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의 방북 계획과 날아간 특종>     - 북핵위기의 실체와 무책임한 언론을 보며.. 기자질을하고 있다는 이유로 종종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점잖은 자리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다짜고짜 'tv에서 처럼 뉴스를 해보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그렇다. 그런가하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강요받을 때도 낭패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그런 것들중에 하나다. '정말 전쟁이 일어나느냐' 또 '일어난다면 언제쯤 전쟁이 일어나느냐' 는 질문들이다.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였다. 사업을 하는 친구는 연일 반복되는 한반도 위기설에 아예 노이로제가 걸린 상태였다. 어제(5/6) 보도된 아래 기사는 친구에게 결정적인 충격을 줬던 모양이다. "함경북도 길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하터널 공사는 핵실험 준비로 판단된다" 뉴욕타임즈는 오늘자(5/6) 1면 머리기사로 이 같은 미국 정보당국의 평가를 보도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의 위성사진을 판독한 핵정보 전문가 3명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 이 신문은 미국이 이런 정보를 한국과 일본정부에 충분히 설명하면서 "북한의 핵실험에 뒤따를 정치적 결과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오늘 정보기관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에 미국이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명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내시우스'는 <평양의 폭탄>이란 제목의 기고를 통해 북한이 핵실험으로 방사능 물질이 유출돼 일본을 오염시키고, 도쿄 서울의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지고, 한국내 외국기업들이 철수를 고려할 거란 한 정보기관 책임자의 분석을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의 최신 보도를 인용한 특파원 기사다. 이 기사는 북핵 위기를 강조한 다른 어떤 기사보다 자못 충격적이다. 세계 유수의 언론사의 제호가 제공하는 신뢰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기사를 분석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게 된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모두 익명의 정보기관 책임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두 신문기사 모두 정보기관 책임자가 제기한 주장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는 정보기관 책임자의 근거 없는 '판단'까지 무슨 중요한 자료인양 들이대고 있다. 한마디로 함량 미달의 기사들인 것이다. 지금 동북아 상황은 썩 좋지 않은게 사실이다. 북한 핵을 통제하기 위한 집단보장체제인 6자 회담이 결렬된 이후 새로운 타협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지역에 제기되는 안보위기설이 잘 먹혀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단순히 현상적 측면이 아니라 바로 '안보위기설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정치학자 알렉산더 웬츠는 '정치는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국민의 인식체계와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설명한 말이다.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야 말로 이런 맥락에서 판단할 때, 보이지 않는 국민 개개인의 인식들이 빚어낸 관념의 총합을 의미한다. 너와 내가 위기의식을 느낄 때, 위기는 실재하는 것이다. 마치 경제에 대한 낙관적이거나 비관적 전망이 실제 경제지표에 반영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렇다면 안보위기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안보걱정에 턱이 빠진 친구와는 달리 다음과 같은 기사에 더 눈이 간다. 앞의 기사와 같은 날(5/6) 보도된 기사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는 "미국과 정보교류를 계속 하고 있지만,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의 핵 실험 설은 미국 당국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 안에서조차 "미국 언론은 계속 그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더 강경한 수순으로 나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기를 고조시킨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분명 이 기사는 핵실험과 관련된 일부 언론보도를 우리 정부당국자가 부인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 기사는 미국 정부가 입을 닫고 있는 와중에, 일부 미국 언론이 핵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이면에 모종의 미국 외교정책의 이해가 개입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까지 담고 있다. 한국정부 당국자의 부인을 못믿겠다면 이 기사는 어떤가. 오늘자(5/7) 일본발 외신이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은 오늘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과 관련해 "여러소문이 오가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북핵 정국에 있어 미국과 입장을 함께 하고 있는 일본. 그 중에서도 북한을 고립시키고 북핵 문제를 안보리에 상정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일본 정부의 외상 마저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을 부인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쟁위기감. 정론의 구현자로서 언론이 싸워야할 대상은 얼굴없는 소문과 억측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미국의 언론은 언론이 경계해야할 행태, 즉 소문의 재생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체제하에서 외신은 보도와 동시에 관련국의 내신으로 둔갑한다. 외신 유통의 게이트 키퍼로서의 국내 언론사 외신기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재밌는 것은 조선일보와 같이 수구적이거나 중앙일보처럼 보수적인 매체일수록 근거 없는 전쟁의 위험성을 실재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전쟁의 위험성을 강조해서 생기는게 무엇이 있겠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참 순진한 사람이다. 분단이후 역대 독재정권이 자나깨나 강조했던 남침위협의 이면에는 분단 고착구조를 통해 기생하던 분단 기득권 집단의 이해가 존재하지 않았던가. 보수 신문들은 대표적인 분단 기득권 집단임을 우리는 안다. 바로 우리가 '안보 상업주의'라고 부르며 경계에 마지않는 신문의 폐해가 바로 그것이다.   위기감을 고조시켜 동북아의 긴장구도를 유지, 강화하는 것. 사실 이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이 땅에서 일관되게 추진해온 對 한반도 외교정책의 핵심 중에 핵심이었다. 미국 대사관과 문화원이 앞장서고 정치권력이 함께 해온 긴장구도의 유지, 강화 전략. 조선과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은 미국의 對 한반도 외교정책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해온 오랜 친구가 아니었던가. 얼마 전 해외순방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미국 사람보다 더 미국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인의 미국적 세계관의 수준과 정도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한국인이 미국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부시의 침략전쟁을 수만 명이 모여 성조기를 휘날리며 기도로써 지지하는 나라, 여중생을 깔아뭉갠 미군 병사의 변호사 비를 모아주자며 모자를 돌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 유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백주대낮에 이런 기사까지 활보하게 된다. 일본 방위청은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방위청의 한 관리가 밝혔습니다. 이 방위청 관리는 익명을 전제로 이같이 밝혔으나 해당 정보의 구체적 내용과 정보의 출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관리도 일본정부는 북한 관련 정보를 관계국들과 교환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습니다.   일본 방위청의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엉터리 외신 기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 두 번째 줄에서 '문제의 관리'가 정보의 내용과 출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구태여 이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더구나 익명으로 밝힌 내용을 말이다. 그렇다면 기자는 왜 이 기사를 썼을까. 물론 기사 건수를 채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엉터리 기사 때문에 갖게 될, 한국인의 불안감을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범죄에 해당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안보위기를 고조시켜 당선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그의 임기가 유지되는 한 안보위기를 계속 고조시킬 것이다. 안보위기와 전쟁은 부시 정권 존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의 다양한 변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상호영향을 주고 받는 최근 국제정치적 경향을 고려할때, 부시측이 일관되게 부추겨온 안보위기를 다시 한국내 주요 이슈로 확대재생산해온 수구, 보수 언론들은 명백히 부시 집권의 공로자이며 또한 그가 일으킨 국제전쟁의 공범자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치떨고 있는 한반도 전쟁위협의 원인(遠因)에는 미국적 이해에 부초처럼 흔들려온 수구 보수 언론이 있음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결국 안보위기의 실체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부시정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주변국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우울한 환상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다. 직년 가을 취재수첩을 꺼내보자.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날 본디 나이롱 기독교 신자인 나는 모처럼 컴퓨터 앞에 꿇어앉아 장문의 기도문을 썼다. <당시 '상호생각'을 참조하시라> 긴 글이었지만 한 마디로 존 케리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최근 재현해낸 십자군 영화인 '킹덤 오브 헤븐'을 예로 들자. 이 영화는 800년 전 예루살렘에서의 기독교도와 모슬람의 격돌을 그린 영화다. 여기서 기독교 지상주의자이며 전쟁광인 가이드 루 시안이 부시라면, 나는 단연코 존 케리야 말로 상대주의적 관점의 평화주의자로서 예루살렘의 평화를 가져온 볼드윈 4세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믿는 나의 신념엔 근거가 있다. 지난 가을 미국에서 존 케리 후보 진영에서 존 케리의 대 한반도 공약을 디자인한 인사를 만났다. 취재해 보니 그 인사는 존 케리의 외교정책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존 케리는 북미간 일괄 협상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와 통일을 모색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클린턴 재임중 한반도는 얼마나 통일에 근접하고 있었던가 당시 외교부를 출입하고 있었던 나는 현장에서 가슴을 졸이며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클린턴의 뒤를 이을 존 케리는 나아가 깜짝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당선이 되면 취임 반년 이내에 북한을 전격 방문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을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이슈들을 팩키지로 협상할 플랜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취재원의 믿을 만한 코멘트였다. 한마디로 케리는 클린턴의 외교노력을 자신의 과실로 만들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취재원으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확인받은 기자는 방북 계획을 직접 케리 후보의 입으로 듣기 위해 방미 취재를 기획해 결재를 받아냈다. 드디어 지난해 4월 초순, 아틀란타에서 예정된 존 케리후보의 선거유세 행사중 10여분 동안의 인터뷰 약속을 받아냈다. 까다로운 신원조회가 필요하다고 해서 취재팀의 명단까지 미리 보내주었다. 하지만 이때 돌발변수가 터지고 만다. 이른바 '전여옥 목소리 사건'으로 으로 불리는 희대의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다. 색깔론을 확산시키며 선거전에 앞장서고 있던 전여옥 대변인의 목소리를 방송한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전화번호가 유사한 가정 주부의 목소리를 대신 인터뷰해 방송하고 만 것이다. 이를 계기로 선거를 앞둔 전여옥 대변인과 한나라당의 정략적 공세가 쏟아졌다. 모든 해외 취재계획이 올스톱됐다. 결국 방미 취재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케리 후보, 당선시 전격 방북 김정일과 포괄협상!' -  어쩌면 세계적 특종이 되었을 이 기사는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아직도 취재수첩 한쪽 귀퉁이에 묻혀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미국 대선 전날 진력을 다해 존 케리 후보의 당선을 기도했고 다음날 그의 낙선 소식을 들었다. 며칠 동안 깊은 좌절에 빠졌다. 폐쇄된 마이클 무어의 홈페이지 처럼 내 가슴도 암전이었다. 미국의 많은 지성인들이 캐나다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는 뉴스도 남일 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조만간 한반도에 불어 닥칠 전쟁의 광풍이 예감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뒤, 부시는 아직 이라크의 피도 마르기도 전에 이란을 넘어서 한반도에 까지 깊은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금 한반도 전역에는 미국 공화당 정부가 '원하는 대로' ,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믿고 싶은 대로' 안보위기의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음험한 안보위기론에 움츠리지 말자. 먹구름 너머에 찬란한 태양이 있음을 잊지 말자. 먹구름은 이땅의 음습한 공기가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다. 만약 전쟁이 난다해도 어디 갈 곳도 없는 우리들은 천상 이땅의 사람들 아닌가. 그러니 마음 마다 화해와 공존의 씨앗을 심자. 담대하게 전쟁을 거부하고 한반도에 평화의 싹이 돋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품자. 국제정치는 우리가 그러하다고 믿는 것의 반영임을 잊지 말자. 진실로 믿으면 이뤄진다는 꿈을 갖자. 그리하여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는 것은 평화인가 전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