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인터뷰하는 직업 - 기자로 10년을 살았다. 기자질이란 대부분의 경우, '나'라는 자연인을 기사저편에 버려두고 오로지 기사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보도를 통해 내가 쓴 기사가 아니라 내 자신의 존재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무척 부담스런 일이었다. 그때마다 인터뷰라는 것이 쫓아온다. 참 곤혹스러운게 인터뷰다. 질문을 물어야할 사람이 물리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때로 훌륭한 인터뷰어를 만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터뷰가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 것인지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남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며칠전 녹화장으로 이화여대의 웹진 듀 라는 단체의 학생기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일로 몸을 다치며 세상을 걸어야하는 처지라 한번 이야기의 물꼬가 터지면 나 조차 감당이 안된다. 진지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두 기자에게 쏟아붓듯 이야기를 토해냈다. 요즘 보수화되는 기자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장바닥이 되어버린 대학 캠퍼스에 대한 소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가슴 한구석엔 대학교 1-2학년 짜리 학생기자들이 나의 문제의식을 얼마나 따라올 수 있을지 못미더운 생각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세상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이 결국은 혼잣말에 불과한 것일테니 말이다. 노회한 '프로페셔널' 기자는 그렇게 자신의 말을 의도적으로 발로 지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인터뷰에 대해 잊어버렸을 무렵. 웹진 듀 에서 이멜을 받았다. 나의 인터뷰 기사를 보내온 것이다. 인터뷰를 읽어내려가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진땀이 났다. 대학 2학년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세련된 문장구성은 물론이고, 나 조차 보지 못한 나의 일상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지친 기자의 넋두리를 이들은 훌륭한 기사로 꿰어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정녕 나를 거쳐간 인터뷰 기사중 백미었다. 문득 부끄러움이 귓가로 몰려온다. 어린 후배들로 부터 보기좋게 한방 먹은 것이다. 순수한 눈망울로 응시하던 그들을 나는 몇가지 생각의 가닥으로 예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 시기에 갖지 못했던 영민함으로 내 생각 안의 계곡을 완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이며, 소리를 아는 사람이 있으니 또한 함부로 노래부르지 말 것이다." 누군가 내게 경계해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어쩌랴. 허공에 부른 노래를 누군가 이렇게 훌륭하게 화답해주었으니. 그것이 천상의 메아리든 사람의 목소리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만 부끄럽게 정진할 따름이다. 부족한 생각에 오히려 예쁜 옷을 입혀 기사로 만들어낸 이화웹진 듀 의 기자들에게 감사한다. 여기 고발뉴스의 가족들에게 이들의 인터뷰 '작품'을 공개한다. 인터뷰 내용중 만일 여러분의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공로일 것이다.   (이하 인터뷰 기사)     :: 말 많은 문제기자  - MBC 이상호 기자    “이상호 기자! 옆에서 꿍시렁 대지 말고 녹화 중간에 자연스럽게 말해요!” 최원섭 PD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떨어지자 이상호 기자(37)는 멋쩍게 웃는다. MBC<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녹화 풍경이다. 카메라에 불이 잠시 꺼진 사이, 혼자 중얼거리는 이상호 기자가 최원섭 PD의 눈에 답답했나 보다. 다시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결국 이기자의 ‘꿍시렁’은 들어갈 기회를 찾지 못하고 녹화가 끝난다. 이상호 기자는 자신을 ‘할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녹음을 하러 가는 길에 만나는 모든 보도국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사내식당에서 MBC수습기자들을 발견하고는 저녁식사가 끝날 때까지 격려한다. 입사초부터 9년 째 추적하고 있는 가수 김광석의 죽음을 곧 타살로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는 자랑도 곁들인다. 녹화를 하기 위해 데스크 앞에 앉아서는 방청 온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자기가 선배라며 친근하게 농담을 건넨다.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좋아해요. 남의 감성이든 삶의 고통이든 기쁨이든 나누는 것이 행복해요.” 그는 방송을 가장 극단적인 커뮤니케이션 형태로 규정한다. 때문에 방송을 즐기고 방송을 통해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고발기자질 10년 차,  기자의 역할을 정의한다 “요즘 들어 제 기자생활의 1단계 목표가 정리 된 느낌이 들어요.” 기자를 시작하고 10년 동안 이루고 싶었던 그의 1단계 목표는 고발기자로써의 기초를 다지는 것. 95년 MBC에 입사해 경찰서, 법원, 대검찰청, 외교통상부로 출입처를 옮겼고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전문기자도 했다. 이름이 같은 타사 선배기자들 덕분에 기사를 날로 먹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삶은 ‘룰루랄라’였다. 고발전문기자로 정착하고 ‘문제기자’로 알려진 것은 MBC<뉴스데스크>의 <카메라출동>부에 배치되면서부터다.   모순이 있는 곳이라면 자신이 속한 집단까지 서슴없이 고발했다. “누가 나한테 NGO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NGO면 나도 NGO다 그렇게 맞섰지.” <시사매거진 2580>, <미디어비평>,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까지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다 맡았다. 비판도 받고 협박도 당하고 매도 맞아가며 정의를 지켰다. 그러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언론계의 모습은 그를 실망시킨다. “제일 답답한 사람은 독재가 끝났다는 사람이에요. 기자들이 할일이 없대요. 나태하고 아무 일 없이 세상이 지겨워서 죽겠다는 듯이 지내는 기자들……. 목적의식 없이 자기 기자됨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실망스러워요.” 그는 <오마이뉴스> 오현오 사장의 말처럼 모두가 기자인 시대에 프로페셔널 기자의 역할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독재냐 민주냐 이분법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시대에서 기자는 판단만 하면 됐어요. 지금은 언론과 정보, 미디어, 인식, 더 나아가 문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자가 훌륭한 기자에요. 흑백논리 속에서 절대적 선을 추구하기만 하면 추앙받던 시대는 지난 거죠.” 지금은 좋은 기자가 되기 어려워 졌다며 그는 잠시 생각했다. “우리시대의 기자는 사회의 다양한 전선에 형성되어 있는 모순 고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기자의 덕목중 하나는 주변의 익숙한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낯설어 지는 것이다. 그래야 권력도 거부할 수 있다. 만연한 시장논리를 고발한다 기자생활 초기 그는 촉망받는 기자였다. 잘나가고 싶었고 야심도 생겼다. 내가 유명해진고 힘이 생기면 남한테 나눠줄 수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교만해짐을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며칠 밤을 새다가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전부로 알고 추구했던 열망과 꿈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죽고 싶었다. “한동안 고생했어. 그러다가 집사람이랑 결혼했지.” 그는 시장의 논리와 교환가치를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안정을 찾았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고, 뭐가 중요한 건지 알겠더라고. 그걸 몰랐으면 얼마나 끔찍한 인간이 됐겠어…….” 어제와 오늘을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어 2년 전에 있었던 두산중공업의 파업사태을 떠올렸다. 그는 끝내 분신자살한 배달호씨의 땀이 채 마르지도 않은 현장에 도착해 마구 울었다. “그 전까지는 자본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데 서울에서 내가 관념적인 놀이를 하는 사이 그분은 노동자들을 위해 타들어간거야. 기자들이 썩어서 보도를 안해주니까……. <시사매거진 2580> 기자였던 나마저도 안해서…….” 말이 흐려진다. 돈이 없어서 한 푼만 더 달라고 하는 노동자에게 조업장애라며 수억원의 손해배상까지 물리는 자본가의 비정함은 그를 슬프게 했다. 이상호 기자는 요즘 들어 자주 대학에 초청받아 강연한다. 항상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대학에서 만난 학생들의 모습은 당혹스럽다. 그는 대학생에게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솔직히 어쩔 땐 대학생들이랑 막 싸우고 싶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 때가 있거든…….” 그를 이토록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대학생들의 ‘시장 숭배’다. 대학생은 스스로 고가에 매각될 수 있는 상품이 되려고 한다. TV가 만들어 낸 환상을 축제 때 재연하고, 돈 낸 만큼 정보를 얻어 가면 그만이라는 학생과 선생의 인간관계는 시장이 만들어 낸 지금의 대학 모습이다. “대학이 갖는 사회적 책임을 자기 삶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대학에 있어. 난 그 사람들이 지배할 10년 뒤 20년 뒤가 두려워.” 그는 오랫동안 신자유주의 체제아래서의 기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사회 개혁을 위한 기자의 역할, 탐사 기자의 역할, 고발 기자의 역할……. 고민 끝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이런 얘기 하면 시장에서 도태된 인간이 푸념을 늘어놓는다고 할까봐 공부한거야. 내가 무식한 인간이 아니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돼서 말하고 싶어. 시장의 방법으로 그들에게 얘기할거야.” 이상호 기자의 희, 노, 애, 락 <시사매거진 2580>을 담당하던 2년 전 바쁜 기자생활 속에서 회사몰래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가뜩이나 바쁜 그에게 연예인제작자협회는 패소할 소송을 7개나 걸었다.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이후에는 소송준비를 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했다. 토막잠을 자며 힘들게 살았지만 책까지 썼다. “삶은 시간의 문제 같지는 않아요. 열정의 문제죠.” 10년의 기자생활 동안 37번의 소송을 당했다. 살해협박도 이어졌다. 힘들었다. 안 겪어 본 사람들은 모르는 혼자만의 고통이 쌓여갔다. TV에서는 늘 당당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면에는 이성이 억제하지 못한 감정이 웅그렸다. 5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는 김상범 프로듀서는 이상호 기자를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고 한다. “가까이에서 전두환 본 적 있어요?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우리 많이 혼났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는 전두환의 비리를 폭로한다.   인터넷 사이트 <이상호의 고발뉴스>에는 매일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보가 이어진다. 구구절절이 쓰인 제보에는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묻어 있다. 그는 5년 전 행복을 위해 아버지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었다. 아버지는 어떤 기자가 되면 행복하겠냐고 물었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집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줄서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 사람들 도와줄 수 있게…….” 그런데 지금 억울한 사람들이 그의 집을 두드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행복했다. 휴일까지 반납하며 취재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생각 끝에 홈페이지를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지금 너무 행복해요. 인터넷 매체에서 활동하는 몇몇 기자분들이 함께 하겠다고 연락을 해 왔거든요.” 그는 이제야 억울함을 호소하는 많은 이들에게 답을 해 줄 수 있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첫눈이 내릴 거라던 11월 26일 새벽. 비가 내렸다. “오늘 눈이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눈이 와서 세상을 깨끗이 정화해 주면, 그게 혁명인데…….” 이상호 기자의 혁명은 특별함이 없다. 세상이 아름다우면 그뿐이다. 모순 없는 아름다운 사회, 이상호 기자가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기다린다. 박근영 기자 <zaijiann@naver.com> (주: 출처 www.ewhadew.com 최신버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