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씨는 나의 연구대상이다. 육십 평생을 한국형 '권위주의' 토양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일관되게 자유 의지를 견지해온 결코 흔치 않은 존재다. 사람들은 그를 '한량' 이라고 부르고 싶어한다. 나는 그를 '자유지향'의 인간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을지 나는 회의적이다. 때로 담배 한대를 피우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하는 상황도 있고, 전시에는 한발짝 발을 내딛기 위해 많은 사람이 죽어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하기 쉬운 일상들.. 평생을 '광대'라는 낮은 포복으로 '권위'의 철조망을 기나온 가수 조영남에게서 나는 알 수 없는 숙명적 동질감을 느낀다.   나의 기자질의 목표는 고발이 아니다. 사랑이다. 그리고 자유다. 따라서 내가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척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를 지지한다. 정치적으로 물론 그는 나와 다르다. 조선일보를 부인하지 않으며 일본에 대해서도 유화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의 문제일 뿐, 나는 그의 식을 줄 모르는 자유의지와 열정을 흡모한다. 그런 나에게 김민기라는 존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왜냐면 조영남을 이해하는데 김민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김민기는 조영남의 '숨은 그림'이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얼마전 가수 조영남을 인터뷰했다. 조영남은 이 인터뷰에서 김민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김(어준 총수): 김민기씨는 어떤가요? 조(영남):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결이 좋은. 총 : 품위가 있는 인간, 그런 뜻..? 조 : 결 좋다는 거.. 이해 안가? 총 : 느낌은 알겠는데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조 : 가장 숭고한, 품격이 있는. 총 : 속물적인 게 없는? 조 : 전혀. 총 : 종교적이기까지 할 수 있는? 조 : 그렇지, 추앙 받는 인간형태 중에 하나야. 걔가 술 안 취하는 거 보면 위대해. 총 : 하하하. 안 취하고? 조 : 최근에 좀... 총 : 생물학적 한계군요. 그 부분도. 조 : 나는 높이 평가해. 김민기가 술 취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던 조영남. 조영남은 자신의 고별 콘서트가 열리던 10월 6일, 30여년을 사귀어온 5살 연하의 김민기가 술에 취해 자신 앞에서 고개를 떨군 것을 처음 보았다. 데뷔 35년을 기념하는 콘서트. 조영남은 이번이 마지막 콘서트라고 방점을 달았다. 자신의 인생을 노래에 실어 한편의 영화처럼, 연극처럼 진행한 이날 콘서트의 하일라이트는 마지막 부른 '딜라일라'. 그의 데뷔곡이자 최대의 히트곡인 딜라일라를 부르며 막은 내려갔고, 무대엔 그의 그림만이 홀로 걸려 남았다. 인생을 소재로 한 한편의 '노래 전시회'였다. 일관된 정진의 일생은 그 자체로도 감동일 수 있다는 생각에 관중석의 난 눈시울을 닦았다. 30여년이 지난 기자로서의 나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기도했다. 국방부와의 '헬멧전쟁'이  한창이던 때라, 공연이 끝나고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기사를 마저 완성해야 했다. 조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 국방부가 20년도 지난 구형 미군헬멧으로 엉터리 실험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완성시켰다. 이제 좀 잠잠해지려나. 국방부 말만 듣고 'mbc가 졌다'고 대서특필한 조선일보의 기사가 자꾸 뇌리에 되살아난다. 이제 이 기사가 나가면 세달 동안의 고통의 시간도 일단락되리라. 새벽 한시가 넘어서야 조영남씨 자택을 찾았다. 미국서 온 이장희씨는 곧 잠이 들고, 김민기와 조영남이 마주하고 있었다. 김민기는 이미 많이 취해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민기와 조영남의 만남.. 너무도 부조화스럽지만 어쩌면 이념과 그에 따른 경향, 전체주의의 광풍,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분열해온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양극의 인물들이고 보면 너무도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만남을 기록해야할 기자는 다름아닌 고발 기자질이 기자의 본분이라고 믿는 '3류'기자인 나.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고 빈약해보였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우리현실을 슬퍼하며 죽은 소총수를 대신해 기관총을 잡은 위생병 처럼 어색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기자질의 숙명이거니 생각하고 메모두 하고 밤새도록 사진도 찍었다. 솔직이 둘 사이의 대화가 갖는 철학적 의미라든가 존재론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걸 느꼈다. 김민기는 소년, 아니 '아름다운 소년' 이었고, 조영남은 그런 소년을 감싸는 천상 넉넉한 '형님'이었던 것이다. 하루밤, 둘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하지만 나는 이들이 맺어온 30년 인연의 성격과 양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형제였던 것이다. 김(민기): 형. 이제 진짜 숙성이 될 것 같아. 김치는 달이잖아. 이제 부턴거야. <지하철 1호선> 마지막 부분에 서양 놈들은 해를 보는데, 나는 그걸 달로 바꿨거든. 그랬더니 서양애들이 이해를 못해. 그래서 말했지, 우리는 그럴때 달을 본다. 조(영남): 민기야 나두 루나(달)다. 김: 형이 무슨 루나야, 솔라(해)지.   조: 루나래두. 김: 형. 그런데 오늘 공연 나 안갔다. 일부러 안갔어. 하지만 정말 미안해.. 조: 그래 알아. 김: 그런데 형. 형이 나를 못오게 한거야. 내 노래를 부르면 어떻게해. 그건 나를 오지말하고 하는 말이지. 신문에 났더라구. 내 노래를 부른다고.. 조: 그거야 그래야 기사가 되니까 그렇게 썼겠지. 하여간 미안해 내가 너를 팔아먹어서. 김: 그래두 미안하다 형.. 형은 알지. 조: 그래.. 지난 70년대 김민기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미국에 체류중이던 조영남은 그의 동생 김민기를 추모하며 '김군에 관한 추억'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김민기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원래 비정치적인 조영남이 그나마 일말의 사회참여적 관심을 남긴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얘기가 여기저기 신문에 먼저 보도되자 당사자인 김민기는 쑥스러워 도저히 공연장엘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 그런데 형 오늘 공연이 뭐야? 조: 뭐가 뭐야.. 이제 더이상 노래를 더 잘부를 자신이 없으니까 그만 하겠다는거지. 일종의 장례식이지. 김: 죽은 사람이 장례식하는거 봤어? 조: 그렇기는 하네. 김: 형.. 무슨 의미야. 오늘 공연은? 앞으로 어떻게 할려구. 조: 모르겠다. 민기야 그게 걱정이야. 김: 정치하겠다는 뜻 같기두 하구.. 조: 정치는 무슨 정치.. 따지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두 정치하는 것과 다를 건 없지만. 아니야.. 정치는 무슨.. 김: 그럼 뭐야. 이들의 대화는 계속됐다. 김민기는 끊임없이 조영남을 흔들었다. 흔들리는 조영남도 흔드는 김민기도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이렇게 30년을 걸어왔으리라. 김민기는 형 조영남이 부른 번안곡들의 저작권과 관련해 일침을 놓았다. 김: 형은 오늘 무대에서 그동안 형이 노래 도둑질 한거 다 용서를 구했어야했어. 조: 무슨 도둑질.. 그거 내가 작곡한 거 아닌거 다알아. 다 말했다구. 김: 그래도 형은 그부분 까지 다 털어내야했어. 조: 그럼 내가 무대에 설때마다 번안할 걸 매번 광고를 하란 말이니? 김: 그렇게라도 해야지. 조: 내 참. 도둑질은 아니지. 이미 여러차례 밝혔으니깐. 김: 그래도 그건 양심적이지 않아. 마지막까지 밝혔어야 해. 이 대목에서 조영남에 대한 김민기의 역할이랄까, 관계에 있어서의 성격이 다시한번 감지됐다. 자극제나, 안전판, 아니면 소금이랄까? 조영남이 썪지 않도록 한 일종의 소금 역할을 저 아름다운 청년 김민기가 해온 것은 아닌가. 실제로 김민기가 유신치하에서 도피중이던 시절. 조영남은 그런 동생의 삶을 보는 것을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권위주의 시대의 암울암을 비껴가지 못한, 조영남 역시 우리시대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연예계라고 하는 닫힌 사회에서 문화적 자유로만 스스로를 제한해야 했던 그런 조영남에게 김민기라는 존재는 때로는 '십자가' 이기도 하고, 때로는 윤리적 '대리모'이기도 했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다.   김민기는 조영남에게 또 다른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조영남 스스로 '천재'라고 규정하고 있는 김민기는 조영남이 미술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격려해준 길잡이었다. 김민기는 조영남의 첫 그림 전시회를 기획해주고, 해외 전람회를 준비해준 사람 김민기. 조영남의 두번째 인생을 열어준 그는 영원한 조영남의 동생이자, 때론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런 김민기가 이날 처음으로 취했다. 자신의 형, 조영남이 가수로서 마지막 공연을 끝낸 바로 그날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이들의 시대는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슴 한 구석으로 쓸쓸한 바람이 불어온다. 김민기를 집으로 보내고 조영남과 나는 다시 함께 한강을 마주했다. 조(영남): 민기도 이젠 늙었다. 저놈 취한거 첨 보내. 새색시 같은 친구지. 밤새 저렇게 취한 상태에서 계속 마셔. 그리곤 아침이면 자기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어디론가 떠나가 버린 뒤 였지. 이(상호):  김민기 선생이 형님(나는 조영남을 이렇게 부른다)을 왜 솔라 라고 보는 거지요? 누구보다 형님을 가장 잘 알텐데요. 조: 그러게 말이야. 이: 물론 극단은 통하고, 접점은 두드러져 보이지만 제가 보기에 형님은 루나입니다. 계속 루나로 가시면 해가 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조: 그래 이젠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참 오래살아도 늘 쉽지 않다. 이제 새벽 5시. 멀리서 솔라가 자신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강은 흐르고 있었다. 모든 '밤의' 이야기를 담고 한강은 내일도 어쩌면 그렇게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