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밤 11시 반. 나는 그러니까 오늘 오전 부터 정확히.. 14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있다. 두끼의 식사를 전화로 시켜먹었고, 수십 장의 신문을 읽어댔고, 또 수백번의 마우스질을 하며 인터넷을 헤집었다. 그러면서 조금전 한편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진행중인 이명박 서울 시장의 100억대 소송의 진실' 뭐.. 대강 이런 내용의 기사다. 기사 시간은 15분.. 그러니까 원고지로 몇매나 될까? 폰트 사이즈 10으로  A4용지 10장 분량의 기사다. 좀 긴 편이다. 기사를 두벌을 뽑아 두분의 데스크에게 드린 후, 나는 지금 담배 한대 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얼마전 '실수로' 담배를 끊은 나는 탈고의 순간 달리 축하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음.. 이번주 방송내용은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아직 국내 언론에서는 생소한 내용이긴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명박씨에게 불편한 내용은 잘 보도되지 않는다. (모두 영웅시대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걸까?) 무슨 얘기냐면, 이명박 시장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미국 법원에 한 교포를 상대로 엄청난 금액의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명박씨가 그의 주장대로 피해자냐? 이게 기사의 관건이다. 그가 보통사람이라면 사기피해를 액면그대로 믿어줄 수 있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CEO가 아닌가. 혹자는 그래서 아예 그가 가해자일 것이라거나 최소한 동조의 책임이 있다고 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게 의혹의 대상일 뿐이지, 실체적으로 밝혀질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왜냐면 이명박 시장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루종일 조심스레 써내려가느라 나의 감정선은 지금 대단히 민감해져있다. 기사작성 막간에 유일한 오락은 신문보기다. 앉아서 잠시 짬을 낼 수 있는게 그것이니까. 인터넷과 종이 신문을 펼쳐보면 절로 나오는게 한숨이다. 아.. 도데체 어찌할거나. 해방직후, 좌우의 대립과 수구와 개혁, 명분과 현실 사이로 어지럽게 걸어나오던 창백한 시대의 '먹물'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닮은 듯한 그 얼굴. 나 역시 지금 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명분과 현실, 당위와 선택.. 모두가 나와 같지 않으니 도무지 소통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지. 소크라테스도 이런 암담한 심정이었을게다. 이런 파편적 상황에서 부분적인 소통이란 또 어떤 의미가 있기나 있는지.. 그런데도.. 방송은 소통을 지향한다. 불특정 개인과 대면하며 그와 시대적 공감대를 찾아내고 그 통로를 통해 구체적 메시지를 공유한다. 그래야만 한다. 세상에 굴절되고 왜곡된 통로가 중첩적으로 교차되고 있다. 나의 말이 그의 귓가에 전달되기 이전에 수많은 전파에 의해 변조된다. 나의 말은 이내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행정수도 이전문제.. 당위와 선택, 명분과 현실, 개혁과 보수, 좌와 우.. 중첩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정작 봐야할 것도 보이는 것도 없다. 그저 상투잡기판이다. 박근혜 패러디 문제? 한나라당이 무척 화났다. 물론 그런 패러디를 그곳에 올린일은 잘못된 일이다. 맞다. 그런데 이건 이상하잖은가. 그게 이 나라 정치권이 격돌할 정도로 대단한 일이냔 말이다. 박근혜씨가 영화속에서 실제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더구나 몸을 파는 창녀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대통령 아버지의 딸임도 모두가 안다. 단지 현실을 패러디한 것 뿐인데 그게 거기에 실린게 문제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에게 창녀의 옷이 입혀진 것 처럼 펄쩍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하란다. 그저 따끔한 농담으로 넘겨 칠 수는 없었을까? 정치수준이 동네 계집아이들 공기놀이 수준이다. 다툼을 위한 다툼. 말한마디가 또다른 질시를 낳고 그에 따른 말한마디가 미움을 자극하는 그런식말이다. 다툼을 위해 준비된 이들에게 모든 상징은 다툼의 대상에 불과하다. (동네 '계집아이'라는 말도 취소한다. 내게도 공식 사과를 하라고 할까 무섭다.) 대통령을 아예 다시 뽑아야할까. 시원시원한 카리스마의 대부.. 전두환 장군을 다시 모셔야하나. 노무현 대통령은 그가 '아끼는' 신문 어느 한구석에서도 '정상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바보 노무현은 괴물 노무현으로 자라나고 있다. 슈렉.. 아니 공주를 차지한 슈렉보다 못하다. 대책없는 비난이 난무한다. 신문을 보면 노무현은 정말 몹쓸사람이다. 순간도 그 자리에서 허락되선 안될 위인이다. 신문들이 그리워 마지 않는 이 시대의 리더는 그럼 누구일까. 이명박? (난 어제 그를 인터뷰하려다 보안사 요원 처럼 보이는 언론과장과 그의 호위대 20여명에 의해 땅바닥에 패대기 당했다.) 박근혜? (아버지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위해 근엄하게 엄포를 부릴 줄 아는 벨빌의 여제?) 아.. 누구라도 좋다. 자신의 비자금의 진실을 묻는 기자에게 '난 말 안한다면 안해'라며 오히려 배짱을 부리는 김영삼.. 그 보다는 나쁘지 않겠지..   창밖으로 천둥이 멀리서 또 다시 꾸물거린다. 이땅의 장마철은 유쾌하지 못하다. 언제부터인가 열대를 연상시키는 대지의 습도와 검은 색깔의 빗줄기. 강우 뒤의 상큼한 땅 냄새를 맡아본게 언제 였던가. 빈틈 없이 빽빽히 들어찬 서류들.. 중첩되게 쌓인 서류 더미 위로 또 읽지 않을 새로운 복사물들이 던져진다. 빈틈이 없다. 한잔의 커피 잔도 놓여질 여유가 없다. 지금 내 책상 위의 풍경이기도 하고 2004년 7월, 우리시대 마음의 풍경이기도 하다.   난마 처럼 얽힌 나의 기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두 분의 데스크들은 도무지 돋보기를 꺼내 들고서는 반응이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뒤죽박죽 이 세상.. 데스크는 과연 누가 볼까? (주: '데스크'란 언론사 용어로, 작성된 기사를 보도용으로 출고하기 직전 취재책임자가 기사의 사실관계와 구성 등을 최종 점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