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다음 두 글은 <한겨레신문>측과 <고교신문>에 제가 오늘자로 기고한 글들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을 고통속에 지낸 산물입니다. 자본과 시장의 문제가 향후 한국 언론의 가장 큰 위협요소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단 언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이 전사회적인 가치를 급속도로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고발뉴스 가족들과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더해주십시오.) # <한겨레>에 바란다 저는 mbc에서 방송기자질을 하는 이상호입니다. 요즘들어 가뜩이나 뉴스의 보수화, 나아가 수구화의 혐의까지 받고 있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른 언론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가 참 면구스럽군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때로 타매체에 관해 코멘트를 '강요(?)’받는 일이 잦습니다. 그럴땐 정말 곤란합니다. 더구나 이번 '강요'의 경우, 그 대상이 <한겨레신문>이고 보니 정말 당황스럽군요.   솔직히 저는 언론문제에 대해 비전문갑니다. 팔자에 없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주먹구구식으로 전문가연(?) 행세를 해왔지만 말이죠. 이런저런 언론학 전공용어를 대가며 매체의 보도경향을 조목조목 분석할 줄도 모르고, 언론관계 법령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저 이건 오보다, 이건 과장이 심하다, 이건 냄새난다, 이런 정도의 상식적 판단을 겨우 하는 수준입니다. 단순무식한 '고발기자'의 관점에서 언론과 언론사의 비위행위 여부를 감시하는 정도인 제가 무슨 <한겨레>에 득이 될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기왕에 붓을 들었으니 먹물이라도 한 방울 튀기라시면 다만 <한겨레>가 보다 정교해지길 원하는 제 바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사회 본질적인 이슈들을 찾아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달라는 거죠. 특히 자유주의적 가치 선점에 노력해 주길 기대합니다. 이쯤되면 한겨레를 지키는 열혈 기자님들께서는 제게 "당신 지금 우리에게 자유주의하라는 거냐”고 물을 겁니다. 긴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솔직한 제 심정은 "그렇다" 입니다. 아직도 이념과 역사의 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 변변한 전망도 확보하지 못한 채 한해를 보내고 있는게 우리현실이고 보면 너무도 한가한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도나 시스템의 개혁만큼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전환된 인식이 다음 세대로 발전적으로 승계될 때 비로서 개혁이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네, 맞습니다. <한겨레>도 '자유주의 하라'는 제 주장은 다음 세대와의 소통방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2004년의 정치-사회적 현안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 혹시 요즘 대학축제에 가본 적이 있으십니까. 70년대 일부 대학생들이 축제기간중 서양식 '쌍쌍파티' 라는 것을 열었다가 시대인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지요. 당시 그들은 시대로부터 스스로를 개인적 삶으로 유폐시켰던 겁니다. 하지만 요즘 대학문화는 당시와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자본에 의해 제조되었거나 그 유통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아이콘들이 티비에서 나와 곧장 대학축제로 직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 축제는 요즘 잘나가는 인기가수들의 경연장인지, 시내 나이트클럽의 초대가수 무대인지 혼동될 정돕니다. 축제의 여백은 대학마다 생겨나고 있는 코스프레 서클과 각종 댄스 모임 회원 등의 덜떨어진 기성인 흉내 경연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대학문화가 기성 제도권의 상업문화에 철저히 예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쌍쌍파티가 시대상으로부터의 도피였다면 지금은 시장과 자본의 강제하에 대학이 점령당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제도와 시장으로부터의 벗어나 지적 해방구로서 기능하며 다음 세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대학이 실종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라디오에선 쇼핑센터 광고인지 서커스 공연 광고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의 대학 신입생 유치광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비와 물신숭배로 어지러운 오늘날의 대학에 모여든 젊은이들은 이번엔 예비 지식인이 아닌 예비 소비자로 변모해 사회로 양산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오늘날의 대학인으로 대별되는 20대가 두렵습니다. 그들이 지배할 10년, 20년 후의 사회가 두렵습니다.   산발적인 저항 가운데 무너지고 있는 대학을 시장의 선봉장인 신자유주의 전사들이 속속 접수하고 있습니다. 몇 년새 엄청난 속도로 우경화되고 있는 학생들을 봅니다. 얼마전 한 여론조사는 20대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자신들이 이념적으로 중도라고 응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작 진보진영은 변한게 없는 것 같습니다. 80-90년대 구태의연한 전체적 방식으로 분자화된 개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진보의 마지막 성소인 대학이 시장의 파고에 침몰하고 있는데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 우리들을 봅니다. 자유주의는 진보와 개혁의 본가입니다. 대학에 차고 넘치는 자유주의적 에너지를 변화와 진보, 공동체 가치의 실현을 위한 동력으로 끌어모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한겨레>가 해주길 기대합니다. 아무런 지향도 없이 그저 소비의 바다 위에 흔들리고 있는 20대들에게 그들의 자유가 정당한 것임을 확인시켜 줍시다. 오늘 그들이 누리는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의 피가 이땅에 뿌려졌는지 이야기해줍시다. 그리하여 그들의 자유지향을 보장해줄 동아줄은 언제라도 그들을 경쟁으로부터 낙오시킬 번쩍이는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남루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자기 희생적 나눔임을 자각하도록 해줍시다.   접근은 문화적이되 과정은 구성적으로 이뤄지길 바랍니다. 20대의 문화와 그들의 일상 속으로 <한겨레>의 가슴 뜨거운 기자들이 접근해주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사회와 유리된 그들의 노래와 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사회와 관계 맺어야하는지 대화해봅시다. 시장에서 박하게 값이 메겨졌다는 이유로 축 늘어진 젊은이들의 어깨를 바로 세워줍시다.   대학생과 청소년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정치편향의 사회 기사에 지면이 넘쳐날 때, 20대는 신문을 덮고 맹목적인 정치혐오와 패배주의에 젖게될지 걱정입니다. 청소년 문화캠프나 철학교실 등 20대를 위한 각종 문화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소구력을 갖추고 그들을 우리시대 담론의 장으로 초대하려는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 작은 촛불을 움켜진 손들. 혹한 속에서 제 손등을 스치던 <한겨레> 기자들의 따뜻한 체온을 저는 기억합니다. 어려움 속에 정진하고 있는 <한겨레>에게 후안무치한 독자인 저는 그래도 <한겨레>가 먼저 나서달라고 소망합니다. 아마도 오늘 우리의 싸움이 불행히도 우리 시대의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의 아픔과 승리의 깃발 <한겨레>가 나부끼는 한, 우리는 비로서 함께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고교신문> 독자들께 드리는 글.. 안녕하세요. <고교신문> 독자여러분.. 저는 문화방송의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프로그램에서 취재와 보도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호 기자입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제 4의 권력'이라고 하는 언론을 감시하고 언론과 사회의 접점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구조적인 관점에서 깊이있게 접근해보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때문에 다른 기자들 보다 언론보도 전반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 현상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천착해보는 것이 저의 주업무랍니다.   그런 제게 이번 수능부정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해 당사자인 학생 여러분들 입장에선 얼마나 놀랍고, 또 화가 났을지 상상이 갑니다. 우린 불과 얼마전 여러분들이 겪은 학창시절의 선배들이니까요. '일부 학생들이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아서 나머지 선량한 학생들이 피해를 봤다'는게 적어도 이번 사건의 '드러난' 문제점 입니다. 그러나 각도와 깊이를 달리해서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그곳엔 훨씬 더 무서운 우리시대의 문제가 녹아들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컨닝은 예로부터 늘 존재해왔습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장에서 종종 남의 답안이나 미리 준비해온 쪽지를 훔쳐보다 적발되는 사례가 있었다고 역사서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양심의 문제에 비양심적인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인게 인간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다릅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299명의 부정행위자가 확인됐고, 이중 226명의 시험이 무효처리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자(13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의 2차 문자 메시지 조사결과 101명의 명단이 추가로 확보됐다고 합니다. 합치면 시험이 무효처리되는 학생은 어림잡아도 최소 300명을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컨닝을 한 사람들의 숫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집단 컨닝 사태는 선후배들이 조직적으로 연루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학원선생님이나 일부 학부모까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번 사건은 기존에 존재해온 극히 일부 개인의 우발적 단순범행이 아닌 집단적 조직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범죄 행위 자체 보다 한단계 더 밑으로 들어가 볼까요? 과연 '왜 이런 범죄가 생겨났을까' 를 질문해보자는 것이지요. 대개 드러난 문제점 보다 드러나지 않은 사태의 배경이 문제해결을 위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수능점수라는 일차원적 가치로만 공동체 성원의 성취도(performance)를 측정하려는 시장만능주의의 한계가 작용했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자본주의의 아성인 미국에서도 학생들을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 하나만 가지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입학자격 여부를 알려주는 초보적인 자료인 것입니다. 그 보다 고등학교 재학시의 서클활동이나 봉사활동, 리더십 그리고 세상과 사회에 대한 적극적 개선의지 등이 학생선발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번 수능부정 사태를 지켜보며 저는 국적불명의 천민자본주의 하의 어른들의 행태를 우리 학생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실망스런 성적표를 받아들고 컨닝을 하지 않은 자신의 소심함을 탓할지도 모르는 후배들이 걱정되서 그렇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초초하게 핸드폰의 진동을 기다렸을 학생들의 처지도 딱합니다. 순간의 잘못으로 시험을 무효처리를 당하고 막 시작하는 자신들의 인생에 빨간줄 하나를 달게된 후배들의 일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또 안타까운 이유는 후배들에게 정당한 게임의 논리를 가르치지 못한 선배의 죄책감 때문입니다. 법대로, 원칙대로 하면 손해만 본다는 우리사회 만연한 피해의식에 후배들이 젖지 못하도록 막지 못한 점도 가슴아픕니다. 수능점수 몇 점 보다는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지 못한 것도 죄스럽습니다. 정녕, 드러나지 않는 우리들 마음속 보배가 반짝거리는 시장에서의 거래 조건 보다 소중한 것임을 모두가 믿도록 외치지 못한 기자로서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이념과 역사의 시대가 이제 막 21세기 초반의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모든 것이 시장에서의 가치와 교환비율로 평가되는 '시장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시장은 경쟁을 요구합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고 각 등수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때의 가치는 분명 시장의 딱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의 가치는 절대 아닌 것이죠. 하지만 시장의 브랜드와 가격이 상품의 존재를 대변하고 있는 가치 전도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튼튼한 신발의 실용성과 신발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노동력에 대한 고마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이 신발이 '나이키'인지 아니면 '짜가'인지, 또 미국에서 건너온 소위 '-쩨(外製)' 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법을 시장속의 우리 후배들은 먼저 배운 것이죠. 아무것도 아닌 시장의 상표와 가치에 억눌려, 그만 사람을 보고도 사람을 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정녕 소중한 사람인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키웠습니다. 컨닝을 해서라도 좋은 가격표를 달자고 했을 아이들을 어느 선배가 매질할 수 있겠습니다. 선배들의 탓입니다.   <고교신문>의 독자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 혹시 여러분들이 수긍할 만한 구석은 없는지요? 궁금한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학과성적이나 수능점수 말고 남에게 보여줄게 무엇이 있습니까? 학교생활의 성취도 말고 내세울 다른 취미는 있습니까? 여러분은 시장과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나요? 성적이나 경쟁력 만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시장제도는 항상 옳기만 한 것일까요? 공부와 시험에 쫓기는 그대.. 한번쯤 책을 덮고 스스로 질문할 시간을 갖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