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변변한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어도 혹시나 하며 홈피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늘은 옛 글 하나 추려봤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9년 7월에 쓴 글입니다. 검찰을 출입하며 어찌할 수 없이 답답한 마음을 詩文 형식으로 기록해둔 것인데요. 지금이나 6년전이나 검찰은 별반 바뀐 구석이 없군요. 그래도.. 힘내세요! 함께 하면 바꿀 수 있답니다!) 정말 무더운 하루였습니다. 40도에 육박하는 수은주가 터져버릴 것 같은 날씨였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남산 정상에 만년설을 볼 수 있다면 오르지 못한다 행복할 수 있을텐데. 타들어 갈 듯한 한증막 속에 녹지 않는 얼음조각이 있다면 기다림을 재는 모래시계가 없다해도 한층 견딜만 할겠지요. 연일 찌는 듯한 날씨보다 한층 더 불쾌지수를 자극하는 기사들이 방송과 신문에 넘쳐납니다. 덥다고 한증막처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곳이 우리네 일상이고 보면, 듣기만 해도 가슴 시원한 그런 예쁜 뉴스 하나 띄워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 중요 피의자인 신창원의 동거녀를 그것도 경찰관이 어떻게 겁탈할 수 있었을까 아침부터 께름직한 불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기 시작 합 니 다 "동거남 신창원을 수사하지 않겠다." 는 한마디에 말없이 옷을 벗었을 그녀. 경찰관의 가슴에 안겨 도망가고 있을 애인 생각에 희미한 미소 하나 흘렸을 그녀가 어린 누이처럼 처연하게만 느껴집니다. 신창원이 남겼다는 일기장 나머지 부분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 곳엔 또 무슨 얘기가 있을까. 폭로를 위해 교도소 담을 넘었다는 신창원의 절규에 궁금증만 더해갑니다. 신창원의 일기를 공개하라는 여론을 경찰은 듣기는 하는지 아무 말이 없습니다. 파업중인 mbc 라디오뉴스는 경찰청 수사국장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흘려보냅니다. 들어봐도 한마디 사과도 없네요. 대신 시민 신고로 잡은 탈주범을 검거한 무용담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우리 사회의 가치 전도가 혼란스러운 날씨입니다. 오후가 되자 검찰은, 경기은행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 확대를 요구하는 민심을 또 다시 짓밟았습니다. 검찰이 내놓은 한마디, "우리는 주문생산을 하지 않는다." 국민은 말이죠. 검찰 수사 하나 해달라고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랍니다. 비싼 돈을 내고 그들을 고용한 '대주주'이자 '오너'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이따금씩 일어나면 작은 해프닝이 되고, 통큰 사람들에겐 웃음거리도 됩니다. 하지만 더위 만큼 매양 당하는 일이라 희망도 지쳐 축 늘어져버렸습니다. 얼마 전 강정훈 조달청장이 입찰 내용을 빼주고 돈을 받았다가 대검찰청에 구속됐습니다. 검찰은 그러나, 절대 밖으로 셀 수 없다던 입찰비밀이 어떤 경로로 강씨에게 전달됐는지, 그 과정에 추가 불법행위는 없었는지 끝내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대검 수사 책임자는 말하더군요. "수사를 확대하면 조달청 업무에 지장이 우려된다." 이런 조달청 업무라면 제발 지장이 있기를 바라는게 국민들의 마음일 겁니다.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저들이 무참히 뿌리친게 어디 한두번입니까. 국세청을 앞세운 대선자금 모금은, 기업의 약점을 기록한 세무 조사자료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금 과정에서 실제로 내부자료가 위력을 발휘했을텐데도 수사는 국세청 담장 안으로 단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세무조사가 두려운 언론은 죄다 꿀먹은 벙어립니다. 국세청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제기해온 제게 국세청의 한 간부는 웃으며 말하더군요.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봤지만 어디 당신 주변엔 세금 먹일 반반한 사람 하나 없더라." 모두가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결국은 다 한통속이랍니다. 얼마전 끝난 농축협 수사를 아십니까. '농민의 영원한 벗' 농축협이 생긴 뒤 첫 번째 수사였습니다. 언론이 수사의 규모와 의미성에 현혹돼 방향을 잃고 있을때, 국민은 농축협의 부패를 방치한 금융감독원과 농림부의 감독 책임을 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막은 수사는 이번에도 두눈 만 멀뚱멀뚱. 그나마 구속됐던 사람들도 벌써 하나둘 풀려나고 있습니다. 무더위를 잊게 할 '예쁜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저는 오늘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땅을 사는 기자는 일상의 한증막 꼭꼭 닫힌 문을 오늘도 열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스스로 얼어붙어 녹지 않는 만년설이 되어드릴까요. 그도 아니면 무더위는 차라리 우리에게 '깨어있으라'는 것인가 봅니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니.." (99.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