거는 기대가 남다릅니다. 부디 검찰이 제출한 반쪽짜리 수사결과에 재판을 한정하지 마시고, 본 사건 전체를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정-경-언-관 상호 유착을 뿌리뽑기 위해 이번 보도가 고발했던, 삼성 일가의 비리 의혹이 제대로 수사됐는지 헤아려 짚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사법정의를 세우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여기 계신 김병헌 검사께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오래된 사건이고 또 내부 협조자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과연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98년부터 2년 동안 법조 출입기자를 하며 제가 지켜본 검찰은, 수사 의지 여하에 따라 충분히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최강의 수사력을 가진 최고의 정예 집단입니다. 때문에 저는 감히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합니다.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가 미진한 가운데, 저에 대한 일방적인 재판진행은 자칫 재판부에 대한 신뢰 마저 깍아내릴까 우려됩니다. 제게 제기된 공소와 또한 그 간의 검찰수사에 대해 이처럼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 법령이 엄존하는 한 향후 재판 또한 국민된 도리로써 성실히 임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X파일 보도와 관련해서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언론의 공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저는 물론 MBC 보도부문이 머리를 맞대고 오랜시간 고뇌를 거듭해왔으며, 일부 언론의 선발 보도에 따라 더 이상 발표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끝에 이뤄진 것임을 재판 과정을 통해 조목조목 설명드릴 것입니다.   다만 재판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본 재판의 쟁점중 하나가 ‘불법성의 조각성’ 여부에 있을 것인 만큼, 그 명백한 관건이 될 녹음 테잎을 재판부가 꼭 검증해주시길 바랍니다. 마땅히 국민에게 들려드려야 할 테잎을 저는 남부지원의 결정을 존중하느라 방송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검찰 조차 테잎 내용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심지어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홍석현씨에게 조차, 들려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녹음 테잎은 일부가 문자로 풀려나와 보도된 바는 있으나, 육성과 문자는 실로 천양지찹니다. 그 테잎이야 말로 보도를 위한 저의 ‘긴박성’과 ‘정당성’을 입증해줄 유일한 증거입니다.   녹음 테잎 속의 음성은 정-관-재계는 물론 언론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금품이 살포한 사실, 또한 천문학적 규모의 금품 살포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이뤄진 사실, 또한 범행이 지속적이며 일상적으로 공적 업무 조직을 통해 암암리에 이뤄진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목소리에서 돈으로 국정을 농간한데 대한 일말의 양심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문자로는 절대 가둬질 수 없는, 그들의 태연한 범행모의 현장을 직접 청취하고 저를 비롯해, 심지어 보도에 회의적이었던 MBC 일부 간부들 마저 적극 보도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다시한번, 보도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또한 국민들이 꼭 들어야할 X파일 녹음테잎을 재판부가 검증해 주실 것을 간곡히 신청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재판부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될 것임을 아울러 밝혀드립니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고 합니다. 지난 시간 X파일 사건으로 우리사회는 한차례 홍역을 겪었습니다. 이제 꽃을 피울 시깁니다. 오랜 정경유착의 관행을 깰 수 있는, 상식과 정의의 회복을 기대하며 지금 국민들이 이곳 재판정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꽃을 피워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