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제 아내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부끄러움이 들꽃 보다 많은 사람. 그런 제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솟구치는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은 경기도 변두리까지 쫓겨온 남편에게 대출금 문제를 거론하다 핀잔을 받았던 나의 아내. 그녀가 지금 저기 잠들어 있습니다. 그녀를 위해 작은 기도를 보내고 싶지만 이밤 제 마지막 기도는 그녀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풀죽은 붕어빵처럼 쓰러져 잠든 아내 옆에 나란히 누운 두 아이들. 툭하면 병원신세에 부모 마음을 송두리째 맨땅에 팽개쳐 놓는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오늘밤은 기도하지 못하겠습니다. .. 버거운 노정에 어깨 나눠주는 직장동료도 아닙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는 이유로 밤낮 아직 도래하지 않은 도처의 '처벌'에 몸서리 치며 고통스러워하기 보다는 오늘의 작은 싸움에 신명을 바치는 신강균 선배를 위해서도 오늘밤은 작은 기도를 나눠드릴 수 없습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성한 이들도 버거운 두개의 십자가를 지고 어느새 세개의 언덕을 넘어오신 김학희 부장. 그에게 만은 작은 읊조림으로 평온을 기원하고 싶지만 오늘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죽음에서 걸어나온 그에게 조직은 '죽으라' 했지만 죽지 않은 그가 이젠 죽음의 조직을 흔들어 깨치고 있습니다. 순결한 영혼의 윤능호 부장, 그에게 역시 이밤의 평온을 기도해드리지 못합니다. 아, 하지만 핏발선 눈으로 조금의 원망함 없이 조용히 전선만을 응시하고 있는 이름없는 국화꽃들이여! 그들에게만은 기도해야만 하는데.. 부디 제 기도가 미치지 못하는 오늘밤도 그들에게만은 안식의 밤이 허락되기를.. .. 깨닫고 성찰하기 보다는 부끄러움 조차 잊은 종들을 위해서도 오늘밤만은 기도를 올릴 수 없습니다. 사주의 탐욕과 그 결과 놓쳐버린 종의 겸손함의 미덕을 되찾으라고 서울방송의 종사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자본에 물들기전 그 기자됨의 순수로 돌아가 역사와 사람 앞에 업드려 성찰할 수 있는 가을이 그들에게 허락되기를 기도해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어느새 오늘밤 제 책상을 비추는 불빛은 시나브로 총기를 잃어갑니다. .. 시대의 뒤안길에서 희망을 잃고 길을 헤메는 시대의 동반자들을 위해 작은 손 모아드리고 싶지만.. 정녕 이밤 제게 마지막 기도가 허락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곳의 일이 아니라 먼 나라, 미국의 이야깁니다. 이제 투표만을 앞두고 있는 아메리카의 대통령 선거. 너무도 먼 나라의 이야기라 실감조차 나지 않지만 이미 세포 속까지 미국의 신호에 따라 좌우되는 이땅의 사람들을 위해, 오늘밤 제게 마지막 기도가 허락될 수 있다면 미국민들이 좋은 후보에게 투표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주여.. 보다 구체적으로 저는 민주당 후보 존 케리를 위해 투표가 이뤄지도록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국과 민족의 하늘위에 전쟁의 암운을 드리워 군산복합체의 주가를 올리거나 천문학적 금액의 미사일을 강매하는 부시의 재선이 저지되기를 기도합니다. 남북 당사자간 통일논의를 주창하고 임기초 북한을 직접 방문해 포괄적 통일 협상을 벌일 존 케리 후보가 우리 민족을 위해 필요합니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 우리가 가르지도 않은 분단의 멍에를 안고 걸어온 50년의 세월. 이 민족을 긍휼이 여기소서. 제 소망이 보잘것 없고 혹시 어리석은 것일지라도 저는 진실된 마음으로 불가능한 변화를 위해 이밤 기도하렵니다. 너무 먼 이야기지만 너무도 가까운 우리들의 운명, 먼길 돌아온 우리들의 현실을 더 이상 되돌릴 수만은 없어,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이제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시청앞 광장에서 초대형 교회 집사와 장로, 목사님들이 통성으로 부시를 위해 기도한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그 알 수 없는 나라 코리아의 날나리 개신교도 하나가 이밤 잠못들고 작은 마음을 하나 세웁니다.   너무도 중요한 이밤, 잠시 뒤면 이라크에서 무고한 10만을 죽인 범죄집단의 집행유예 서류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더 이상의 죽음의 그늘을 팔레스타인의 소녀에게서 거두어주소서, 더 이상의 능욕을 선량한 이라크의 이교도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리하여 포성이 없어도 늘상 포연이 가시지 않는 삼천리 이 땅의 민족에게도 순간이나마 작은 평화의 시간이 깃들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 이상 무언가 할 수 없을때 그 극한의 절벽 끝에서 비로서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당신이기에, 지금 이 두 손 당신께 보냅니다. 민족에게 희망을.. 인류에게 구원을 내리소서. 2차 대전 이후 수십, 수백만의 죽음위에 세운 집단안보 체제. 다수결의 국제연합도 반대한 전쟁을 독단적으로 치루고 있는 미국과 부시 대통령. 불행히도 우리민족에겐 그의 손을 거두게 할 힘이 없습니다. 불행히도 민족의 다수는 조선일보와 수구집단의 망상대로 부시가 당신의 정의를 수행하는 십자군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을 용서하소서.   대체 기도란 것이 너무도 서툴어 혼자만의 뇌까림 만으로 세상을 절어온 이 투박한 두 손위에 부디 떨치지 못한 부끄러움 보다 승리의 작은 빛을 허락해주소서. 하루만큼의 온갖 사사로움에 눈을 적시고 지금은 돌아와 알코올 냄새 가득한 입가로 무릎 꿇었지만. 그런 제게도 이 밤 기도가 허락될 수 있다면.. 당신의 정의가 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짐을 기억하게 해주옵소서. 만일 이 모든 기도가 끝내 물거품 같은 것이 될지라 해도 우리에게 당신이 있음을 믿게하시고, 그리하여 결코 절망하지 않도록 저희와 함께 하소서.   단 한번도 제사장의 권세와 서기관의 비겁함에도 미소 보내지 않았던, 2000년전 예수라는 혁명가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