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에서 언론의 노사관련 보도에 대한 토론회에 나와달라는 연락이왔다. 타사에서도 패널이 나오는데 MBC에서도 선수가 나와줘야한다는 것이다. 출입처에 나가있는 동료들을 대신해 누군가 자리를 메꿔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명색이 언론의 보도양태에 대해 감시해야하는 <미디어비평>에 배치된 기자아닌가. 발제자들의 발제문을 요청했다. 뭘 읽고 가야 그나마 한마디라도 하고 올 것이 아닌가. '노동 적대적 언론환경의 현실과 과제'.. 언론노조 이정호 정책국장의 발제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순간, 충격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왔다. 노동문제에 적대적이라면, 그렇다면 나 역시 노동의 적이란 말인가? 이 국장은 노동 적대적 언론이 '고립->분열->섬멸'의 전통적 보도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노무현 정권 들어서도 노동은 철저히 경제의 족속변수로서 언론의 주요 먹이감이 되어왔다고 덧붙혔다. 수백개의 언론보도 사례를 들어 계속되는 24장 분량의 소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최소한의 심리적 저항감도 가질 수 없었다. 그의 지적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기자로서 지금껏 노동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던가.. 우선 생각나는 부끄러운 기억하나.. 90년대 말, 대검찰청 출입기자 시절이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노동운동을 대응하는 정부의 최고 공권력 운용부서이다. 나는 공안부의 검사장과 부장검사들과 어울려 월요일이면 보신탕을 얻어 먹었다. 이들과의 대화를 거치며 서서히 노사문제는 나의 일이 아닌 창 밖의 일쯤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장기 파업'에 따른 대외신인도 저하를 우려하며, 어느새 노조의 '극렬파업'에 대해 책임자를 엄단하겠다는 검찰의 엄포성 입장을 떠벌이는 선무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에 대해 무심했던 것은 아니다. 성남 인력시장의 일용 노동시장을 스케치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보도를 했던 기억도 있다. 월급을 못받아 쩔쩔매는 노동자, 추위에 길거리로 내앉은 노동자.. 그들을 만나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혜적 차원의 일회성 관심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게 노동문제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왔다. 그 사건은 올초 있었던 두산중공업의 배달호씨가 분신이었다. 시사매거진 2580에 있던 나는 눈발이 매섭게 몰아치던 창원에 내려가 불꽃 속에서 죽어간 그의 고뇌와 체취를 뒤밟았다. 배달호씨 보다 더 '헌신적인' 미망인을 만나고 또 그가 살던 집을 돌아보며 그동안의 나의 불성실, 태만을 반성했다. '그래 노동문제에 있어 불성실은 죄악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노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얼마나 관념에 그쳤던가. 잔액 0원 짜리 통장이 나뒹굴던 그의 책상이며, 어른이 누워 머리와 다리가 양쪽벽에 닿을 정도의 작은 방이 어른거린다. 두산중공업은 그런 그의 방과 집 마저 압류했다. 손배소와 가압류..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무자비한 '살육'은 이미 그들에게 회복불가능한 깊은 상처를 안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침묵한 사이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노동현실을 모르거나 또 알고도 쓰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노동의 적이고, 또 노동자의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기자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애정과 그를 통한 사회공동체 정신의 실현.. 뭐, 이런 거창한 것까지는 대지 않더라도 가치판단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보도해야할 것이 아닌가. 결국 그동안의 나의 보도는 공정하지 못했고, 그들이 나를 '적'이라도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럼.. 언론의 노동관련 보도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우선, 언론(방송)의 시청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요즘들어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National Interest(국익)'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이뤄지고 있다. 시청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그들의 이해(interest)에 대한 새로운 이해정립이 필요하다. 둘째, 노사불신의 해소가 참다운 개혁의 시발임을 인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측이 권력과 유착돼 특혜를 받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이 배제되고, 그러한 사측의 비도덕이 노사간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그 증폭된 불신의 간극에서 살인적 손배소와 가압류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중단없는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자본이나 권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매체들의 실체를 밝히고 그에 따른 응분의 평가를 받도록 언론환경을 투명화하는데 각자 매체가 앞장서야한다. 사후 약방문도 쓰지 못하는 현재의 보도관행도 바꿔야한다. 현재의 출입처 제도 하에서는 공정하고 심층적인 기사가 나올 수 없다. 노동부 출입기자는 있어도 노동전문 기자는 없는 현실아닌가. 출입처 제도개선을 통한 심층, 탐사보도가 그 대안으로 적합하다. 넷째, 노동에 덧씌워져 있는 온갖 '불온한' 색채를 씻어내야한다. 기자들 스스로도 노동 관련 이데올로기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노동이 가지고 있는 왜곡되고 낙후된 이미지로 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기자 스스로 노동자임을 부인하고 있지 않는가. 다섯째, 향후 21세기 초반 한국언론의 주된 역할은 미국 주도의 근대사를 자주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노력은 그 내용적으로 노동운동사에 대한 재인식을 필요로한다. 결국 언론의 노동보도는 보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중 만큼이나 언론개혁이나 현대사 바로보기에 중차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로 부터.. 노동의 적에서, 친구로 거듭날때. 우리 언론도 조그마한 변화를 가져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