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촛불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희망인가요. 어둠에 항거해 그 어둠 보다 더 큰 반대의 몸짓을 태워낼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이 피워올릴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글이글 타오르던 이 밤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오로지 한 곳만을 응시하던 그 불길의 넘실거림을... 사실 책을 낸다는 것도 못내 버거운 일이었고 또 그 책으로 인해, 그 책을 위해, 그 책의 약속을 위해 기념회를 갖는다는 것도 못견디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새벽 1시.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홍대앞. 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홍대앞을 벗어나 인적이 끊긴 여의도로 다시 돌아온 저는 언제나 저를 기다리고 있는 반쪽 짜리 책상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긴 한숨을 내쉽니다. 전쟁같던 하루를 반추해봅니다. 얻어마신 술 탓인지 의식은 흰눈 쌓인 철길 처럼 허무맹랑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힙니다. 크게 잘못한 일은 아닌가도 싶어 순간 안도가 틈입합니다. 요며칠 저는 첫사랑에 들뜬 19살 총각처럼 썼다 지웠다, 허튼짓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곳에 올리지 못하고 딜리트했던 글중 1월 6일의 상호생각을 리스토어해봤습니다. 다시 보니 또 그런데로 정겨운데가 있군요. 불과 이틀사이에 세상은 사람 마음을 또 이렇게 변하게 하네요. 제 마음을 다잡아 주신분은 바로 어제밤 촛불로 타오르던 바로 당신들의 마음이었습니다. 1월 6일 <새벽에 쓰는 글>   문득 오늘밤에 찾아온 생각입니다. 속으로 채워지는 느낌보다는 밖으로 소진되는 느낌. 방송일이 원채 그렇고, 또 대인관계가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이겠지만 오늘은 좀 걸리네요.   오늘 하루 출판기념 잔치를 알리는 전화를 수십통 돌렸습니다. 반복되는 가벼운 인사와 장소안내. 어느순간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물론 오랫만에 그렇게 해서라도 지인들과 새해인사를 나누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요. 사실 저는 평소 마음에 비해 주변사람들을 사사건건 잘 챙기는 사람이 못됩니다. 저의 이기적 삶의 방식과 그 대표적 사례인 과도한 일 욕심 탓이기도 하겠지만요. 그래서 사람 구실 잘하는 제 주변 친구들을 항상 부럽게 생각하는 처집니다.   이땅에 기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뭘까요? 갑자기 좀 거창한 이야기인줄은 모르겠습니만, 오늘 아침 제가 고발뉴스의 주인공으로 선정한 주간 물류신문의 정락인 기자가 생각나네요. 일면식 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정기자 그분은 물류전문지의 취재팀장으로 근무하며 그동안 화물 지입차의 문제점에 대해 헌신적으로 고발왔더군요. 오늘 그분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저 역시 지입차의 문제점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기사에 보니까 정기자는 지방에서 올라온 피해자들을 만나면 그냥보내기 안타까워 소주한잔이라도 먹여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고발한 업체측으로부터는 갖은 협박과 음해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현실과 괴리되는 삶을 살며 그가 느끼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 역시 스스로 소진되는 느낌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 아마도 지금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거나 아니면 적어도 제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소주라도 한잔 제안해 볼까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이런 저런 일로 정신이 번잡하다 보니 문득 나약한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어차피 우리네 일이 안으로 채우는 것 보다는 밖으로 내놓으면서 감당해야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뭔가 가슴과 머리에 채우며 안으로 삭여볼려고 애도 써보지만 배반하는 일상의 조건들은 그다지 녹녹한 환경은 아닙니다.   귀가길에 잠시 만난 친한 회사동료에게서 애정어린 뒤뜸을 들었습니다. '조직내에 비우호적인 세력이 있으니 행동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평상시 보도스타일과 아이템 선정에서 취재방식은 물론 튀는 행동, 이를테면 책을 쓰는 일까지 문제삼는 분들이 계시다구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지요, 방송사는 무서운 곳이라구요. 그래서 저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잘 알겠다구요. 또 고맙다구요. (중략) 뭐 이런 글을 썼다가 차마 이곳에 못올리고 지워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오늘 기념회는 제게 부담이었습니다. 왜 나는 책을 썼고 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쌩쇼를 해야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이들을 불러모은 것은 또 다른 기자권력의 과시아닌가. 끊임없이 저를 사로잡은 고민이었습니다. 깊은 밤이 창가에 쌓이는 밤. 이제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늘, 저는 막 식을 마친 신랑의 모습으로 제 자리에 앉아 있더군요. 오늘은, 제 가슴으로 품기에는 부담스러운 여인을 평생 운명으로 받아들인 날. 아니 적어도 그렇게 하겠다고 남에게 공표한 날이었던 겁니다.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는 이름의 책을 품고 저는 이제 어찌되었든 평생을 가야합니다. 저 보다도 더 오래 남아 제 자리를 지킬지 모르는 이 책과 함께 말입니다. 고발기자라는 주홍글씨를 받은 거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식장에서 출판사 편집장이 걱정스러운듯 제게 묻더군요. 첫 책을 그렇게 쌔게 냈으니 앞으로 어쩔거냐구요. 그야 어쩔 수 없죠. "이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기자를 그만두는 수 밖에 없지않냐"고 낮게 말했습니다. 사랑을 지킬 수 없다면 스스로 북을 찢는 수 밖에요. 참 무서운 날이 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0억원의 빚도 진날입니다. 책의 인세를 시드머니 삼아 내부고발자를 돕기 위한 10억원 목표의 소금창고 기금을 약정했으니, 저는 아름다운재단에 10억원의 빚을 진 셈입니다. 갚을 수 있을까? 어쩌면 저는 제 장례식 부조금 까지 전당잡힌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갑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에 술이 깹니다. 머리가 찌끈거리고 목이 말라오네요. 횡설수설. 내일 아침이면 부끄러움에 지워질지도 모르는 글이지만 저는 오늘을 기록해야만 합니다. 어쨎든 저는 오늘밤 촛불처럼 타오르던 사람과 그들의 눈속에서 타고 있던 희망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혼자한 제 다짐도 잊지 않을 겁니다. 권력과 일상의 타성으로 부터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 마냥 온몸으로 촛불 하나하나 소중히 옮겨 담겠다구요. 그 촛불 꺼뜨리지 않을 만큼의 섬세함으로 뚜벅뚜벅, 앞으로 앞으로만 걸어가겠다구요.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고, 저는 더 강한 각오로 하루를 맞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적어도 새하루에 눈뜰 수 있는 기적이 허락된 다면 말입니다. 오늘 애비로드에 촛불을 밝혀주신 마음과, 오늘 오시지는 못했지만 고발뉴스의 뜻을 함께 하는 마음 마다, 안식과 축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